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제임스 설터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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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겉표지와 저자에 대한 찬사 때문에 구매를 해 놓았지만 그냥 꽂아 놓기만 했다.그러다 우연하게 책장 앞을 지나다 빼들게 되었다. 결혼생활 이십여년이 넘어가다보니 내가 살아가는 하루하루도 롤로코스트를 타는 듯한 날이기도 하지만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가며 아니 도마위에 올려가며 칼질을 하는 맛도 참 재밌고 내 삶을 돌아보게 하기도 하고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생각을 가져보게도 한다. 인간이 '욕망' 때문에 좌절하기도 하고 참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기도 변화하기도 한다.살면서 욕망을 억제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힘든 일기도 하지만 결혼을 했다면 함께 하는 사람과의 약속을 위하여 믿음을 져버리지 않기 위하여 '욕망'을 분명 억제해야 한다. 하지만 '사랑은 움직이는거야' 라는 어느 광고의 카피처럼 처음 약속한 사람과의 믿음이 영원하리라던 생각과는 다르게 현실은 사랑을 움직이게 만든다.그렇다고 모두가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움직이지 않고 죽는 그날까지 한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분명 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욕망'에 움직이는 위기의 사람들 이야기다.

 

먼저 <어젯밤>부터 읽어보았다. 말기암 환자인 아내 마리트, 남편과 아내는 더이상 고통에 힘들어하지 않기 위하여 안락사에 동의를 한다.자궁부터 시작된 암은 그녀를 모두 집어 삼켰다. 안락사 그 마지막 순간에 둘만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가깝다 할 수 있는 수잔나가 함께 하기로 한다. 아내는 어느 날보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마지막 저녁식사를 하고 '그순간'을 맞기 위하여 방에 들어가 준비를 한다. 월터는 수잔나에게 함께 해달라고 하지만 그녀는 못 보겠다며 나간다. 월터는 냉장고에 있던 주사기,아내를 평안의 세계로 이끌 약을 들고 이층으로 올라가 그녀의 팔에 마지막 이승의 선물을 주입시킨다. 그리곤 밖으로 나오는데 수잔나가 가지 않고 차에 있다. 아내를 죽였다는 생각에 혼자 있고 싶지 않은 월터는 수잔나에게 아내하게 분출하지 못했던 욕망을 쏱아내듯 둘은 밤을 보낸다. 이층에는 분명 아내가 주검으로 있는데 말이다. 오늘의 아침은 어제보다 더 평온한듯 하다. 어제와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러나 이층계단에서 발자국소리가 난다. 죽었다고 생각했던 아내,그렇다면 그들의 작전은 실패로 끝났다는 것인가.자신과 수잔나의 어젯밤은 또 무엇이란 말인지.

 

위와 같은 상황이라면 수잔나는 월터의 맘을 받아 들여야 할까? 수잔나가 욕망에 눈이 먼 여자였다면 마리트가 숨을 쉬고 있어도 월터의 품을 찾았을 것이다. 월터는 그동안 아내에게서 느끼지 못했던 생생하고 탱탱하고 팔팔한 생을 수잔나에게 느끼지만 수잔나는 마리트가 아직 살아 있고 그날 아침을 잊을 수가 없어 월터를 받아 들일 수가 없다. 어젯밤 그들의 삶은 그렇게 엇갈려 버렸다. 마리트는 이승에서의 고통을 끊으려 했고 월터의 아내의 죽음과 함께 다른 욕망과 이으려 했다. 그것이 미수에 그치게 됨으로 그들의 삶은 다시 엇갈려 시작되지만 분명 어제와는 다르게 시작된다.하지만 정원의 자작나무는 어제보다 더 반듯하게 서 있다.삶이 자신들이 생각하는대로 이어진다면 이런 '욕망'이 탄생할까? 어젯밤과 오늘은 너무도 다르다. 그런 이야기들이 현실에서 우리를 울리고 웃게 만든다.

 

이십여년을 살아 오면서 타인의 삶에서 내 모습을 읽기도 한다.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넘쳐나는 것은 내게도 그런 일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기도 하지만 어제 바뀌지 않은 사람이 오늘 하루 아침에 바뀔 수는 없다. 조금씩 조금씩 한가지 한가지 아주 느린 걸음이라도 바꾸어 나가다보면 아니 고쳐 나가다 보면 서운하지만 작은 변화에도 뿌듯한 기쁨을 느낄 때가 있다. 내가 상대의 행동이 맘에 들지 않을 때에는 상대도 내 행동이 분명 맘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하지만 우린 상대가 내게 맞춰져 변화하기만 바란다.내가 변화하기 보다는 남이 변하기만 바라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결혼생활 처음 시작에는 서로의 목소리를 키우느라 내 단점을 보지 못하고 있다가 상대의 단점으로 인해 내 단점을 보게 되면서 나도 변해야 둘이 하나가 되는 생활이 평탄하리는 것을 느끼며 변해간다. 모두가 변해간다. 젊은 시절에 가졌던 욕망 또한 한사람에 정착하면서 서서히 상대에게 맞추어진다고 할까 그 모양이 변해가는 것 같다. 그런데 그 욕망의 불꽃이 아직 사그러지지 않고 남아 다른 곳에서 '반짝'이는 이야기들의 모음은 나처럼 이만큼 살아 온 사람들과 모여 앉아 속시원한 수다라도 나누어야 할 것터럼 위험하면서도 재밌다.

 

가질 것 다 가진 50대의 남자가 정부가 가져가 파티에 하고 나온 귀걸이 하나로 장인에게 들켜 아내와 헤어지게 생겼다. 왜? 모파상의 목걸이도 아니고 '귀걸이' 가 이렇게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키며 그의 오랜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니. 그 귀걸이는 다름아니라 장인이 아내에게 선물했던 것인데 정부의 손에 들어가면서 다른 장소도 아닌 장인이 나오는 자리에 정부가 하고 나왔다니.그 이후 장인은 아내에게 남편과의 모든 것을 끊어 놓듯 한다. 배신감,믿었던 사람에게서 믿음을 져버리는 일을 한 사위에게 장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인가? 정말 뻔하지만 그것을 받아 들일 수 없다고 발버둥친다. 이 위기의 남자를 어떻게 할까? 지금까지 소문이 무성했던 남자이기에 '귀고리' 사건은 그를 한번에 시궁창에 빠져 벗어날 수 없게 만든다.누가 뭐라고해도 본인은 아니라고 부정해도 이미 화살은 시위가 당겨졌다.

 

욕망으로 인해 위기에 선 남자와 그리고 여자들은 타인의 삶을 보면서 그동안 억눌려 왔던 감정을 드러내기도 하고 자신의 본심을 찾기도 한다.한 집안에 사는 이와 미묘한 감정이라는 것을 알아 차리고 끝을 알리는 아내이야기나 <스타의 눈> 이란 단편의 주인공은 모든 것을 가졌기에 모두의 손가락질을 받을 수도 있다.그녀가 거머쥔 부가 결코 땀과 노력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고 사랑이 아닌 돈에 이끌린 결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녀에게는 분명 사랑이었다. 사랑과 욕망 정열은 과하면 문제가 되기도 하고 남의 것이 더 욕심이 나기도 한다. 욕망에 눈이 먼 순간에는 모든 것이 다 내것처럼 보이지만 욕망은 결코 현실이 아닌 그 너머의 것이기에 현재를 잃게 만든다. 현재 자신의 것에 만족하고 감정을 억제 했더라면.

 

제임스 설터라는 저자의 책을 처음 읽어서인지 모두가 칭송하는 그의 소설이 내겐 '?' 였는데 <어젯밤>을 읽고나니 이런 반전이 하면서 삶은 어쩌면 이런 반전 때문에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 살다보면 '반전'이 오겠지 하는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어제와 다른 내일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지만 늘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늘 똑같은 날이야라고 할 수 있는 날들의 연속이지만 분명 어제와 오늘은 똑같지 않고 그 속에서 우린 나이 들어 가고 있고 변화하여 가고 있다. 어제는 '미안해'라는 소리를 못하던 사람이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르고나니 먼저 '미안해'를 하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타인이 변하길 바라면 세상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내가 변하면서 타인도 조금 바뀌길 바래야 좀더 여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 속에서 욕망의 끈을 붙잡고 있으면 힘들다.놓아 버릴 수 있는 것은 놓고 사는 것이 행복이다.이루지 못할 욕망에 목 매다보면 자신을 올아매는 올가미로 자신의 목을 조이는 경우가 된다.그런 사례를 주위에서도 간간이 보게 된다. 욕망이 자신의 발목을 잡게 하지 말고 놓아 버려라. 마음 편하게 말이다. 간결한 문장으로 이어지는 대화체가 들어 있어 쉽게 쉽게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삶이란 정답이 없지만 내 길이 아니라면 가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욕망으로 점철된 길이라면 반드시 더 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그 길 끝에서 내가 마주하고 싶지 않은 당혹함과 마주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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