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비포 유 미 비포 유
조조 모예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삼월,13년을 키운 반려견이 갑자기 발작에 호흡관란의 이상증세를 보여서 병원에 데리고 갔더니 심장비대로 인해 폐에도 문제가 생기고 위에서 공기가 차서 응급상황이 왔다.하지만 이번 일이 발생하기 몇 해 전에 벌써 심장비대로 인해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게 된 경우를 겪었던 일이 있기 때문에 그리 놀라지는 않게 되었다. 몇 번 병원을 다니고 약을 먹여서 조금 나아지는듯 했는데 갑자기 상황이 악화되었다. 심장병이라 것이 사람도 그렇지만 동물에게도 정말 치명적이라 언제 갑작스럽게 이상증상이 나타날지 모른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집 반려견은 나이가 있기 때문에 더 위험한 상황이 온 것이다. 옆지기도 그렇지만 주위사람들이 한결같이 할만큼 했으니 '안락사'를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녀석이 몇 해 전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 때에도 물론 다들 안락사를 운운했지만 난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작고 보잘것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돌이켜 생각을 해보니 내게 반려견이 너무도 많은 것을 채워주고 있었고 또 그렇게 내 일상은 반려견과 함께 했다는 것을 무시할 수 없었다.하물며 동물에게도 안락사는 정말 가슴 아픈 일인데 사람에게는 어떨까?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생각할 수 있는 기능이 아직 온전하다고 하면 선택하게 도와줘야할까? 그들이 죽음을 선택하는 것은 산다는 것이 죽음보다 더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더 내세우는 현시대에서 안락사는 살인죄다. 몇 번 이슈가 되면서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과연 살인죄일까? 논란이 되었지만 환자 본인이 선택했다면 어떨까? 그래도 주위 사람들이 살인죄에 해당이 될까? 살인죄를 떠나서 살아 남아야 하는 사람들은 죽고자 하는 사람이 어떤 방법으로든 어떻게 해서든 살아서 함께 하길 바란다. 하지만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현재를 받아 들이고 인정하지 못함으로 인해 죽음을 선택한다.그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마지막을 선택하려 하지만 그들은 남아 있는 자들의 아픔은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반려견을 안락사를 시켰다면 내게는 평생 죄책감을 가지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아픔이 있어도 마지막 그 순간까지의 과정을 지켜 봤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 시간들이 무척 힘들고 이별을 경험해도 늘 낯설다는 것을 알면서도 또 그렇게 지켜보게 될 것이다. <미 비포 유>는 내가 키우는 반련견이 이런 응급상황에 처한 상황에서 읽게 되서일까 더 마음이 아팠다. 윌 트레이너가 선택한 죽음은 남은 자들을 위한 자신을 위한 선택이었다. 모두가 동조해서도 아니고 자신의 현재를 받아 들일 수 없었기에 그는 그녀를 만나기 이전에 이미 죽음을 선택했던 것이다.그것이 6개월 후 변하지 않고 이행이 되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그의 마지막을 지킨 가족들은 살인죄가 적용될까?

 

이 소설은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그가 그녀를 만나기 전에 죽음을 선택했듯이 그녀는 그를 만남으로 인해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녀의 삶은 그저 늘 고인 웅덩이 물처럼 그렇게 자신이 갇혔던 미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웅크리고 있었을 것이다. 오래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미로'스스로의 힘으로 벗어난 것이 아니라 동생의 힘에 의해 그 미로를 벗어났듯이 늘 동생의 그늘에 가려 가족을 위해 자신을 회생하면서도 자신의 삶을 찾으려고는 하지 않았던 루이자,그녀가 카페 일을 그만두게 되고 닭고기 공장을 다니다 나와서 찾게 된 '간병인' 이라는 일은 그가 한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지만 조카를 대하듯 중풍으로 쓰러진 할아버지를 대하듯 그렇게 가족처럼 대하면 일이 쉽게 풀린다는 것을 알게 된다. 윌이라는 이남자 C5/6 전신마비 환자가 되기 이전에는 모든 것을 가졌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남자였고 자신이 누리고 싶은 것은 다 누리고 살았다고 볼 수 있는 그런 남자다.거기에 핸섬하기까지 하고 부유한 부모님에 잘나가는 어머니를 둔 남자다. 그런 남자가 어느 날 일어난 모터사이클 사고로 인해,그는 피해자였지만 전신마비가 되고 그날 이후로 그의 삶은 휠체어에 갇히게 된다.사고가 나고 2년이 흐른 후,그의 어머니는 간병인을 구한다. 왜? 그를 잠시도 그냥 두어서는 안되는 감시 대상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감시하지 않으면 자살을 실행할지 모르는 윌 트레이너를 감시해줄 상대가 루이자였던 것이다.

 

루이자 그녀의 집은 그야말로 복잡하다. 아버지는 가구공장에서 밀려나게 되었고 어머니는 할아버지를 보살펴 드리느라 돈을 벌지 못하고 여동생은 아이가 있으면서도 공부를 더 하길 원하고 그들과 함께 산다. 그녀는 동생에게 방을 양보하고 다락방에서 살면서도 그녀가 번 돈은 모두 가족을 먹여 살리는 생활비로 들어간다. 그녀의 희생이 있어야 그이 가족이 잘 굴러갈 수 있는 수레바퀴가 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자신이 하던 간병인의 자리가 자신이 알고 있던 평범한 간병인의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일을 그만두겠다고 한다. 그럴수가 없는 현실이지만 그녀의 선택은 확고하다. 그러다 반대로 그의 의지를 움직여보자고 한다. 자살을 막고 삶의 의미를,전신마비로도 세상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다.그녀의 계획은 잘 이루어지는 듯 했지만 윌은 의지를 굽하지 않고 자신이 선택한 것을 이행한다. 그녀와 함께 하던 6개월의 시간 동안 많은 것은 변했고 무엇보다 행복했으며 그들은 서로 사랑을 했다. 하지만 사랑보다 더 이전에 죽음을 선택한 남자,사랑으로 죽음을 막아 보려던 여자의 꿈은 그가 남긴 선물과 같은 시간들을 살게 된다는 이야기다.

 

윌은 자신을 위해 죽음을 선택했지만 루이자는 사랑으로 모든 것을 변하게 만들었다. 그녀 자신도 변했지만 그녀와 함께 했던 모든 이들이 그리고 그녀의 삶까지 변하게 만들었다. 죽음이 선택할 수 있다고 쉽게 선택되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윌의 삶을 고통을 알기에 그의 선택에 순순히 따라준다. 어찌보면 윌의 경우에는 행복한 것이다.자신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으니 말이다.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윌은 자신이 사고를 당하기 전에 모든 것을 가지고 누려 보았기 때문에 현실을 더 받아 들일 수 없는 입장이 된 것이다.그가 사고 이전에 평범한 삶을 누렸다면 어떻게 변했을까? 그리고 자신의 현재를 뒷받침해줄 경제적인 여건이 되지 않았다면? 루이자와 같은 좋은 간병인을 만나지 않았다면? 무슨 일이 발생하고 잘못되면 우린 그 일이 일어나기 이전의 시간으로 시계를 되돌려 놓고 싶어한다. 이 소설은 2007년에 사고가 일어나고 2009년에 루이자를 만나게 된다. 처음에 그 연도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나 또한 그 두 해에 모두 사고를 크게 당해서 정말 고생했던 해인데 반려견 일도 그렇고 읽어야 할 운명이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윌의 선택은 정당화가 되었지만 죽음도 분명 삶의 연장선상인데 그마져 살아 남은 자들에게 논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가슴 아프다.윌과 루가 주고자 했던 삶의 의미를 다시 한번 더 되새김질 해보며 모든 것은 되돌릴 수 없다면 미래는 스스로 헤쳐나가야 한다는 것,타인에 의해서 조정될 수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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