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도 - 제3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김대현 지음 / 다산책방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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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문학상 수상작 '홍도' 덕분에 다시금 최명희의 <혼불>을 읽고 싶어졌다. 오래전 최명희의 <혼불10권>을 어렵게 구해서 읽게 되었는데 미완성의 '혼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한참을 이야기 빠져 있었다. 그 이야기가 마지막까지 쓰여졌다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야기의 시작에서 멈추어 버린 소설이지만 10여권에 담긴 이야기의 힘은 대단하다. 그런 소설의 문학상 작품인 '홍도' 역시나 주인공은 여자인 '홍도'이다.그녀는 누군인가? 역사에 기록된 것은 정여립이란 사람에 대해서이다. 기축옥사, 역사는 그를 역적으로 기록해 놓았다. 선구자였던 그는 그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자결을 함으로 생을 마감하고 그의 누나인 홍도의 할머니도 홍도의 아버지인 리진길도 모두 역적으로 죽음을 맞게 되었지만 리진길의 딸인 홍도는 정여립을 따르던 '자치기'라는 인물 때문에 목숨을 구하게 된다. 자치기는 양인도 아닌 그야말로 천민과 같은 인물이지만 정여립의 곁에서 그의 수발을 들면서 정여립의 뜻을 함께 한 사람이다.그는 홍도의 오라비가 되어 그를 지켜 주게 되고 그녀의 그리움의 대상이 된다.

 

역사는 배우고 익히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찾아내고 새롭게 쓰는 것이라고 했다. 지금 동현이 알고 있는 역사는 그저 기록한 자가 쓴 역사일 뿐, 지나온 과거에 있었던 진실 그 자체는 아닐지도 모른다.

 

27살의 동현은 '정여립 사건' 과 관여한 영화를 만들려고 그에 대하여 조사를 한다. 그가 헬싱키에서 인천공항으로 돌아오는 8시간 비행기 안, 그곳에서 우연하게 잠깐 화장실에 가려고 자리를 비운 십 분 시간만에 '리 영' 이란 인물을 만나게 된다.정말 우연하게 만났지만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던 것이다. 이야기는 8시간 비행시간 동안 '리 영'아니 홍도라 불리는 여인과 동현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숫자 '8'이라는 것은 어찌보면 모래시계와 같다고 느꼈다. 작가가 왜 숫자 '8'이라는 시간을 정해 놓았을까? 모래시계의 시간은 위 아래로 뒤집어도 똑같다. 홍도 또한 '영영'의 삶을 살고 있다. 그녀가 영원히 죽지 않는 삶을 부여받고 지금까지 살아 온 사백서른세 살이라는 나이를 무색하게 할 만큼 그녀는 이십대의 동현과 같은 탱탱함을 간직한 나이다. 나이를 믿을 수 없어 동현은 그녀의 나이를 믿지 못하고 이야기도 믿지 못하는데 그녀가 풀어내는 이야기는 여인 '홍도' 와 함께 정여립 사건부터 하여 사백여년이란 역사를 이야기 하고 있다.

 

소설에서 동현과 그의 이력은 저자의 이력이 이입된 것인 듯 하다. 그가 구상하는 인물은 '정여립' 이었지만 그를 파헤쳐 들어가다보니 그를 그리기 보다는 '홍도'라는 인물에 더 비중을 두게 되는데 그것이 소설에서도 똑같이 그려지며 정여립이 아닌 홍도의 이야기로 바뀐다. 그녀가 왜 홍도라고 불리게 되었는가? 정여립,죽도 할아버지는 그녀의 능력을 보고는 홍도라고 이름을 지어준다. 그녀는 어머니의 품을 느끼지 못하고 할머니 그늘 밑에서 살아 왔기에 아버지에 대한 정이 각별하다. 그런 그녀에게 죽도 할아버지 사건은 아버지는 물론이고 할머니까지 빼앗아 가게 만들었고 그녀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그녀가 관비나 그외 죽음에 몰리지 않은 것은 '자치기'라는 인물 때문이었는데 후에 그들은 각별한 부부의 정을 나누지만 그 또한 오래가지 못하고 짓밟히고 만다. 그런 가운데 그녀는 영원히 죽지 않는 불사의 생을 가지게 되면서 현재의 날까지 살아오게 된다. 역사에 기록된 것은 '기축옥사' 정여립 사건에 휘말린 그 가족의 이야기다. 그녀는 어쩌면 역사에 기록되지 못하고 빠져 버렸을지 모른다. 아니 그녀가 어떤 생을 살았는지 아무도 몰랐을지 모른다.

 

인간 수명은 유한했고 유한하고 앞으로도 또 유한할 것이다. 비록 살아 있는 동안 인간은 백 년 이백 년 아니 천 년이라도 살듯이 생각하고 행동하며 믿으려고 하지만 그 누구도 유한한 수명 앞에서는 보잘것없는 미물에 불과했고 불과하고 또 불과할 것이다.그것은 단 한 건이라도 예외가 있을 수 없는 사실이며 만고불변하는 법칙이다. 

 

역사에서는 이렇게 기록되지 못한 '삶'이 다시금 현대인들에 의해 부활하는 경우가 있다. 주목받지 못하던 이들의 삶이 소설로 드라마로 현대인들이 어떻게 해석해내느냐에 따라 그들의 삶은 아름답게 혹은 비극의 주인공으로 탄생하기도 한다. 김종서의 딸이 평민으로 살았을 것이라 하여 '공주의 남자'로 한참 드라마로 부활하여 주목을 받았었는데 이 소설을 읽으며 그 이야기를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렇다면 리진길의 딸인 리 영이 살았다면 이런 삶을 살았을 것이다하여 사벽여 년의 역사에서 굵직한 이야기들을 간추려 그 중심에 '홍도'를 놓아 본다. 임진왜란이나 천주교박해에 그녀가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야기는 그녀가 영원한 삶을 선물 받으면서 그동안 누려보지 못한 '아버지'나 '자치기'의 환생을 찾 듯 그 시대의 사람들 눈빛 속에서 아버지나 자치기를 찾아 낸다.환생해다면 그런 인물이라고 보고 역사를 이야기 해 준다. 기구한 홍도의 삶은 역사 속에서 빛을 내는 듯 하면서도 그리움에 안주하지 못하고 계속적으로 삶을 이어가는 홍도의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슬픈 삶은 역사다.

 

역사란 그 시대 살아 있던 살았던 사람들이 기록해 놓은 것인데 역사는 흔히 승자의 역사라고 해서 승자의 역사가 기록되지 패자의 역사가 기록되는 것은 아니다. 승자의 시각에서 본 역사가 기록되기 때문에 역사란 우리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정여립,그 시대에는 역적이었지만 그는 지금 현재 어느 지역의 거리 이름으로 지정되듯 그는 '선구자' 였다.시대를 잘 못 타고났기에 그는 자신의 삶을 살지 못했다.역사로 보면 그는 패자이지만 그의 삶으로 보면 승자라고 할 수 있을까? 어떻게 보면 그가 살아내지 못한 삶을 홍도라는 불멸의 생을 가진 여인이 대신 기록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그가 그려내지 못한 양인이나 평민이나 대동한 삶이 사백삼십삼년이 지난 날은 어떨까? 변했을까? 질곡의 역사를 살아내며 홍도가 살아내는 삶 속에서 모두가 평등한 삶이었을까? 임진왜란으로 왜로 끌려간 옹주와 그의 동생들은 역사에서 잊혀지듯 살아가야 했고 같은 동족이 서로에게 총을 겨누며 싸우기도 했다.역사란 무엇인가? 저자가 불멸의 삶을 주게 된 인물인 '홍도'가 역사에 관심을 갖게 만든다. 기록된 삶이나 역사 보다는 기록되지 못한 삶과 역사에 귀 기울여 보라고 이야기 하는 듯 하다. 불멸의 삶으로 계속되는 이야기가 천명관의 <고래>라는 소설을 생각나게 하기도 한다. 8이라는 모래시계를 뒤집어 보와도 똑같은 시간 똑같은 그 무엇이지만 위와 아래는 결코 똑같지 않다.전의 역사와는 다르게 후의 역사는 어떻게 누가 해석하느냐에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것,홍도라는 인물도 어쩌면 저자는 비극보다는 좀더 해피엔딩으로 살려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아니 역사를 부정적보다는 긍정적으로 해석해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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