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학교 푸른숲 어린이 문학 31
크리스티 조던 펜턴 외 지음, 김경희 옮김, 리즈 아미니 홈즈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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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이트의 슬픈 역사를 볼 수 있는 <두 개의 이름>을 읽고 나서인지 이 책은 그 와 같은 맥락의 글이고 같은 저자들이 쓴 책이다. 1940년대 서구인들이 캐나다 원주민 말살 정책으로 '원주민기숙학교'를 세워 이누이트 아이들을 강제로 학교로 데려가 강제적 교육을 시켰다. 원주민의 언어를 쓸 수 없고 원주민의 옷을 입을 수 없으며 그들의 음식을 먹을 수 없다.그야말로 우리가 일제강점기에 당했던 것처럼 캐나다 원주민들도 그들의 모든 것을 버리고 외지인의 옷과 음식 언어를 사용하며 강제적으로 외지인이 되어야 했다. 기숙학교는 학생수에 따라 정보 보조금을 받기 때문에 한 명이라도 더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와야 했고 원주민들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야만 생활 보조금이 지급되었으니 이런 악법이 어디 있단 말인가. 모두가 희생양이나 마찬가지.

 

"외지 사람들은 너에게 사냥하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아."

......

"너를 이용해서 자기들 배만 불릴 뿐이지. 너한테서 덫사냥 기술을 빼낸 다음, 덫에 걸린 짐승이나 집어 오라고 할걸. 게다가 외지 사람들은 먹을거리를 스스로 장만하는 법도 가르쳐 주지 않아.살코기 보관하는 법도, 생선 다듬는 법도! 파카나 카믹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지도 않지."

 

그 슬픈 시기를 견디며 살아 온 '올레마운'은 그녀의 며느리와 함께 자신의 지난 삶을 글로 쓴 것이 두 권의 책이다. <두 개의 이름>과 <나쁜 학교>.실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캐나다 원주민인 이누이트가 어떤 변화를 겪으며 살아 왔는지,외지 문명과 어떻게 싸우며 견디어 살아 왔는지 그의 생생한 경험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올레마운은 이누이트의 이름이 아닌 외지 이름인 '마거릿'으로 바뀌었는가 하면 더 나은 삶을 위해 글을 배우고 싶었고 책을 읽고 싶어 글을 배우고 싶어서 원주민기숙학교에 가길 원했다.아버지를 조르고 졸라서 기숙학교에 갔지만 글을 배우기 보다는 힘에 벅찬 노동을 해야만 했고 수녀들에게서 심한 굴육을 당하며 견디어 내야 했다. 교실 청소며 오물 비우기, 식당일에 방학 때에는 집에도 가지 못하고 병원에서 간호사 일을 해야만 했다.그녀가 견디어 낸 것은 이누이트의 강한 근성이 버티어 내게 했다.

 

"이 돌멩이 보이니? 이 돌멩이도 한때는 끝이 날카롭고 뾰족한 돌덩이였단다. 하지만 바닷물이 철썩철썩 때리고 또 때려서 모진 부분을 다 없애 버렸지. 이제는 그저 조그만 돌멩이에 지나지 않아. 이게 바로 외지 사람들이 학교에서 너에게 하려는 일이란다."

" 하지만 아빠, 바닷물이 돌멩이 자체를 바꾼 건 아니잖아요.게다가 전 돌멩이가 아니라 사람이에요. 제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요. 전 바닷가에 영원토록 처박혀 있지 않을거에요." 

 

 

그녀가 생각했던 학교가 아니라 이곳은 감옥과 같고 그들의 노동을 착취해가는 곳이기도 했지만 이누이트의 언어와 혼이 말살되는 곳이기도 했다. 뼈속까지 이누이트인 그들을 외지의 수녀들은 머리를 짧게 자르고 꺼칠한 교복과 스타킹에 운동화를 신겨서 외양은 서양인 비슷하게 만들어 놓았지만 그들의 속까지는 바꿀 수 없었다. 그들의 언어가 아닌 영어를 쓰게 한 것은 어찌보면 강압에 의한 것이라 더 자신의 것을 그리워하고 뼈속까지 이누이트이고 야생에서 살아가는 법을 뱃속부터 익혀 온 그들에게 학교교육으로 이누이트에서 서양인으로 만든다는 것은 두 문화의 충돌로 인한 기형아만 만들어 낼 뿐인데 이누이트의 강인함으로 잘 버티어 낸 올레마운은 동생들까지 잘 거두게 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토끼를 따라 간 것은 '호기심' 이었다면 올레마운이 원주민기숙학교에 가게 된 것도 새로운 언어와 문명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는데 수녀들에게 노동력 착취를 당하고 강압에 의한 교육및 '까마귀수녀'의 눈에 나서 늘 다른 친구들보다 놀림감처럼 당하게 되는 올레마운이 호기심에 새로운 문화를 배운 다는 것은 이누이트로 회귀하는 길을 더 빨리 깊게 가르친 격이 되었다. 회유보다는 강압이 어쩌면 반발을 불러오지 않았나 싶으면서 어떻게 뼈속까지 이누이트인 그들을 새로운 문화로 바꾸려 하고 그들의 터전을 빼앗으려 했는지.개발이란 것이 누구를 위한 것이고 그곳에 많은 천연자원이 있다고 자원에 욕심을 부려 원래 그곳의 주인을 내 쫓으려 한다는 것은 잘못된 개발이라고 본다. 외지인들이 이누이트 아이들에게 진심에서 우러난 교육을 했다면 부작용은 덜했을터인데 한 명 한 명이 돈이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교육이라기 보다는 노동력착취에 가깝다고 볼 수 있는 슬픈 역사.

 

그렇다고 그런 슬픈 역사가 그 시대에만 일어나고 현재는 일어나지 않을까?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실은 더 많은 아픔과 고통이 있을 것이다. 점점 그들의 터전은 좁아지고 외지의 문명은 그들의 삶 속으로 깊숙히 파고 들어 그들의 생명줄을 옭아 매고 있다. 이누이트의 삶이 언제까지 계속될까? 북극곰이 사라질 시간도 얼마남지 않았다는데 이누이트의 삶은 그렇다면 얼마나 남은 것일까? 답은 우리 손에 달려 있다고 본다. 그들의 문명과 역사가 그야말로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은 시간 문제이고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환경파괴로 인해 이누이트의 삶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다큐에서 보았는데 강압적으로 우리가 그들의 삶을 빼앗을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이누이트도 우리도 함께 공존하는 삶을 살려면 지금 있는 환경을 지키고 보존하며 살아야지 난개발로 지구가 몸살을 앓게 해서는 안된다. 아이들과 읽는다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책이고 아이들보다도 어른들이 더 읽어봐야 할 책인 듯 하다. 비단 이런 문제는 아이들에게 읽힐 것이 아니라 어른들의 문제이다. 우리의 양심과 욕심에 한번 이 이야기를 들려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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