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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내에 대하여
라이오넬 슈라이버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케빈에 대하여> 라는 책을 읽고 싶었지만 기회가 되지 않아 읽지를 못했다.그리고 만나게 된 <내 아내에 대하여> 이 책은 두껍다. 부담스런 두께지만 읽다보면 금방이다. '긴 병에 효자없다' 라는 말이 있듯이 긴 병과 큰 병은 환자 뿐만이 아니라 가족을 피폐하게 만들고 더불어 한 가정의 몰락까지도 가져온다.그런 경우를 주변에서 많이 보았기도 하지만 심심치 않게 뉴스를 통해서도 슬픈 일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볼 수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질병에 대비하여 의료보험과 개인보험을 들어 놓는다고 하지만 내가 당하게 되면 보험도 피해가는 경우가 있다. 보험은 내가 타려고 하면 해당사항이 없는데 종종 보험을 역 이용하는 이들이 더 많이 타는 경우도 볼 수 있다.
긴 병이나 큰 병을 앓는 이들은 간병인이나 가족중 누군가 환자를 돌봐야만 한다. 친정아버지가 폐암으로 병원에 입원해 계실 동안 나는 자처해서 아버지 곁에서 머물면서 아버지와의 시간을 가졌다. 엄마가 와서 함께 계셨기 때문에 엄마의 밥도 해서 날라야했고 병원생활을 따분해 하는 아버지 곁에서 웃을 수 있고 운동도 시켜 드리며 함께 한 시간은 영원토록 잊을수가 없고 내게는 값진 선물과 같은 시간이었다. 셰퍼드,그는 대학을 가려다 미루고 대학가 주변 동네에서 아르바이트 식으로 집수리를 시작하는데 생각보다 일이 커져서 그 길로 정착을 하게 된다. 친구 잭슨과 함께 하며 수리공을 자처하며 키운 회사를 떠넘긴 후 회사는 그들이 운영할 때보다 몇 배로 커져서 그는 그곳에서 관리직으로 일을 하게 되었지만 언제나 '제2의 인생'을 꿈꾸며 다른 곳에 살 생각을 하며 아내 글리니스와 답사여행을 다녀오곤 하다가 아프리카 서남쪽 '펨바'라는 곳에서 제2의 인생을 펼치며 살고 싶어하여 식구들 몰래 짐을 꾸려 놓았지만 갑자기 금속공예를 하던 아내가 불치병이고 희귀병인 '중피종'이라는 암에 걸렸다고 해서 다시 주저 앉게 되었다.
"게다가 그 대가를 당신이 치르다니,너무 부당한 일이야.아파도 내가 아파야지.당신이 아니라 내가 암에 걸린 거라면 좋겠어. 내가 대신 아파줄 수 있다면 좋겠어."
아내는 자신보다 건강한 사람처럼 군살도 없고 현재는 금속공예가 아니라 초콜릿 공장에서 밀랍으로 틀을 만들고 있었지만 아픈 내색 없이 갑자기 희귀병인 중피종이라니. 중피종은 석면과 관계된 암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집수리일을 하였던 자신 때문에 아내가 암을 얻게 된 것일까? 아내는 전적으로 자신이 암에 걸린 것이 남편 셰퍼드 때문이라며 20년이 넘은 그가 관계했던 집수리 재료들에서 석면과 관계된 것이 있는지 확인해 보라고 한다.정말 자신 때문에 아내가 중피종에 걸렸단 말인가? 셰퍼드 그는 혼자서 그와 관계된 사람들의 경제를 도맡아 하듯 하고 있다.아버지 집의 가스비며 다큐제작을 하며 오빠의 힘으로 살려고 하는 동생까지 그리고 성인이 된 딸의 보험이며 모든 돈을 그가 책임지고 있다.아내는 나가서 번다고 해도 도움이 안되었고 그가 매각한 회사의 돈은 제2의 삶을 위하여 계좌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아내가 암을 치료하기 전에는 말이다. 아직 부채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펨바에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싶었는데 갑자기 아내가 중피종,그것도 희귀암이라니.
"난 그 기계들을 유지 보수하도록 세금을 내잖아요. 결국 이것도 치욕스러운 일이지만 어쨌든 우리는 우릴 탄압하는 도구를 살 수 있게 자금을 조달해야 할 의무가 있죠. 하지만 당국에서 효율적으로 일하지 않으면 그러니까 나한테서 몰수해 간 돈을 제대로 이용하지 않으면 그건 내잘못이 되고 내가 두 배로 돈을 내야 하는 겁니다. 주 당국은 모든 걸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하잖아요. 이성이나 형평성,심지어는 상식이 적용된다는 건 상상조차 하지 않는다니까요."
그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의료보험'과 마주하게 되었다. 친구 잭슨이 FD를 앓고 있는 딸 플리카와 비만인 헤더로 인해 카드빚에 집대출도 갚지 못해 허덕이고 거기에 아내에게 잘 보이려고 수술한 것이 잘못되어 자신감을 잃고 있다는 것을 잘 모르고 그저 자신앞에 닥친 고난만 토로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만 한다. 잭슨은 사회와 국가에 대한 불만이 한층 고조되고 자신의 문제까지 겹쳐 더이상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 글리니스의 암은 그들에게 많은 생각을 가져다 주었다. 아내 때문에 회사 생활도 엉망이 되고 아내만으로도 벅찬데 동생과 아버지의 문제로 인해 그야말로 셰퍼드는 혼자라도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데 아내는 점점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직장에 다녀야 의료보험의 혜택이라도 누려 보는데 그 의료보험이라는 것이 국가만 용이하게 해 놓았는지 환자에게서 돈을 있는 대로 다 빨아 먹고는 쓸모 없으면 뱉어 버리듯 낫기는커녕 점점 더 악화되어만 간다. 통장은 점점 텅텅 비어가는데.
제2의 삶은 커녕 다음달 월세를 낼 돈도 없게 된 상황에서 그는 직접 현실과 부딪혀 보기로 한다. 아내에게 삶이 얼마나 남은 것인지.자신의 아버지를 동생 손에 아니 사설 요양시설에 맡겨야 하는 것인지.그러다 잭슨의 자살과 마주하며 일생일대 결심을 하게 되는 셰퍼드, 아내가 거짓 연기로 통장이 다시 가득차게 되고 그는 가족과 잭슨네 식구들을 모두 데리고 아프리카로 날아가기로 한다. 더이상 자본주의 미국에서 버티고 살 자신을 잃었다. 잭슨네도 집어 삼킨 미국이지만 자신의 삶도 거기에 목사였던 아버지는 신을 부정하게 되었다. 왜 이런 날이 오고 만것일까? 승승장구하며 아니 아내가 아프기 전까지는 이런 일이 닥칠지 모르고 살아 왔는데 아내가 암에 걸리고 나서 그야말로 국가와 사회의 음지를 보듯 국민의 혈세만 빨아 먹는 국가,국민이 쓰러져 가도 나몰라라 하는 국가에서는 더이상 살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지금까지 자신은 국가에 자신과 연결된 가족에게 할만큼 했다. 더이상 어떻게 하란 말인가?
의사도 병원도 환자를 어떻게 해서 병에서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신약과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데 진절머리가 났다. 환자는 그야말로 돈덩어리다. 아내 글리니스가 몇 달 동안 병원에 쏟아 부은 돈은 자신이 벌었던 돈보다 더 많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의 인생과 제2의 삶을 흔들어 놓은 의사는 끝까지 글리니스를 포기하지 않고 물고 늘어지려 했지만 그녀에게도 마지막을 준비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 신약의 실험대상이 되어 자신이 죽지 않을 것이란 희망은 환자를 더 아프게 할 뿐이며 병원과 의사가 결코 환자에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아내를 통해 깨닫게도 되었지만 노환인 아버지에게서도 요양원의 실체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 누구나 가족중 누군가 큰 병에 걸렸다면 우선은 고쳐 놓고 보길 원한다. 돈이 얼마나 드느냐는 나중 문제로 작용을 하지만 그게 또 내가 막상 닥쳐 보면 그렇지가 않다.물론 환자도 살려야 하지만 나도 살아야 한다.내가 무너지고 가정이 무너지면서 환자를 포기하지 않기란 쉽지 않다.
그는 아내는 물론 아버지 그록 가족에게도 정말 할만큰 했다. 잭슨이 마지막 자살이란 것을 택한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이제 남겨진 그들을 그가 책임을 져야 한다. 히키코모리인 아들에게도 FD라 걱정했던 플리카에게도 비만이라 걱정했던 헤더에게도 그리고 아내와 아버지에게도 펨바는 지상 낙원처럼 그들을 새로운 삶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아프리카는 미국과는 모든 것이 다르다. 자본주의에 젖어 미국을 떠나서는 살 수 없을 줄 알았던 이들이 자연에 빠져 건강해지고 혹은 아름답고 평온한 마지막을 맞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곳에서 더 인간답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는 우리가 양 손 가득 쥐고 있는 현실을 놓아 버리면 못살것 같은 생각을 한다. 모든 것을 내려 놓거나 놓아 버리면 무슨 일이 일어날것처럼 아둥바둥 현실에 목 매며 살아가고 있는데 셰퍼드는 결정이란 오랜시간을 걸려서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순간에 결정해야 한다고 한다. 그렇게 모두에게 시간을 주지 않고 바로 결정하게 하여 떠난 아프리카의 삶은 만족 대 만족이다. 아둥바둥하며 살아야 했던 미국의 삶이 언제였는지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평온한 해피엔딩이라 조금 덜 씁쓸하다.
셰퍼드,그가 아프리카도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 제2의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내 글리니스로 인해 정말 바닥까지 떨어져 보았기 때문이다.혼자서 다 감당하듯 가족을 어깨에 짊어지고 나가야 했던 고난한 미국의 삶,분명 잭슥이나 타인들이 보면 행복한 삶처럼 보였겠지만 결코 행복한 삶이 아니었다.집 한 채없이 살았고 자신이 일군 회사를 매각 후에 회사는 몸채를 몇 배는 크게 늘려 그야말로 그가 가졌던 부는 빙산의 일각이었다. 왜 그렇게 현실에 눈을 뜨지 못했던 것일까? 대학을 다니지 않서일까? 그렇다면 행복의 기준은 가치는 어디에 두어야 할까? 평생 신을 모시고 살았던 아버지가 자신이 눕게 되고 신을 부정하듯 자본주의속에서 잉태하고 숨쉬고 살았던 그가 자본주의를 떠나 자연속에서 적응하며 살 수 있을까? 그가 살았던 미국에서는 그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이었다면 펨바에서 그란 존재는 반짝반짝 빛나는 값어치를 지녔다.꼭 많이 가져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즐기고 어떻게 생각하며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어쩌면 아내가 선물해주고 간 제2의 삶이다. 그녀가 없었더라면 바닥까지 내려가보지 않았을 것이며 제2의 삶을 위한 종잣돈도 마련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내 때문에 경험하게 된 자본주의의 실체에 진저리도 치지 않았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다 보니 나도 나이가 들어 병원생활을 많이 하게 되지만 부모님을 지을수가 없다. 부모도 가족도 짊어지고 가야 한다. 그래서일까 소설이 더 와 닿는다. 현실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게 해준다.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셰퍼드와 잭슨의 이야기는 여운이 길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