순수의 영역
사쿠라기 시노 지음, 전새롬 옮김 / arte(아르테)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사쿠라기 시노의 작품은 처음인데 더운 날 읽으면서 빠져 들었다. 단편과 장편중에 어떤 책을 먼저 읽어볼까 망설이다 이 책을 접한 것은 책 내용에 서예가 나오기 때문이었다.묵향이 좋아 한동안 묵향에 잠깐 심취했던 가물가물한 시간이 있다. 어릴 적 서예 시간만 돌아오면 붓만 잡으면 왜 그리 맘이 편하고 좋은지.오래전 할아버지가 쓰시던 낡은 붓이 있었는데 그 붓을 가져가는 것만으로도 뿌듯하던 시절이 있어서 나이가 들고 잠깐 묵향을 따라갈까 하다가 그만두었다.내가 하기엔 버거운 듯 하기도 하고 시간투자를 하기엔 더 바쁘게 살아야 할 것만 같은,왠지 서예라는 것은 현대 사회와는 점점 정반대로 가는 기분.그저 빨리빨리 스피드만 강요하는 시대에서 '천천히'라는 것은 달팽이걸음처럼 여겨져 점점 우리 곁에서 멀어지는 기분이었지만 그 묵향의 느낌만은 지금도 좋아한다.

 

서예대전에 나것 번번히 큰 상 앞에서 주저앉아야 하는 류세이,그의 어머니도 서예교습소로 가계를 이끌어 나갔고 그도 별다른 일없이 아내가 보건교사로 벌어 들이는 수입으로 병든 노모 수발부터 하여 살림까지 모두를 책임지고 있다.서예를 뺀다면 류세이는 그야말로 남편감으로는 점수를 얻지 못하는 인물인데 그의 노모는 아내 앞에서는 치매노인인데 아들 앞에서는 반듯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그렇다면 노모의 병은 거짓말이란 말인가? 그동안 집안과 서예 교습소에 벌어진 알 수 없는 일들을 종합해 볼 때 어머니의 소행임을 류세이는 아내에게 말하지 못하고 혼자만 알고 지낸다.어미니는 왜 거짓의 탈을 쓰고 살아가고 계신 것일까? 그런 속에서 자신 또한 벗어나지 못하고 아내의 그늘 밑에서 편안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전시회를 하던 날 도서관에서 우연하게 마주하게 된 25살의 준카를 만나고 난 후,첫눈에 그녀의 서예에 대한 천재성을 알아보고는 질투와 그녀가 가진 재능에 욕심을 부리게 된다. 그런데 그 준카가 도서관 관장의 여동생이라는 것.닮지 않은 두사람,아버지를 모르는 그들의 어머니는 서예의 대가였는데 물에 투신하고 말았다.그런 어머니의 재능을 물려 받은 준카는 천재적인 재능은 있으나 지능이 떨어지는,사람들은 그녀를 '바보'라고 부른다. 그녀가 지닌 '순수의 영역' 앞에 류세이의 질투심은 그야말로 파도처럼 일렁인다.

 

'딱, 이 폭에 갇혀 있다.'

 

준카의 오빠인 도서관장 노부키는 오랜 시간동안 알아 온 연인인 리나가 있다.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한마디로 정의하기엔 너무 멀리 왔다.결혼을 하기엔 그렇고 친구로 지내기엔 또 이상한 그런 관계 속에 류세이의 아내 레이코가 끼어 들게 된다.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면서 동질감을 느낀다. 치매노모를 모시고 있는 레이코나 지능이 떨어지는 배다른 동생을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떠맡게 된 노부키는 가까이 다가가는 듯 하면서 평행선과 같은 관계를 유지하며 위험한 관계를 계속 이어간다.그 관계를 오랜 연인 리나가 눈치를 채고 결혼을 결정지으려다가 돌아서게 된다.노부티와 리나의 어긋난 인연 끝에 리나의 준카에게 한 험악한 말들이 그녀의 죽음을 재촉하게 된 느낌을 주는 동시에 준카는 마지막 유작과 같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쓴 글씨인 천재적인 서예작품을 남기고 죽음에 이르게 된다. 마지막으로 만났던 교습소의 소년,과연 그가 범인일까? 소설의 마지막은 추리소설의 성격을 띠고 있다.누가 준카을 죽여야 했을까? 왜? 그녀의 순수의 영역에 침범한 사람이 범인일까 아닐까? 류세이의 대상 작품을 보고 범인을 알아보는 도서관장인 준카의 오빠 노부키는 대상 수상 축하자리에 찾아와 자신의 어머니와 준카의 작품을 놓고 간다. 준카가 가진 천재적 능력인 순수의 영역에 욕심을 부렸던 류세이,그런 아들의 마음을 알아 주었던 그의 노모의 완전범죄라고 할까.작품은 매력적이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읽어봐야 할 듯 하다.

 

범인이 누군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관계가 어떻게 발전하는지,그 중에 질투라는 것이 사람을 어떻게 발전시키는지를 섬세한 심리묘사와 함께 잔잔하면서 재밌게 풀어 나간다.참 매력적인 작가이며 기억해 두었다가 작가의 작품을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해도 마음 속에서 이미 생각을 했다면 살인을 저리는 것이다.질투란 녀석은 그렇게 무서운 흉기로 변해 상대에게 서서히 촉수를 뻗어 나가다가 어느 순간 자신의 먹잇감의 생명까지 빨아 들이는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녀석인데 그렇다고 무서운 추리소설 형식도 아니면서 아름다운 문체로 그려나간다.그야말로 한글자 한글자 심혈을 기울여 화룡점정을 하듯이 서두르지 않고 어느 순간에 무엇이 필요한지 수를 놓듯 그려나가며 불륜이 아닌 로맨스가 되게 써 나가면서도 그 속에 삐뚫어진 관계의 그 결말을 독자들이 스스로 그려나가게 해 놓았다.준카를 만나기 전 류세이의 삶은 그야말로 그가 쓰는 화선지 속에 갇혀 있듯 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 길이 보이지 않았다. 아들로 남자로 남편으로 서예가로 어느 한 길도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한 듯 자신의 화선지 속에 갇혀 갑갑한 삶을 살고 있었는데 준카라는 순수의 아이콘을 만나면서 질투와 욕심을 가지게 된다.'폭'에서 벗어나고 싶어던 남자,우린 그렇게 자신의 현재 상황에 발버둥치며 벗어나려 하고 살아가지만 현실은 늘 앞으로가 아니라 뒤로 달려가고 있는 것처럼 후퇴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살아가고 견뎌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아내의 힘으로 견뎌내고 있지만 버겁다. 그런 그에게 준카라는 인물의 재능과 순수의 영역은 화였을까? 위선이었을까? 그남자 류세이의 썩은 동앗줄과 같은 삶이 위태위태하면서도 왠지 서글프면서도 씁쓸하다.모두가 순수의 영역을 잃어 버리고 살아가면서도 순수의 영역에 갇혀 있는 준카라는 인물은 욕망의 표적이 되어야 했다는 것이 못내 아쉽다.더운 날 내 현실의 '폭'을 벗어나려고 애쓰기 보다는 감내하며 살아야 함을 느끼며 저자의 이름을 저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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