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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주 10 - 제3부 상도
김주영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9월
평점 :
<객주 전9권>과 <아라리 난장>등에 빠져 읽었던 것이 06년인가 그 전인가이다.저자의 <객주>는 읽는 것만으로도 우리말사전이나 속담사전을 대하듯 지금 현재는 우리가 잘 쓰지 않는 말이나 국어사전에나 있을법한 단어들이 많이 나와 조금 낯설기도 하면서 그 시대속으로 쏙 빠져 들어가 보부상,서민들의 생활속에 깊게 빠져 들 수 있는 소설이다. <객주> 9권의 책을 읽을 때 아쉬움이 남았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보부상 그들의 마지막 이야기가 나온다고 하여 얼마나 기쁘던지. 이 기회에 다시 <객주>를 읽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때는 읽은 것으로 만족했는데 이제는 다시 한 권 한 권 읽으며 리뷰를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요즘은 전자책이나 웹툰등 긴 소설보다 간단하고 간편하게 볼 수 있는 책을 선호해서인가 대하소설에 빠져드는 이들이 드물고 그런 소설도 드문데 이렇게 오랜 시간 후에 대단원의 매듭을 짓는 책이 나오니 이채롭고 저자의 열정이 더 느껴진다.
이 소설을 완성하기 위하여 그가 얼마나 많은 발품을 팔았는지 그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언젠가 티비에서 나와 그가 보부상들의 그 마지막 길을 개척하듯 그들의 이야기를 캐기 위하여 노력하는 모습에 진정한 장인정신을 느꼈다.그렇게 하여 객주는 우리 손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니라 한사람 한사람 진정한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이름없는 별과 같은 보부상들에게 이름을 얻게 만들어 준 이야기다. '십이령'길, 경상 울진 흥부장에서 봉화의 춘양장으로 넘어가는 십이령고개를 넘어 울진의 소금을 내륙 봉화에 나르던 그들의 묵직한 이야기가 한바탕 이 책에서 펼쳐진다. 등짐으로 혹은 나귀를 이용하여 함께 하며 고개를 넘나들던 그들이 조직적이며 계급적이고 그런가하면 자신들의 상단을 지키기 위하여 때론 화적과도 싸워야 하고 인생사 보부상의 길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맘에 드는 이가 있으면 가정도 꾸려야 하고 애도 낳아야 하고 다른 식솔들도 꾸려야 하는 핍박한 그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승냥이 울음소리를 낙으로 삼아 십이령 가풀막진 된비알에 발불이고 살아가는 것을 울진 내성 소금 상단뿐인 줄 알았던 것이 큰 불찰이었습니다.흉도들이 그곳에 소굴을 만들고 내왕 길손들의 봇짐과 등짐을 늑탈하고 심지어 인명까지 살상할 줄 미처 예상치 못했습니다. 이들을 진작 도륙내지 못하면 내왕이 끊이지 않았던 십이령 길은 며칠 못 가서 작당들에게 유린당해 개호주나 쏘다니는 적막강산이 될 것이고,울진과 내성의 백성들이 가계가 피폐하여 장차 어떤 환난을 치르게 될지 예상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혼자서 하는 장사가 아니라 무리를 지어 이동한 상인들이라 그들나름의 철칙과도 같은 보부상들의 '상도'가 있는가 하면 그들 속에서 잘못을 하면 그들의 법칙으로 응징하고 흐트러지지 않는 무리를 만들기 위하여 나이 어린 것부터 얼마나 다부지게 교육을 시키는지 정한조가 이끄는 무리의 '만기'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남자가 아니라 집을 나온 어린 걸인여아나 마찬가지였는데 걸식을 하는 것보다 상단을 따라다니며 나귀를 돌보는 일이 배를 곯지 않는 일이라 그녀를 남장시켜 데리고 다니며 비밀을 끝까지 지켜준다. 그렇게 다부지케 키워 놓은 만기를 다시 여인네로 돌려 놓고 싶지만 만기가 허락을 하지 않는,아니 정한조에게 적을 두어 상단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으니 그들의 결속력 뿐만이 아니라 다른 면에서도 뒤쳐지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울진에서 소금을 봉화로 나르던 정한조 상단이 다른 패들 뿐만이 아니라 자신들도 도적의 목표물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들은 화적떼를 그들 법칙으로 소탕하려고 한다.그것이 모두가 사는 길이고 보부상으로 그들이 오래도록 삶을 유지하는 길이다. 장사길에서 우연하게 발견하게 된 사람,그를 그들은 정성껏 구안해 주지만 부상자는 입을 열지도 않고 과거에 대한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무언가 이상함을 눈치 챈 정한조와 그의 무리는 다른 이들이 화적에게 당하는 것을 보기도 하고 부상자를 누군가 찾아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들이 한패이며 모두를 소탕할 방법을 찾는다.십이령 고개에 화적이 들끓는다면 그들 뿐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도 길을 돌려 가기 때문에 주변은 성하지 않고 점점 황폐해져 갈 것이다. 정한조의 날카롭고 예리함과 그와 함께 하는 이들의 합심으로 인해 화적떼를 모두 잡기도 하지만 그들이 숨겨 놓은 장물까지 찾아 보부상들의 꿈을 현실로 이루게 될 수 있는 이야기가 마지막 장으로 펼쳐진다.
그는 반수 권재만이 들려준 이야기를 항상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었다. 그 말 중에는 장사 때문에 큰돈을 지니고 있을 때는 먼저 안전부터 생각하라. 될 수 있는 한 등짐의 부피를 줄이고 걸음을 재촉하여 신지에 빨리 도착하라.장삿길을 나설 적에는 집안의 신실한 아내라 할지라도 행선지를 알려선 안 된다. 집에서 한 걸음만 나오면 귀신같이 신속히 이동하고, 거룻배를 탈 적에는 자신이 장사꾼이란 것을 사공이 알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었다...
속고 속이며 이득을 보고 이득을 챙기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는가하면 자신의 이익보다는 타인과 함께 잘사는 방법을 택하는 이도 있다.자신들을 속여 이득을 보려 한 자를 징치하고 그곳에서 발을 뻗고 살 수 없게 만들어 보다 정직하고 정당한 상도의 길을 다져 나가기도 하지만 사람의 일이라 인연이라면 인연도 맺어 주고 어려움이 있을 때에는 서로 나누어 가지고 즐거움이 있을 때에도 함께 나누어 모두의 것으로 한다. 맨 몸으로 그야말로 몸이 밑천인 사람들이지만 정직과 자신의 배만 챙기는 이기심이 아닌 타인과 나눌 줄 아는 그들의 상도는 우리네 삶에 깊게 뿌리를 내린 그 어떤 것과 맥을 통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런가하면 가공되지 않은 서민적 언어가 주는 힘이 대단하다. 작가의 노력에 따르기도 하겠지만 그들이 쏟아내는 말이 정말 재밌어 살아 있는 난장판을 같으면서도 그 속에 활어처럼 싱싱한 힘이 느껴진다.
객주가 서민들의 삶,그야말로 장똘뱅이들의 삶을 그린 소설이라 더 드세고 억척스럽고 한 곳에 뿌리 내리지 못하는 부평초의 삶으로 굳건하게 보부상이라는 자리를 지켜야 하는 그들의 삶이라 더 핍박하면서 육담지고 걸러내지 않은 그들이 삶과 언어가 고스란히 담겨 몇 번 다시 읽어 보게 하는 말들도 있다. 무거운 짐을 비보라를 헤쳐가며 먼 길을 걸어 이문을 내야 했기 때문에 그들의 삶이라 그야말로 자연 속에 담금질되어 단단한 바윗돌 같았을 것이니 그들이 뱉어내는 언어 또한 순화되기 보다는 거칠고 투박한 언어가 맞는데 해설을 읽어봐야 뜻을 알수 있는 말들도 있고 정말 전권을 모두 다시 읽어 본다면 우리말사전을 한 권 읽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전편에서 천봉삼과 그의 아내의 일이 생각날 듯 말 듯 한데 마지막 편에서 천봉삼이 정한조와 함께 보부상으로 뿌리를 잘 내리게 되니 이야기의 마지막을 읽으며 다시 첫 권을 찾게 되는 계기가 될 듯 하다.
내가 어릴적에는 머리에 등에 짐을 지고 다니며 파시는 분들이 많았다.울집에는 단골인 생선장수 아줌마가 있었고 방물장수 할머니가 있었던 기억이 있다. 커다란 그릇에 생선을 이고 와서 장시간 한집에서 펼쳐 놓고 앉아 있으면 동네에서 떨이를 하고 가는 경우가 있었다. 그분은 아버지 친구분이시기도 해서 집에 오면 툇마루에 앉아 밥도 나누어 드리고 그야말로 이웃보다 더 친한 분이 되셨고 오래전에는 그분의 마지막 이야기까지 전해 듣게 되었다. 보부상이란 믿음이다.장사는 물론 고객과의 믿음이 중요한데 정한조와 그외 함께 한 이들은 그들의 이름에 걸맞은 믿음과 상도를 모두가 믿고 따를 수 있게 튼튼하게 해 주었다. 보부상,화적,숫막 및 그외 삶들이 거짓없이 드러나 조선후기 서민의 삶을 생생하게 지켜 보는 느낌이 든다.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는 기회를 꼭 만들어야 할 듯.이렇게 다시 객주를 만난 것은 고향에 다녀 온 기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