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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그대 쓰러지지 말아 - 삶의 굴곡에서 인생은 더욱 밝게 빛난다
김재식 지음, 이순화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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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이라도 병원생활을 했거나 혹은 몸이 많이 아팠던 이들이라면 오늘 하루가 그리고 함께 하는 가족들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이며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지 알것이다.나 또한 두어번 큰 사고를 겪으며 병원생활을 오랜시간 해보기도 했고 병원신세를 해마다 한두번씩은 지면서 가족들의 소중함,바로 곁에서 있는 사람의 소중함과 내가 살아가고 있는 오늘이라는 시간에 감사해야 함을,내 주어진 삶에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는 절실하게 깨닫는 시간들었다. 그야말로 죽을 고비를 넘겨 보았던 이들이라면 큰 고난이 와도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지난 아픔 속에서 더 깊게 솟아 나는 듯 하다.
선천적을 아픔을 간직하게 된 사람을 고통을 당연하게 받아 들이며 살거나 운명처럼 여기게 되지만 후천적 장애나 아픔은 자신뿐만이 아니라 주변인들도 고통을 감내하기에 힘들다. 그것도 어느날 갑자기 자신에게 찾아 온 고통이라면 정말 힘들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가면서 선척적 아픔보다 후천적인 고통과 더 많이 마주하게 된다. 요즘은 큰 병에도 돈이 있어야 생명이 유지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정말 병과 돈이란 어떻게 떼려고 해도 떼어낼 수 없는 불과분의 관계처럼 되어 버렸다. 집안에 누구 한사람 아프게 된다면,그것이 오랜시간 병을 안고 살아가게 된다면 우선은 생각하는게 병원비와 그에 관계한 경제적인 여유다. 긴 병에 효자없듯이 한사람 아픈 것으로 인해 집안에 깃드는 그늘과 그로 인한 경제적인 부담으로 인해 점점 가족이 와해되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내 주변에도 그런 이들이 몇 있다. 오랜시간 사고로 인해 식물인간으로 있는 아들 뒷바라지로 인해 부모는 점점 살림을 줄여 나가는 이도 있고 결혼과 동시에 쓰러진 아내가 식물인간으로 있어 그도 또한 일자리며 경제가 바닥이 나 이젠 그야말로 벽에 부딪힌 경우도 있다. 가족이기에 포기하지 못하고 떠안고 살아가는 이들을 보며 내 고통은 너무 초라하고 보잘것 없다는 것을 그리고 내 주어진 삶에 감사를 살아야 한다는 것을 늘 느낀다.
인간이 불행한 것은 자신이 행복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인생의 바닥,더는 아무런 희망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순간에 내가 행복하도록 설계된 인생의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혼 20년 어느날 갑자기 닥친 아내의 고통, 삶의 굴곡앞에서 일도 가정도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아내를 위해 24시간을 함께 해야 하는 남편,그런 사정으로 인해 뿔뿔히 흩어져야 했던 자식들을 생각하면 남편의 맘도 그렇지만 아내의 맘은 얼마나 아플까? 나이 들어보니 아픈 것도 가족에게 미안할 때가 있다. 아이들이 성장하고 나서는 정말 아파도 아픈티를 못 내고 살아가는 것이 '엄마' 의 자리이다. 금방 훌훌 털고 일어나는 병도 아니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병마와 싸워야 하고 저자의 말처럼 한번 망가진 건강을 회복하는 것은 달팽이 걸음보다도 더 느리다.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아파 본 사람이라면 뼈저리게 느낀다. 그리고 더 건강을 지키려고 노력을 한다. 건강한 사람은 건강이 중요하고 소중하다는 것을 잘 모른다.하지만 한번 쓰러져 본 사람만이 그 고통을 더 절실하게 느끼는 것이다.하물며 병명도 없이 한순간 모든 것을 잃게 된다면 정말 왠만한 사람이라면 하늘을 원망하며 살터인데 이 가족에게서는 '희망'을 읽게 된다. 그러니 다른 이들도 그들을 만나면 알게 모르게 도움을 주게 되지 않을까. 동병상련이라고 아파 본 사람많이 그 마음을 안다. 주머니를 열게 되는 것도 돈이 넘쳐 흐르는 사람보다 그 마음과 고통을 아는 이들이 더 주머니를 열고 나눔의 삶을 산다는 것.어쩜 딸의 이름까지 나눔으로 어린 딸이 보내야 했던 시간도 감당하기 힘들었을텐데 구김살없이 잘 커주었는지.나도 물론 두 딸을 키우고 있지만 울컥하여 한참을 혼났다.이런 딸을 보면 엄마는 더 힘을 내게 될 듯,아빠 또한 자식들을 위해서 더 열심히 아내의 병간을 하며 '쓰러지지 않고' 버티어 견디어 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될 듯 하다.
세상에는 빚을 갚는 길이 두 가지가 있는 것 같다. 직접 돌려주는 방법과 언젠가 다른 어딘가에서 선의를 베푸는 방법,그렇지 않으면 이렇듯 애상치 못한 곳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선의의 도움을 어떻게 갚을 수 있을런지 설명할 길이 없다.
누구나 자신에게 닥친 고통이 제일 커 보인다. 타인의 고통은 보이지도 않거니와 내 고통과 견주어 보았을 때에 타인의 고통은 너무도 미미하게 보인다. 하지만 사람마다 그 속을 들여다 보면 굴곡없는 삶이 없다. 모두가 질곡의 파도를 넘어 맞이하게 되는 파안의 그 시간은 더 값지게 느껴진다.평범한 이라면 쉽게 움직일 수 있는 엄지손가락 하나를 움직이기 위하여 일년의 시간이 걸리고 귤 하나를 까기 위하여 숱한 시간을 보내야 했지만 그 시간들을 결코 견디어내지 않고 포기했더라면 어떠했을까? 그 값진 감사의 시간을 가지지 못했을 터인데 포기하지 않고 곁에서 그리고 아내가 견디어 준 시간이 참 눈물겹다. 책을 읽는 순간에 계속하여 가슴을 두드리는 문장은 '만약에 내가(우리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정말 이런 상황을 맞게 된다면 어떻게 했을까? 이보다 작은 고통이어도 살면서 숱한 고통과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했고 견디어 왔지만 정말 하나의 선택을 위하여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라는 물음을 가끔 던지기도 하는데 그런 순간이 온다면 참아내지 못할 듯 하다. 정말 모두가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다. 참아내야 하는 본인도 힘들겠지만 남편의 자리도 자식들의 자리도 한참 힘든 상황이라는 것, 정말 저자의 말처럼 언젠가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에는 어디에서 만나야 할까? 병원 앞 모텔 병원로비... 막막함은 가장의 자리도 그렇고 그 순간을 또 준비해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아내에게 오롯이 함께 하는 시간이 누구에게도 보상받는 것이 아니지만 5년 아니 그보다 더한 시간을 견디어 주길 바라는 마음은 사람이기에 누구가 가질 수 있는 욕심이라 본다.
의미가 있다고 매달리던 숱한 일들 중에는 안 해도 별 문제가 없는 것들이 많다. 의미란 삶의 진행에 따라 달라지는 것인데 우리가 관성대로 살다 보니 낡은 의미를 버리지 못하고 새로운 의미를 찾지 못하는 것이다.
친정아버지가 폐암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아버지가 우리와 함께 하실 시간이 얼마나 남은 것일까? 정말 마지막이라는 그 시간이 올까? 그 시간을 어떻게 기다리지? 하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해야 하는 평범함을 가장한 거짓된 마음으로 아버지를 마주하는 그 시간이 결코 좋지 않았다.하지만 함께 하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나쁜 모습과 얼굴보다는 한마디 한번의 마주침에도 좋은 모습과 웃는 얼굴로 그렇게 지내려 애썼고 그렇게 보낸 시간들이 지금 생각해 보면 마음 아프면서도 어쩌면 아버지께 해 드릴 수 있는 나의 최선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아픈 사람도 고통이지만 곁에서 지켜보며 함께 하는 이들의 고통은 더 말할 수 없이 깊다는 것을 안다.그들이 이겨낸 6년의 시간을 어떻게 말로 다할까? 지난 시간은 고통이라고 하면 이제 희망을 건져 올리며 혼자가 아니라 함께 견디어 내는 시간으로 슬픔이 아픔이 반으로 줄어 들어 달팽이 걸음이라도 희망이 있다면 그 희망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마음을 표현한 글이 가슴을 아프게 하고 보다 더 가족들에게 사랑을 베풀어야겠다는 마음을 다잡게 만든다. 산다는 것 별거 아닌데 무얼 바라고 그렇게 욕심을 채우려 사는지 이들 가족의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면 나의 오늘도 그리고 가족도 모두가 감사하며 살게 될 듯 하다. 사람은 위를 쳐다보면 살지 못하지만 아래를 보면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 가족이라는 끈끈한 사랑이 아직은 현존하고 있고 내일에도 있을 것이기에 희망이라고 본다. 꼭 언젠가는 가족에게 따뜻한 밥한끼 해주는 그런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