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과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과일이 서로 부딪혀 얼이 먹거나 긇힌 자국이 있거나 하면 상품가치로는 질이 떨어져 싸게 팔리거나 상품값을 못하고 다른 용도로 쓰이거나 헐값에 판다. '파과' 하지만 그 본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과가 파과가 된다고 사과가 아닐까? '방역'이라고 자신들 업계에서는 그들을 지칭하는 살인청부업을 하는 조각,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끼' 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이 특이하다. 살인청부를 하는 60대 노부인은 '조각'이다. 어릴 때 부모곁을 떠나 홀로 살아야 했던 자신의 가족을 갖지 못하고 평생을 '살인'만 하면서 산다.어릴 때 잃어버린 '가족'이라는 조각과 이제 은퇴를 해야하는 나이가 되어 가면서 자신이 죽였던 이들의 '남은 가족'을 돌아보게 되고 가족을 가지지 못했던 그녀가 유기견을 데려다 키우지만 서로의 그만큼의 거리에서 다가가지를 않는다. 그런가하면 그녀를 쫒는 '투우'라는 삼십대 남자,투우라는 것은 목표물을 향하여 질주만 하는데 투우라는 젊은 남자 또한 조각을 향하여 '복수의 질주'만 한다.

 

투우가 왜 조각을 쫓게 되었을까? 조각은 왜 살인청부업자가 되어야 했을까? 그녀는 이제 자신이 이 일에서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몸이 예전과 같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평범한 삶을 살아보지 않아 평범한 이들의 삶에 흘러든다는 것이 쉽지 않다. 돈 있는 CEO의 아내로도 그렇다고 여유있게 나이들은 노부인으로 보이지 않는 평범한 이들과는 어디가 다른 무언가 섞이지 않는 그 무엇이 있다. 네일아트를 하고 싶어도 자신에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유리창 밖에서 쳐다만 볼 뿐 자신의 손에 할 생각을 못한다. 그런 그녀가 투우라는 젊은 살인업자가 쫓게 된다.투우라는 인물은 누구인가? 언제가 조각이 젊은 날에 가정부로 위장을 하고 들어가 죽였던 어느 가장,그 집에서 나올 때 그의 아들인 어린 소년이 그녀의 모습을 보았고 가정부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그리곤 세월이 흘렀다. 조각은 허리통증도 그렇고 슬슬 자신의 목표물의 남은 가족들이 보이게 되고 그들을 감싸게 된다. 나이가 들어서인가.

 

자신이 살기 위하여 선택하게 된 길이 '살인청부' 다. 자신도 모르고 있던 능력을 더부살이를 하다가 알게 되었고 그런 그녀의 끼를 '류' 라는 인물이 보고는 그녀를 그런 쪽에서 키우게 된다. 자신을 지키고 살기 위하여 선택한 길이 남을 죽여야 자신이 사는 일이다. 그렇다고 부모가 있어 그녀를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도 아니고 그속에서 날로날로 커나가고 세월이 흘러 가면서 노련함은 어느새 흔들리게 되고 그동안 자신이 누리지 못하던 것들이 하나 둘 고개를 든다. 이제 일반인으로 돌아가야 하는가보다.하지만 자신의 본질이 너무 깊숙히 박혀 빼낼 수가 없다. 사과는 썩어도 사과인 것이다. 살인업자가 세월이 흐른다고 살인업자가 아닐까? 하지만 언젠가는 이 일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평범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녀를 놓아주지 않는 한사람 투우, 그는 왜 자꾸 조각의 곁에서 맴돌고 있는가.

 

조각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유기견 '무용' 과도 섞이지 못하고 그만큼의 거리에서 살아가다 어느날 무용이 먼저 그녀의 곁을 떠나갔다. 그런가하면 자신이 죽여야 하는 목표물의 가족에게 향하는 마음,나이차가 있지만 그녀의 마음에 담긴 강의사에 대한 마음은 남다르다.자신의 단점을 덮어주기도 했지만 그녀는 그의 단점을 모두 보고 말았다.서로의 아픔을 보고 나니 더이상의 아픔을 만들고 싶지 않은데 자신의 목표물이 되었다.목표물을 제거해야할까 아니면 다른 길을 선택해야 할까.60이 지나서 뒤돌아 보는 조각의 삶,모든 것을 잃은 듯한 삶이다. 상실과 고독 외로움,자신이 지금까지 쌓아 온 금전 또한 어디에 남겨 줄 곳이 한 곳도 없지만 자신의 노후를 맡길 곳도 없고 자신의 외로움을 함께 나눌 이도 없다. 정말 허무한 인생이다. 남의 목숨만 빼앗을 줄 알았지 자신의 삶을 챙기지 못한 삶이다. 썩어 문드러진 파과처럼 언제 상품가치가 하락하여 '쓰레기'로 버려질지 모르는 상태다.

 

그런 상황에서 투우와 조각은 일직선에서 만나게 된다.그녀의 일을 방해하며 자신의 곁을 맴돌던 투우,왜 그랬을까? 그가 '그 소년이었을까?' 자신이 단기로 가정부 일을 하며 알약을 곱게 쌓아 약을 먹였던 아이, 너 였구나. 복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 놓기도 했지만 타인들의 목숨까지 담보로 삼으며 복수를 했어야 할까? 투우는 복수를 위해 자신의 생을 바쳤다면 조각은 썩어 문드러졌지만 이제 다시 남은 생은 찾고 싶다. 평범한 삶을 누리고 싶다. 유리창 너머에서 바라만 보던 '네일아트' 도 해보고 싶고 한 팔을 잃었지만 아직 온전한 한 쪽 팔에는 새 삶을 주고 싶다. 류를 만나고 시작된 인생이 류의 죽음으로 인해 멈추어 버린 후 '희망'을 가지지 않았던 삶이었는데 이제 그 희망을 내것을 삼고 싶다. 인생의 조각을 아직 다 채우지 못했고 찾지 못한 '조각'의 삶은 이제부터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육십평생 방역업을 하며 누군가의 삶을 '파과'처럼 만들었고 그 삶으로 인해 자신의 삶 또한 '파과'가 되어 버렸다. 다시 재생시키기엔 늦었다고 볼 수 있지만 남은 삶은 과거와 똑같은 삶으로 살고 싶지 않는 조각,자신의 남은 조각은 어느 틈에 끼워 맞추어서라도 햇빛 찬란한 공간 속에 아름다운 색과 생생한 형태를 가진 네일아트처럼 이제 그녀의 삶은 변할 것이다. 60대 노부인이 살인업자라니 정말 생각지도 못한 소설이었다. 소설의 구상이 냉장고에서 어느 날 발견하게 된 '파과' 인 썩은 과일에서 였다니 정말 뜻밖이고 나 또한 냉장고는 클수록 불필요한 존재로 점점 여겨지고 있다. 냉장고에 한번 들어가면 미로에 빠지듯 잊어가고 찾으려면 한참 걸리기도 하지만 냉장고에 들어간 물건을 싫어한닥.그러니 당연히 썩어서 나오는 것들이,상해서 나오는 것들이 많다. 냉장고가 썩지 않게 보관해줘서 좋은 것이 아니라 냉장고는 점점 '썩은 것들의 집합장소' 로 바뀌어가고 현대인들은 다람쥐도 아닌데 쟁여놓게 한다. 욕심을 더 불러 일으킨다. 냉장고가 없다면 많은 김치를 담지 않을 것이며 음식도 조금씩 먹을 것만 해서 먹을텐데 냉장고로 인해 모두 쟁여놓게 되고 그 안에 들어가면 온전하게 보전이 되리라 믿게 된다.썩어가는 줄도 모르고. 파과가 되기 전,사과가 사과의 능력을 가지고 있을 때 먹어줘야 하고 사람 또한 본질을 잃어버리기 전에 사람으로의 삶을 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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