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노릇 사람노릇 - 개정판
박완서 지음 / 작가정신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종이가 누렇게 변색되어 그야말로 책냄새 구수하게 나는 책이다. 이런 책을 왜 오래전에는 읽지 않은 것인지 후회된다. 저자가 가고 난 후 그의 책들을 찾아 읽고 있는 나,문득 이시대에는 이런 노작가의 힘이 필요한데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이 책에 쓰인 글들은 우리가 정말 어렵고 힘들다고 했던 'IMF' 그 시대에 쓰인 글들이라 더 따뜻한 위로가 된다. 누군가는 따끔한 말을 해주는 이도 있어야 때론 정신이 번쩍 하고 나는 것이다. 책 머리에 저자가 쓴 '어려운 시기에 책을 내게 되었다. 약속한 걸 안할 정도로 호들갑을 떨고 싶지 않아 그동안 써온 짧은 글 중에서 웬만한 걸 추려보았다.어려운 때일수록 위로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어려운 시기에 책을 내는 것이 무척이나 미안한 마음을 드러내고 있는가 하면 어려운 때일수록 정말 누군가가 따뜻한 위로를 해준다면 영원히 잊지 못하는 법인데 그 시기에 읽었더라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이라도 어렵지 않은 것은 아니다.어느 때나 다 고만고만 하고 여유보다는 늘 마이너스 인생처럼 그렇게 살고 있으니 우린 늘 누군가의 따뜻한 위로를 필요로 하고 있다.그런 시기에 저자의 책들을 한 권 한 권 찾아 읽다보니 겹치는 내용이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새롭고 어른들 말씀이 같은 말씀 몇 번 반복하며 하셔도 들을 때마다 구수한 것처럼 그와 같다.그런 마음으로 읽었다.

 

조금 지난 글들이니 어느 정도 연세가 있던 노작가는 '죽음' 에 대하여,자신의 마지막에 대하여 이런저런 생각을 풀어 놓은 글을 만날 수 있다. 자신은 그때 죽음을 예고라도 하듯 '암'에 대하여 혹은 혹시나 암에 걸렸다면 어떻게 하고 싶은지,저자의 남편이나 친정어머니의 삶과 죽음을 통하여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담담하게 이야기를 한다. 그런 글들이 결코 경박하다거나 노파심 보다는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 보는 문제들이고 내 부모님들을 보아도 윤달이 낀 해거나 아니면 동네 친구분들이 큰 병이나 죽음을 맞이했을 때 자신들의 죽음에 대하여 이야기 하시는 것처럼 담담하게 읽어 나갈 수 있는 것은 어쩌면 나도 나이를 먹고 있기 때문일까.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 죽음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도 한다. 자신이 생각한 대로 죽음을 맞이할 수는 없을 테지만 어떤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고,태어남을 준비하듯 죽음을 준비하는 이들도 종종 있다. 죽음도 분명 삶의 일부분 이기 때문이다.

 

가끔 나는 나를 토박이 서울 사람과 확연히 다르게 느낄 적이 있다. 내 성격 중 좋은 점이 있다면 그건 거의 나의 촌스러움에 근거하고 있다는 걸 자각할 때이다. 그리하여 고향은 어머니에게뿐 아니라 나에게도 자존심의 근거가 돼주고 있다. 이렇듯 내 고향은 아직도 나에게 살아 있는 모순이다.

 

그런가하면 글쓰는 방법 또한 변천사를 거침을 알 수 있다. 처음 부분을 무척 힘들게 쓰신 다는 것에서 글쓰기를 원고지에 하면 파지를 무척 많이 내는데 종이에서 컴퓨터로 옮겨 가면서 먼 옛날 이야기처럼 들리는 386나 586같은 이야기에서 노트북으로 그야말로 시대가 변함을 느낄 수 있고 컴퓨터에 글을 쓰면서도 바이러스에 대처하는 방법이 서투르기도 하지만 컴퓨터로 쓰면서의 장점과 단점을 읽어가며 정말 시간이 많이 흘러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자의 이야기 속에 많이 등장하는 친정어머니와 고향 박적골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재밌고 시골에서 살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고 간직하고 있는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나 또한 시골이 고향이기에 늘 어린시절 동무들과 뛰어 놀던 그 시간들을 지울 수가 없다. 그 때의 풍경이며 집주변에 있던 나무며 뒤란에 가득하던 시골스런 꽃이며 그 때 가슴속에 박혀 있던 것들을 지우지 못하고 지금 나 또한 그 때로 회유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나 또한 베란다에 도라지를 심고 더덕을 심고 초록이들을 가꾸며 살고 있는 것은 늘 시골집 뒤란에서 보았던 도라지꽃이 이쁘고 지금도 빛바랜 사진처럼 남아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맛'에 대하여 좀더 까다로워지는 것도 어쩌면 어린시절 아니 고향에서 먹었던 그 맛을 잊지 못하고 찾아 다니는 것일지도 모른다. 도시에 살고 있어도 우리 가슴속 한 켠에는 어린시절의 추억의 방이 자리하고 있다. 그것에 대하여 누구보다 강했던 작가와 친정어머니는 자신들이 고향과 그 때 박혀 있던 모든 것들이 표준처럼 현재의 삶을 흔들어 놓기도 하고 그 때로 회귀하듯 그가 찾아낸 곳은 고향과 비슷하다고 느끼는 아차산자락이다. 자신의 열정으로 찾아낸 곳은 아니지만 점점 그곳이 고향과 닮았다는,아직 지우지 못하고 간직하고 있는 어린시절의 박적골이 골수에 박혀 저자를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아차산 자락에서 또 다시 자신의 고집을 내세우는 그야말로 깐깐함을 보여주는 것 또한 미소지으며 읽을 수 있다.누구나 자신이 살아오고 느끼고 먹었던 것들이 '최고'라고 한다. 기억에 저장된 과거의 것들은 현재의 그 어떤 것도 따라오지 못할 것처럼 그렇게 삶을 흔들어 놓아도 왜 그 삶이 부러운 것인지.

 

어머니가 전쟁 중에 겪은 악몽 같은 경험으로 미루어 으레 그러려니 짐작한 고향의 모습이 결코 현재 북의 실재하는 고향땅의 참다운 모습은 아니듯이,어머니가 죽는 날까지 이상향처럼 그리워한 고향 역시 지금 현재 이북에도,그밖에 어떤 곳에도 실제할 수 있는 고향은 아닐 것이다.결국 어머니의 애착도 증오도 다 당신이 꾸민 허상에 비쳐진 것뿐이었다.

 

어떻게 보면 깐깐한 이웃 할머니의 '잔소리'처럼 여기저기 자신의 '목소리'를 내세우는 글들이 저자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또 이소리야' 할 수 있겠지만 늘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기에 평생 현역작가로 살지 않았을까? 고향을 닮아 가고 싶었고 고향을 다시 재현해 놓듯 현실을 만들어 가고 싶었어도 과거와 현재의 '간극'을 좁히지 못했음은 그의 글에서도 나타나지만 시간 또한 간극을 좁히기엔 너무 멀리 와 있음을 말해준다. 저자의 글을 읽다보면 과거와 현재의 간극을 볼 수 있다.아무리 발버둥쳐도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과거의 박적골로 친정어머니가 살아 계시던 그 시간 속으로 되돌아 갈 수는 없지만 다시금 글로 환생시키는 순간에 간극은 좁혀져 물은 다시 제 물길을 찾아 흘러가고 있는 것처럼 보여진다. 저자의 글에서는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이런 책들이 절판된 것이 아쉽다.저자의 책들을 중고책으로 조금 버겁다 싶을 정도로 구매해 놓고 한 권 한 권 곶감 빼 먹듯 읽고 있는데 참 좋다. 지금 내 마음을 표현해 놓은 듯도 하고 자신의 일상이 역사를 꿰어 놓은 것처럼 좋은 글이 되었다는 것도 참 좋다.평범한 것이 역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하는 것 같다. 그것이 이 시대 어른의 소리이고 어른 노릇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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