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듦에 대한 변명 - 이야기꾼 김희재가 전하는 세월을 대비하는 몸.마음 준비서
김희재 지음 / 리더스북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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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가 맘에 들어 책을 받자마자 앉은 자리에서 손에서 놓지 않고 다 읽어 버렸다. 내 나이에 어울리는,아니 내 나이에 하고 싶은 말들이나 가려운 곳을 콕콕 짚어 잘도 긇어주듯 내 맘을 잘 표현해 준 글들이 많아 '어쩜'하며 읽게 되었다. 나이 든다는 것을 한때는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흰머리를 새치라 우기며 거울 앞에서 쪽집게로 흰머리를 아픔을 참으며 뽑던 시절이 있었다.그것도 잠시 한두개 보이던 흰머리는 어느 순간 검은 머리보다 흰머리가 더 많이 찾아지는 것처럼 그렇게 흰머리만 보이는 것처럼 변하게 되었고 이제 나도 내 나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알게 되고는 남들 잘하는 염색도 몇 번 하다가 그것도 그만두었다. 흰머리 온통 검은머리 자리를 모두 차지하고 나면 그냥 흰머리로 살 것이라 했더니 딸들이 이쁜 색으로 염색을 하란다. '싫어,그냥 이렇게 살거야.'

 

딸이 둘이다보니 늘 딸들과 작은 일에도 말다툼으로 번지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고 그것이 정말 큰일이어서 문제가 되기 보다는 정말 사소한 것들,지나고나서 생각해보면 싸울것도 말다툼할 것도 안되는 것들이지만 서로 의견차이로 인해 큰 문제가 된 경우가 있다. 에세이를 읽다보니 '어쩜 어쩜 우리집 이야기야' 하는 경우가 정말 많다.아니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변명'이라고 했는데 변명이라고 하기 보다는 당연한 것을 이야기 해주고 있는데 애교 섞인 변명이라고 해야할까. 이제 옆지기도 나도 반환점을 지나거나 혹은 반환점을 향해 달려가는 나이라 그런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그런가하면 어느 집에서나 있을 법한 한두번은 경험한 이야기이기도 하니 맞아 맞아 공감하며 읽을 수 있어 옆집 아줌마와 수다를 나누는 기분으로 읽었다.

 

'뽀글이 파마,포기하기엔 너무 아까운 빛나는 '여덟 번째 일곱'의 시간',난 파마라는 것을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해보았고 미용실을 가지 않기 때문에 아직은 뽀글이 파마가 낯설다. 워낙에 파마약 냄새를 싫어하기 때문에 이십대에도 몇 번 할까말까 아니 한두번 하고 결혼식 때 한번 했나보다.그리곤 파마와는 담을 쌓고 살기도 했지만 요즘은 내가 직접 내 머리카락을 자르니 뽀글이 파마는 먼 이야기지만 언젠가는 나도 뽀글이 파마 대열에 끼지 않을까. 우리 엄마 아니 주위를 둘러보면 대부분 아줌마들은 뽀글이파마를 했다.그것이 편하고 여러모로 경제적이기 때문에 뽀글이 파마를 하지 않을까.이십대나 삼십대는 자신의 젊음에 돈을 투자하지만 자식을 낳고 키우다보면 자신에게 투자하기 보다는 가족을 위해 먼저 투자하게 된다. 그것이 아줌마,아니 어머니의 당연함이 아닐까. 그렇게 하여 아줌마라면 대명사처럼 뽀글이파마가 붙게 되기도 하는데 그 속에서 인자함을 읽게 되니 미소가 절로 나온다.

 

화병은 우아하고 싶은데 우아하지 못해서 생기는 병이라고 합니다.이상한 일입니다. 우아하고 싶은 마음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소리를 높이고 남부끄러운 줄 모르는 사람처럼 울고불고 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요즘 내 나이가 가슴 속에 쌓인 화가 밖으로 표출되는 그런 나이인가 보다. 그럴 때는 가족들에게 공표를 한다.'지금 짜증수치가 올라가고 있으니 조심해 주세요.' 라고 먼저 한마디 운을 띄운다. 나도 그러고싶지 않은데 내 맘과 다르게 가슴 밑바닥에 쌓여 있던 것들이 갑자기 밖으로 나온다. 그것이 '여자의 화병' 편에 나오니 속이 다 시원하다.'딸이까 아내이니까 엄마이니까..' 그렇게 참으며 '여자'라는 것을 잊고 살고 있다가 자식들 크고 나니 허하다.정말 '참어 참어..' 아니 '참아야해' 라고만 생각하며 살아 왔는데 그 속에 내가 없는 것 같은 허함은 뭔지.가끔 친구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자식이고 남편이고 다 필요없다' 라는 말을 가끔씩 한다. 누가 알아 준다고 참으며 살아왔는지.그렇다고 보장된 내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니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오늘날이기 때문에 더 즐기며 살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목소리를 키우기도 한다.그래도 그때 뿐이지만 속은 후련하다는 것.그런 이가 나혼자가 아니라 누군가 동지애를 느낄 수 있는 이가 옆에 있다는 것도 위안이 된다.

 

울집에도 '배불뚝이 아저씨'가 한 명 있다.옆지기는 다른 계절에는 그런대로 보통인데 연말에 과한 회식으로 인해 '배불뚝이'로 자동 전락하고 만다.그것을 덜어내기 위하여 일년을 고생하고 또 다시 배불뚝이로 그것이 늘 반복이라 정말 옆에서 보고 있으면 짜증이 난다.조금 회식을 줄이면 좋을텐데 집에서는 '줄일거야.아니 덜 마시고 덜 먹을거야'하고 나가지만 막상 나가면 다 잊나보다.예전에는 배불뚝이는 인격이라고 했지만 요즘은 건강과 직결이라 식스팩은 아니어도 만삭은 되지 않기 위하여 노력하라고 늘 충고하고 함께 산행도 다니곤 하지만 현대인의 삶이 비슷한 시스템이라 그런가 비슷한 나이의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배의 모양도 비슷하다. 성인병에서 벗어날 수 없는 외식문화및 회식문화가 바뀌어야 된다고 본다.

 

뽀글이 파마,화병,배불뚝이,새는 실수,가려움증, 몸에서 나는 채취,다리절임,이명등 그야말로 젊은 세대하고는 안통하는 '나이 든' 사람들끼리 모여 앉아 수다를 떠는 것과 같은 이야기들이 속 시원하게 아니 적나라하게 있어 재밌게 술술 공감하며 읽을 수 있어 참 좋다. 나도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요즘은 피부가 건성이 되어 철이 바뀔 때마다 '가려움증'으로 고생을 한다.그러다 피부과를 찾았는데 샤워를 날마다 하면 안된다고 하는데 어떻게 또 그러고 사는가.가려운 곳을 긇으면서도 샤워를 해야지. 나이 든다는 것은 마음 뿐만이 아니라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어디 한 곳 세월을 역행하는 곳이 없다. 세월을 거부하려고 하면 더 탈이 나기 때문에 그대로 받아 들이며 인정하며 살면 편하지만 거부하려고 하면 더 힘든 것이다. 거부라는 것은 또 한계가 있는 듯 보이기도 하고 제 나이 들어 보이는 것이 제일 기분 좋은 말이기도 하고 또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을 한다. 어떻게 보면 나이든다는 것을 자식들도 인정하지 않고 받아 들이지 않을 때가 있는데 그것이 어느 순간 당연하게 될 때가 있다.

 

우아해지고 품격 있어 보이고 싶지만 왠지 모르게 악만 남은 사람처럼 아줌마라면 뽀글이 파마를 하고 큰목소리에 건망증도 있어야 되는 듯 보이는데 그것이 나도 모르게 나이가 들고 있다는 말이기도 한 듯 하다.많은 시간을 살아 온 것은 아니지만 어느 순간 타인의 악을 보면 그사람이 마음에 화가 많이 쌓여 있어서 그런가보다 하고 이해를 하기도 하고 그가 지나 온 삶이 그려지기도하는 것은 부모의 삶을 보아왔고 그 그렇게 내가 부모의 삶을 살고 있으며 밑으로 나오 같은 자식을 키우고 있음을.그렇게 나 또한 나이 들어 가고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 들이는 나이가 됐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나이'라는 것이 자연스러운 단어가 되는 나이가 되었다.자식들의 사춘기를 받아 주며 지나쳐 갔듯이 '우리'의 사춘기도 무리없이 지날 것이라 믿는다. 나이 든 다는 것을 변명하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받아 들일 때가 가장 자연스럽고 아름답고 스스로 자신이 행복한 나이인 듯 하다. 주름살을 보면 그사람이 웃어서 생긴 것인지 아니면 찡그려서 생긴 것인지 알 수 있듯이 남은 시간은 좀더 웃어서 행복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을 만들어 보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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