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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라 문서
파울로 코엘료 지음, 공보경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9월
평점 :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무엇을 할까? 전쟁이 바로 코앞에 닥쳐 왔다면 무엇을 해야할까? 해야 할 것은 많은것 같은데 아무것도 못 할듯도 하고 무엇을 해야할까 하고 생각하다가 시간을 다 보낼듯 하다. 전쟁이야기나 무슨 큰 일이 나기만 해도 '사재기'를 하는 일이 뉴스를 장식하기도 하는가 하면 어딘가에 문제가 생기면 폭동이 일어나 그야말로 아수라장을 만들기도 하는 일들이 가끔 일어나기도 한다. 그렇다면 오래전 십자군 전쟁이 발발 하기 전 사람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들 앞에 닥친 전쟁은 그들의 마음을 어떻게 흔들어 놓았을까?
'아크라 문서'는 1974년 영국의 고고학자 월터 윌킨슨이 이집트에서 고대 문서를 발견한다.아랍어, 히브리어, 라틴어로 쓰인 이 ‘아크라 문서’에는 11세기 말 십자군 전쟁이 시작되기 직전, 콥트인 현자와 예루살렘 사람들 사이에 오고간 대화가 기록되어 있었다. 그들은 콥트인 현자에게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 가지는 마음을 이야기 한다. 전쟁이 다가 온다는 것은 '삶의 끝에 이르렀다'라고 생각을 하고 모든 것이 파괴되리라 생각을 하고 모든 것을 놓아 버리듯 한다. 하지만 콥트인 현자는 '오늘이 삶의 첫 날인 것처럼' 그렇게 다시 시작하라고 이야기를 한다. 누군가는 말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도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라고. 내일 당장 멸망한다고 한다고 오늘 할 일을 하지 않고 앉아서 멸망만 기다린다면 어떻게 될까.
전쟁은 모든 것을 파괴하고 없애 버리고 죽음에 이르게 하며 가족을 해채시키기도 하는가 하면 그야말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전쟁 후는 으머것도 예견할 수 없는 것이다.자신이 살아 있을지 죽음에 이를지 모르는 상황에서 사랑이 열정이 생겨날까? 그런가하면 우아함에 대하여 아름다움에 대하여 생각할 수 있을까? 하지만 현자는 이야기 한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오늘도 어제처럼 그리고 내일도 오늘처럼 현재를 살아가라고 이야기를 한다.
싸움에 져본 적 없는 사람은 불행하다! 인생에서 승자가 될 일도 없으니
패배자란? 어떤 일에 도전을 해서 승리를 하지 못한 자가 얻는 패배는 그야말로 도전을 해 보았기에 얻을 수 있는 값진 경험이다. 실패도 경험이라고 했다. 패배도 경험이다. 도전을 해 보았기에 누릴 수 있는 값진 경험인데 이 또한 도전을 하지 못했다면 다음 싸움에서도 승자나 패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한 번 도전을 한 자가 다음 기회에도 도전을 하는 것이다. 늘 망설이고 있는 사람은 도전을 하지 못한다. 그러니 패배감도 느껴보지 못하고 승리감도 느껴보지 못한다. 도전이라는 실행에 옮길 때에 얻을 수 있는 자만이 느끼는 느낌을 그는 자연의 대순환을 예를 들어 말을 한다. 겨울에 나뭇잎이 나무에서 떨어져 내리는 것은 패배일까? 자연의 대순환 속에는 승리나 패배감은 없다.'변화'를 받아 들이라는 것이다.전쟁이 일어난다면 많은 것이 변할 것이다. 자연의 대순환처럼 받아 들이는가 하면 아직 닥쳐오지 않은 것을 미리 패배감에 젖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고독이란, ' 고독이 없으면,사랑은 그대 곁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인간이란 삶이 존재하는 한 시작부터 끝까지 고독이 함께 한다고 본다. 고독이 있어야 사랑도 오래 머문다는 말이 여운을 남긴다. 고독을 두려워 하고 사랑을 잃을 것을 두려워 한다면 사랑도 하지 못할 것이다. 사랑은 신의 영역이고 고독은 인간의 영역이라고 한다. 인간이 감내해야할 부분이라면 나무에서 나뭇잎이 떨어져 내리듯 기꺼이 받아 들이는 것이다. 어느 소년은 아직 어려서 전쟁에 나가지 못한다고 분해한다. 자책에 빠진 소년에게 자신을 사랑하라고 콥트인 현자는 말한다.자신을 사랑해야만 자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고 자존감을 가질 수 있다. 자존감을 잃어버린 아이들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목숨줄을 놓아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무언가 자신들도 존재감을 느끼고 싶은데 큰 전쟁을 앞두고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소년은 어떤 마음을 가질까? 그런 소년에게 자신감을 주고 존재감을 가지며 사랑하라 말한다. 그렇게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는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가 오는 것이다. 들판에 피어 있는 꽃 또한 꽃을 피지 않았을 때에는 그 존재감이 없지만 꽃이 피고 나면 그 아름다움이 드러나는 것이다. 꽃과 함께 향기를 날린다면 그때서야 벌과 나비의 발길을 붙잡는 존재감이 드러나며 그냥 잡초가 아니라 비로소 '꽃'이 된다. 어느 시인의 싯귀처럼 누군가 이름을 불러줘서 꽃이라는 의미가 되듯 활짝 피어남으로 하여 자신의 존재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나 꽃이나 때가 있는 것이다.아직 이르다면 기다리는 것이다.자신에게 맞는 기회가 오기까지 말이다.
포기하지 말기를, 사랑은 열쇠고리 맨 끝에 달린 마지막 열쇠다. 그 열쇠를 써야 비로소 문을 열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기를.
전쟁이 닥쳐 온다고 하니 모든 것을 포기하듯 자포자기하여 좋은 이야기도 듣고 싶고 아름다운 이야기도 듣고 싶어한다. 전쟁이라고 폐허만 있을까? 그 속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움도 있고 그리움도 있고 우아함도 있다. 인간이 살아 남는다면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고독이며 패배감이나 아름다움 등 모든 것을 다 느낄 수 있고 함께 할 수 있다. 전쟁이 모든 것을 빼앗아 가는 것은 아니다. 그러 속에서 변화를 두려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변화를 기꺼이 받아 들이는 사람도 있다. 전쟁이란 생이 있을 수도 있고 사死도 있는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 한다고 죽음에 이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게 닥친다면 기꺼이 맞아 들이라는,인간은 생이란 것을 시작했다면 죽음 또한 반드시 한번은 가는 길이기에 각오를 하고 있다면,아니 전쟁이라는 것이 닥쳐 오기에 어쩌면 죽음이란 더 일찍 맞게 될지도 모른다. 피한다고 죽음이 피해가는 것도 아니고 닥친다면 기꺼이 받아 들여라.
삶에 대해 '모든 게 늘 똑같고 변화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라고 불평하지 않으리라. 오늘이 내 생의 첫날인 것처럼,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하리라.
지금처럼 정보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모든 것이 풍부한 때도 아니었기에 전쟁이 가져 올 후폭풍에 사람들은 더 막연하고 막막했던 것 같다. 문명이 발달 했다고 죽음이란 것이 나를 피해가는 것도 아니고 누구 죽고 누가 살게 될지 모르는 것이 전쟁이다. 그런 상황에서 현자에게 사람들은 '희망'의 말을 듣고 삶의 에너지를 충전하지 않았을까? 현자가 전하는 말을 어느 일부분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기록으로 남겨 모두가 들을 수 있게 한 것이 '아크라 문서'라고 할 수 있다.전쟁이란 삶보다 희망보다 죽음과 패배감을 더 안겨주는 발발직전에 그들은 희망이란 단단한 철갑으로 무장을 하고 오늘을 살고 내일도 맞이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삶의 결과가 두렵다고 회피할 수 있는 전쟁도 아니고 삶을 두 동강 낼 것도 아니라면 하루를 살아도 삶의 방향과 과정을 올바르게 가지며 살아갈 일이다. 전쟁이 닥쳤다고 우왕좌왕하며 삶의 길을 잃고 헤매인다면 그 삶은 난파하고 말 것이다. 방향을 정하고 지금 바로 노를 힘차게 저어 나가야 전쟁이라는 폭풍속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삶을 노아 버리기 보다는 삶이라는 것을 꽉 움켜쥐고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라 한다. 희망을 버리지 말고 말이다.그것이 전쟁을 앞 둔 이들에게 만이 아니라 현재의 우리에게도 필요한 현자의 가르침인 듯 하다. 삶의 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는 이렇게 또 한의 삶의 연금술과 같은 이야기를 쏟아 내며 인생의 지혜를 가르쳐 주고 있다. 위기는 곧 기회다. 현자의 목소리를 등대 삼아 현재의 너울을 이겨내면 다음에 오는 너울은 좀더 단단하게 버틸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