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이월도 흐르고 있네

 

 

감자와 고구마를 구워 먹으며 시작했던 십일월도 바쁘게 흘러가더니 십이월도 어떻게 시작한 줄도

모르게 바쁘게 흘러가고 있다. 옆지기는 날마다 회식 때문에 귀가가 늦기도 하지만 늘 술 술로 인해

제대로 얼굴을 마주하는 날이 없다. 그러니 울 여시가 아빠가 들어와도 본체만체하며 잠만 잔다. 옆

기가 그게 또 서원한가보다.자는 녀석을 깨우는데 한번 쳐다보고 그냥 잔다. 지난달말에 손가락을

다쳐 몇 바늘 꿰맸기 때문에 술을 덜 마셔야 하는데 무슨 술로 소독하는 것도 아니고 이건 날마다

술푸는 날이니 에효. 이달 1일에는 신고나간 운동화도 식당에서 누가 신고 갔단다. 커플 운동화로

그와 처음 똑같은 운동화를 사서 신고 결혼기념일에 놀러 갈 때 신고 가고 얼마 신지도 않은 운동화

인데 누가 새거와 같으니 신고 간 것인지 정말 어이없다.연말이면 꼭 신발에 관한 사건이 한번은

일어나니 어처구니 없다. 몇 해 전에는 구두를 가져가서 털레털레 다 떨어진 슬리퍼를 신고 오더니.

아니 남의 신발을 신고가고 싶을까.잘못 신고 갔으면 가져다 주던가하지.다른 신발도 아니고 커플

운동화로 장만한 것이라 더 서운하고 기분이 좋지 않다.

 

며칠 날이 따뜻한 듯 해서 뒷산에 산행이나 갈까 했는데 중국에서 미세먼지가 와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한다니 산행하려던 마음이 쏙 들어간다. 마트에 가서 비트를 사다가 효소를 담고 돌산갓을

사다가 울막내가 좋아하는 돌산갓김치를 담아야지 했는데 영 나가기가 싫다.오늘은 큰 맘 먹고 마

트에 나갈까 했는데 이른 아침부터 울엄니 전화,큰올케의 친정아버지가 아프다고 하시더니 기어이

영면하셨단다. 저녁엔 또 멀리 장례식장에 다녀와야 한다고 생각하니 하려고 했던 일들이 다 스멀

스멀 게구멍을 찾아 기어들어가 버렸다. 옆지기에게 톡하여 저녁에 장례식장을 예약해 두었더니

날마다 회식으로 술푼 이사람 정신이 없나보다.어제 늦은 시간 집에 와 막내와 톡을 주고 받어니

누가 했는지도 가물거리는지 묻는다. 요즘 누구랑 살고 있는 것인지.

 

연말이라 나도 바쁘고 옆지기도 바쁘고 모두 다 바쁘다.아침에 울엄니와 잠깐 통화를 하며 아버지

여든 생신을 산소에 가서 차려 드렸는데 안갔다며 좀 서운해 하시는 눈치라 그날 아버지가 꿈에 나타

나기도 했고 또 옆지기가 다쳐서 손가락을 꿰맸다고 했더니 엄마가 걱정을 하신다. 아버지가 내 꿈에

만 자꾸 나타나신다고. '엄마,그런 말씀 마셔.난 아버지가 좋은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날 믿어주시고

안아 주셔서 좋았어.덕분에 애비도 덜 다친것 같고.' 했더니 좋으신가 보다.늘 다른 식구들 꿈에는

나타나지 않는데 내 꿈에는 가끔 나타나시는 아버지,아직 내가 아버지를 보내 드리지 못한 기분도 들고

오늘 마침 올케의 친정아버지가 가셨다니 울아버지가 더욱 생각난다.어젠 <검은 모래>를 읽으며 소설

속 주인공인 제주 잠녀 해금이 폐암으로 소원했던 아들과 허무는 부분을 읽는데 왜 그리 눈물이 나던지.

한참을 줄줄 흐르는 눈물을 어떻게 하지도 못하고 책을 읽어 나갔다. 아버지가 가시기 전 두달 전에

아버지와 함께 했던 병원생활 일주일은 내겐 꿈같은 시간이었고 선물과 같은 시간이었다.아파도 아픈

티 하나도 내지 않으시고 즐겁게 막내딸과 병원생활을 하셨던 아버지,막내딸이 보고 싶어 꿈에 나타나셔

꼬옥 안아 주고 가셨는데 좋은 곳에서 평안하시길.아버지가 내게 힘을 주었으니 올 십이월도 올 한해도

잘 흘러갈 듯 하다.

 

2013.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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