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
정호승 시, 박항률 그림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정호승 시인이 30년간 발표했던 작품 중에서 가장 사랑받았던 70여편을 모아 놓은 시선집으로 박항률 그림이 첨가되어 더욱 아름다운 시선집이다. 내가 특히나 가보고 싶은 곳이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도 나왔던 곳인 '선암사'와 '운주사'다.선암사의 해우소 앞 굽은 소나무는 시인의 시 때문에 더욱 유명해지지 않았나 한다. 선암사에는 매화나무도 보아야 하지만 해우소 앞의 소나무도 눈여겨 보아야 할 듯 하다. 선암사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선암사 해우소앞/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정말 눈물이 나는 일이 있을 때에는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을 하며 풀어야 할 것만 같다. 정말 해우소앞에 등 굽은 소나무가 있을까. 시인의 감정이입에 독자 또한 함께 공감을 하며 카타르시스를 해야만 할 듯 하다.

 

어릴 때에는 그리고 이십대에는 시집을 정말 많이 읽었는데 요즘은 무슨 일이 있어야 겨우 찾는 것이 시집이다.그만큼 감성이 메말랐다는 것일까. 시를 읽다가 맘에 드는 시가 있으면 몇 번을 읽고는 외워 가끔씩 되새김질 하듯 외워 보곤 했는데 요즘은 그런 감성도 말라 버렸다.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그래도 시인의 익숙한 시를 다시 읽어보니 정말 좋다. 수선화...' 울지마라/외로우니까 사람이다/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글이란 어느 시기에 읽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이십대에 이 시를 읽었을 때와 지금 읽는 느낌은 다르다. 그 깊이를 덜 느꼈다면 지금은 어느 정도 그 맛을 안다고 해야할까. 외로우니까 사람인것은 당연하고 그 외로움을 견뎌내야 하는 것이 사람이지만 요즘은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의 선택을 하는 이들도 많다. 그만큼 외로움은 현대인들에게는 무서운 병이 되고 말았다. 모두가 가깝게 소통을 하고 있는 듯 해보이지만 개개인을 놓고 본다면 얼마나 외로운 존재들인지.하루 외로움을 견디며 살아가는 것을 보면 대견하다고 볼 수 있는 이들이 많다. 우리집을 보아도 많이 않은 식구 네 명,모두가 각자의 삶처럼 분리되어 있다.딸들은 딸들 대로 각자 객지에 떨어져 있고 옆지기는 나름 바쁘니 함께 하는 시간은 주말에 잠깐이다. 모두가 각자 외로움을 견뎌야 하는데 소통한다는 것은 SNS를 통해서 그리고 전화를 한다는 것도 극히 아주 짧은 시간만 허락되는 것이 현대인의 삶인 듯 하다. 자신들의 삶에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며 외로움을 이겨내는 것 같다.

 

강물...'그대로 두어라 흐르는 것이 물이다/사랑의 용서도 용서함도 구하지 말고/청춘도 청춘의 돌무덤도 돌아보지 말고/그대로 두어라 흐르는 것이 물이다/...' 그대로 두기 보다는 우리는 막아서 무언가 다른 용도로 쓰기를 좋아한다. 물은 가두어 두면 썩는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데 썩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한번 가두어 둔 것을 다시 흐르게 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물이 흘러야 길도 되고 물이 되는데 흘러서 가야 하는 희망을 꺾으며 우린 무엇을 얻으려 하는 것일까. 그리운 부석사...'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오죽하면 비로자나불이 손가락에 매달려 앉아 있겠느냐/기다리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아미타불이 모가지를 베어서 베개로 삼겠느냐/새벽이 지나도록/마지를 울리는 쇠종 소리는 울리지 않는데/나는 부석사 당간지주 앞에 평생을 앉아/그대에게 밥 한 그릇 올리지 못하고/ 눈물 속에 절 하나 지었다 부수네/ 하늘 나는 돌 위에 절 하나 짓네//' 부석사에 아직 가보지 않았다.이 또한 가보고 싶은 곳인데 시인의 첫 트임이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라고 하니 괜히 움찔한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사랑이 얼만큼의 값어치를 할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미운 정 고운 정에도 사랑이 들어가는데 절을 지었다 부섰다 하듯이 살다보면 사랑이 미운 사랑으로 변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발목을 잡을 때가 있다. 그런 이유로 삶에 말뚝을 박고 살아가게 하는데 '사랑하다 죽어버려라' 미워하다 죽어버리는 것보다 아름답다고 처절하다고 해야 하나 감사하다고 해야하나.

 

시집을 읽으니 마음이 따뜻해진다.덕분에 사과레몬차를 따뜻하게 한 잔 타서 시집을 읽으며 마셨다. 나 또한 시를 쓰고 싶어 한참 시를 쓴다고 잡글을 쓸 때가 있었다. 그냥 내 감성에 솔직해지고 싶어서 썼던 글을 요즘 다시 읽어보면 그때 가졌던 마음을 조금은 기억하며 다시금 되새김질 하다보니 다시 시가 쓰고 싶어졌다. 하지만 너무 삶에 때가 많이 타서일까 시어들이 모두 도망을 간 듯 하다. 시집이나 읽으며 감성충전을 하는 것이 낫겠다 싶은데 누가 내 글을 읽고 무어라 하는 것을 싫어라 한다.그 느낌 그대로 간직하기를 원하는데 시인의 시는 '봄눈' 처럼 마음에 내려 따뜻하게 그리고 더러움을 깨끗하게 씻어 주는 느낌이다. 겨울눈과 다르게 봄눈은 조금 따뜻한 느낌이 드는데 그런 기분이다. 봄눈은 봄눈이 내리고 나면 봄이 올것이라는 희망과 기대감이 작용하여 더 따뜻하게 감성이 상승하는 듯 한데 그래서일까 시와 그림이 마음에 내리는 봄눈 같다.그리고 읽다보니 몇 편 다시 외워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시집을 오래전에는 가방에 꼭 넣고 다니며 틈만 나면 보았는데 이젠 그런 여유를 잊어버린 듯 하다. 봄눈...'봄눈이 내리면/그대 결코/다른 사람에게 눈물을 보이지 말라/봄눈이 내리면/그대 결코/절벽 위를 무릎으로 걸어가지 말라/봄눈이 내리는 날/내 그대의 따뜻한 집이 되리니/그대 가슴의 무덤을 열고/봄눈으로 만든 눈사람이 되리니/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사랑과 용서였다고/ 올해도 봄눈으로 내리는/나의 사람아//' 따뜻한 감성을 충전하였으니 세상을 좀더 따뜻하고 여유롭게 바라보며 살아야겠다.험한 일들이 일어난다고 덩달아 험해지는 것이 아니라 봄눈처럼 따뜻하게 모든 것을 덮어주며 사랑과 용서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며 살아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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