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
박완서 지음 / 창비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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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에 늘 꽂아 두기만 했던 책을 오래간만에 우연하게 빼들고 읽게 되었다.박완서님이 책은 한곳에 죽 꽂아 두고 한 권 한 권 요즘 파블숙제로 읽어 나가고 있는데 재미가 쏠쏠하다. 이 책은 1995년부터 2002년까지 쓴 수필 23편을 모아 놓은 책이라 '2002년 월드컵' 이야기도 나오기도 하여 그 때를 기억하며 읽을 수 있는 책이다.난 작가들의 장편도 좋아하지만 수필이나 단편도 무척 좋아한다. 이런 수필집을 읽다보면 저자의 삶의 일부분을 훔쳐보는 느낌이 들고 좀더 저자와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어 친근감이 있고 좋다.이 책도 그렇게 읽었다. 다른 책에서 읽어서 알고 있는 있는 내용이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참 맛깔스럽게 풀어 낸 수필을 읽다보면 '삶이 곧 글이고 소설'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가져본다.

 

그러나 나는 나도 모르게 툭하면 옛날타령을 하고 있었다. 옛날 식으로 무친 가지나물과 호박나물, 흰죽과 육젓, 고약처럼 까만알이 잔뜩 든 민물게장.이런 것들에 대한 그리움은 식욕의 차원이 아닌 정신적인 갈망 같은 거였다.

 

저자는 '박적골'에서 살았던 어린시절을 기억속에 고스란히 저장해 놓고 그것을 야금야금 꺼내어 글 속에 녹여 냄으로 하여 더욱 글을 맛깔스럽게 하면서도 어쩜 그렇게 세월이 흘러도 생생하게 기억을 하는지 글을 읽으며 늘 놀란다. 기억이란 시간이 흐르면 빛바래게 마련인데 그의 기억속에서는 늘 생생하게 어제일처럼 빛난다.그것이 늘 글에 모든 것을 담아 두기 때문이 아닐까 라고 생각도 해본다. 저자는 어린시절 부족함이 없이 살았던 박적골을 생각하며 나이가 들어서 그와 비슷한 곳에서 살고 싶어하여 아파트에서 산이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하여 화단을 가꾸고 동네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산에도 다니고 나물도 캘 수 있는 아치울에서 여유롭게 살아간다. 다른 것이 여유롭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여유로운,어린시절의 박적골과 비슷한 느낌의 집을 일구며 살아가는 일상이 행복으로 그려진다.

 

아치울 마당의 꽃들도 첫해만 씨를 뿌렸고,그 이듬해부터는 내 유년의 뒤란에 아무렇게나 피던 꽃들처럼 그 자리에서 저절로 돋아나게 됬다.그러나 이름만 같을 뿐 옛날 꽃하고는 많이 다르다는 게 조금씩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옛날 꽃들은 다 수수한 홑겹이었는데 요새는 채송화도 백일홍도 한련도 다 겹으로 피고, 송이도 크고 빛깔고 현란하다. 옛날보다 더 보기 좋게 종자가 개량된 것 같은데, 내 소원은 화려하거나 신기한 꽃이 아니라 마음 붙일 수 있는 꽃이다.

 

이 책은 그가 함께 어울리던 아치울 친구와 같은 화가와 함께 작업을 하려 했던 것인데 그녀가 그만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어 계획한대로 나오지 못하고 수필집으로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그림과 함께 였다면 얼마나 더 멋진 책이 되었을까? 박적골에서는 할아버지가 있던 공간과는 다르게 그의 방이 있던 뒤란은 그야말로 '꽃천지'다. 봉숭아 채송화 분꽃 백일홍... 흐드러지게 피고 지고.사람이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씨가 떨어져 나고 자라고 꽃 피고 지고.그런 뒤란을 보며 자란 저자는 그 속에서 고향의 아름다움을 더 간직하게 되지 않았을까? 그렇게 하여 그 때의 꽃들로 화단을 가꾸고 싶어 그야말로 옛날꽃이라 할 수 있는 꽃을 발견하게 되면 씨를 받아 화단에 심고 가꾼다. 텃밭을 일구기도 했지만 아치울에 오는 채소장사 아저씨가 싸게 주시는 것이 더 좋은 듯 하기도 하고 텃밭에 심으면 벌레들의 몫으로 돌아가는 것이 더 많으니 아마도 꽃을 더 심게 되지 않았을까.흙을 일구고 꽃을 가꾸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는 시간을 가지며 살아가는 아치울 이야기와 그와 함께 하는 세상 이야기는 늘 느끼는 것이지만 맛깔스러우면서도 늘 담백한 밥상을 한 상 받는 느낌이다.

 

책의 제목인 [두부]는 전 전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로 해서 그가 많은 이들에게 두부를 먹게 했지만 그는 감옥에 갔다 나오면서도 '두부'를 먹지 않는 일을 만들고 만다.내가 알기로 감옥에 다녀오면 제일 먼저 두부를 먹게 하는 것은 예전에는 콩이 귀했고 더불어 소금도 귀하니 사찰과 같은 곳에서만 두부를 할 수 있어서 귀한 음식이었던 두부였기에 감옥에 다녀오면 귀한 음식인 두부를 먹인 것이 굳어진 것이라는 의미를 읽었는데 다른 이들에게 또 그도 감옥을 다녀오고도 두부를 먹지 않았지만 어느 음식점에서 '두부'를 먹는 이들의 풍경을 접하며 맛깔스런 글로 풀어낸다. 저자의 눈은 자신의 이야기를 통하여 세상을 보는 이야기로 전환을 하면서 날카롭게 냉철하게 때론 꼬장꼬장한 노인네처럼 꼿꼿함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욱 그의 글이 살아 있는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그의 삶은 모두가 그야말로 '글이며 문학'으로 승화하여 남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그리고 '2002'년 월드컵을 다시금 글 속에서 만나는 느낌은 야릇하기도 하고 의미를 모를 쾌감이 느껴지기도 하는 것은 무얼까? 그 시간이 벌써 십년이란 시간이 더 지났다는 것이 깜짝 놀라게 한다.거리와 나라를 온통 붉게 물들였던 것이 어제일처럼 생생한데 시간은 이렇게 빨리 흘러서 지나가 버렸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모든 것은 내가 처해 있는 그 순간에는 무척 대단한 일처럼 느껴지지만 지나고 하면 점점 작아져 버리는 빛바랜 사진 속의 추억처럼 한 점이 되어 가물가물 스러져 가는 촛불처럼 빛나기만 하니 그 기억속 추억을 따라 한바탕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나 또한 어린날의 그 추억속을 거닐고 있는듯한 느낌이 들어 정말 기분 좋게 읽었다.

 

나 또한 어린시절에는 꽃을 좋아하는 부모님 덕분에 뒤란엔 늘 꽃들이 가득했다.그야말로 시골스런 꽃들인 봉숭아 도라지 함박꽃 호랑나비 백합 맨드라미 분꽃... 봉숭아가 피는 여름엔 손가락마다 봉숭아 꽃물을 들여야 그 시간을 보낸 듯 하기도 했지만 앵두나무에 앵두가 익어갈 때는 한바탕 앵두나무에 매달려 앵두를 따먹어야 했고 호랑나비 꽃이 화려하게 필 때는 씨를 따서 여기저기 던지는 재미에 빠지기도 했던 시절이 있었고 도라지꽃이 뒤란 가득 필 때는 얼마나 이쁜지.그 기억을 잊지 못해 지금 우리집 베란다 화단엔 도라지를 심어 여름이면 도라지꽃을 보고 있다. 어쩌면 기억이란 우리를 행복하게도 하지만 그 속에서 놓여나질 못하게 매두기도 하는 듯 하다.글롤 풀어내고 내 속에서 풀여낼 수 있다는 '추억과 기억'의 어린시절 이야기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그런면에서 어린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아이들이나 나 또한 감사한 일이라고 본다. 도시와는 다른 여유로운 기억을 가졌으니 말이다.

 

저자가 풀어내는 아치울 이야기는 우리가 나이가 들어 노년에 살고 싶어하는 그런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린시절을 추억하며 담장안에 매화나무 한 그루 살구나무 한그루 심어 가꾸고 화단엔 봉숭아꽃 채송화꽃 맨드라미 과꽃 분꽃 흐드러지게 피어 꽃 속에서 고향의 그리움을 달래며 그 시절을 추억하며 자연을 즐기며 사는 삶이란 누구나 꿈꾸지만 누구나 그렇게 살지는 못한다. 자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보태져서인가 다른 소설 보다도 더 친숙하고 친근감 있으며 더욱 맛깔스런 밥상을 받고 있는 행복함으로 읽었다. 가끔 가끔 글 속에서 지금은 잘 쓰지 않는 우리말이 나오기도 해서 더 기분 좋은 글이기도 하고 이젠 더이상 이런 글을 만날 수 없어서일까 감추어 두고 몰래 꺼내어 혼자 야금야금 그 행복을 누리고 싶은 글이기도 하다.장맛비가 오락가락 하는 가운데 울집 베란다에 도라지꽃이 활짝 피었는데 이 책을 만나 어린시절 고향의 추억을 생각하며 더 맛깔스럽게 읽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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