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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름마치 - 진옥섭의 사무치다
진옥섭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6월
평점 :
어릴 적 바로 윗집에 할아버지 몇 분이 계셨는데 '시조창'이라고 하나 한시조 읊조리는 것을 정말 잘하셨다. 늘 동네에 할아버지의 시조창 소리가 울리고 할아버지를 찾아 오시는 분들이 계셔서 그야말로 동네에 시조 잘 하시는 할아버지들이 많이 오시니 구경 다니는 맛도 있었다.그것이 정말 어린시절,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인듯 하다.그런데 윗집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다른 한 분도 가시고 나니 그분들을 찾아 오셨던 분들이 나중에 할아버지들이 돌아가신 줄 모르고 오셨다가 너무도 서원해 하시는 것이다. 그분들만큼 잘하시는 분들이 없고 할아버지들이 가시며 시조창이 그시대 끝나고 말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어린시절에 늘 듣고 자라서 그것이 대단한 것인줄 몰랐다. 늘 이웃 할아버지들이 시조창을 하셨으니 더욱 귀한 것인줄 몰랐다. 그런가하면 그 '소리'를 배우려는 동네분들도 없었고 할아버지들이 가시고 더이상 동네에는 시조창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하지만 늘 어린시절을 뒤돌아 보면 할아버지들의 동네를 울리던 '소리'가 있었다. 그래서였는지 그시절이 더 풍성하고 여유롭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런 풍류가 좀더 이어졌더라면 하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
또 한가지 이야기는 친정아버지를 보내 드리고 친정엄마가 아버지를 보내 드린 뒷감정이 좋지 않다고 '길닦이' 그러니까 '씻김굿'이라도 해야 편할 듯 하다고 해서 아버지 살아생전,엄마도 그런것을 정말 싫어하셨는데 아버지의 영혼을 편하게 해드리는 길이라고 생각이 드셨는지 어떻게 해서 하게 되었다.나 또한 '무당'이라고 하면 매끄러운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아 '왜 하필...' 하며 식구들에게 말했지만 산사람이나 먼저 간 사람이나 모두가 편할 길이라고 하니 그냥 받아 들이고 가보기로 했다. 씻김굿을 처음 보았는데 정말 작두를 타는 것을 보고는 움찔하기도 했지만 모든 것이 끝나고 그분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자신이 타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자신에게 내려와 타는 것이라 위험이 없다고 했다.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오래도록 그 시간이 잊혀지지 않았지만 선입견을 버리고 아버지 영혼을 편하게 보내 드리는 길이었다고 받아 들이고 나니 그 모든 것들이 다르게 보여졌다.
어린시절에는 '무당' 이 있어 마을에 혹은 집집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무당을 불러 굿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어린마음에 무서움증이 발동해서 숨어서 보거나 그 시간을 피하고 싶었지만 시끄러운 소리에 멀리 피하지도 못했던 그런 기억도 있는데 무당이나 기생이나 소리꾼 춤꾼등 우리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서 '예인'이라고 부르기 보다는 그저 '직업'으로만 보던 예인들이 어린시절 시조창을 대를 이어주지 못하고 가신 할아버지들처럼 대를 잇지 못하고 그들의 삶이 끝남과 함께 잊혀져 가는 현실,우리의 소중한 것보다 좀더 대중화 되고 미디어화 된 것들에 더 현혹되는 시대지만 분명 우리 속에는 우리가 간직한 '풍류'가 있다. 소중하게 지금까지 지켜지는 것들도 있지만 우리가 모르고 지나는 것들이 더 많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내가 모르는 분들이 정말 많다. 겨우 공옥진 여사나 학춤 정도만 알고 있는데 잊혀지지 전에 누군가는 분명 기억하고 대물림 해야 할 일에 저자가 있는 것 같아 뿌듯하기도 했다. '왜 이제 왔어?' 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 좀더 일찍 찾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더 많이 지켜지고 남아 있게 되었을까.
원래 '무無'라는 글자는 '춤춘다' 라는 뜻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없다' 는 뜻으로 이용되자 구별을 위해 '천舛'자를 붙여 오늘날 쓰고 있는 '무舞' 를 다시 만든 것이다. 무명의 춤꾼과 익명의 관객으로 만났던 1983년 6월 25일,그로부터 20년, 출연자와 연출자로 만났을 때,그분들 춤의 본령인 무無를 완성해 보여 주었다. 아! 전분들 가시면 누가 내 가슴팍 위를 보행할 것인가.
어쩌면 우리는 그들의 '과거'를 받아 들이지 못하고 그저 평범한 현재로 예인들의 과거를 포장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예인으로 받아 들이기 보다는 없던 시대에 천한 일을 했다고 치부하는 풍류로 보기 보다는 소리를 팔고 춤을 파는 일로 보는 색안경을 낀 시선으로 예인들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시대가 변해 가면서 '우리 소리,우리 춤' 보다는 빠른 음악 빠른 춤에 물들어 가면서 우리가 간직하고 있던 풍류를 잊고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풍류를 잊고 살아가면서 '예인'들까지 잊어 가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우리것보다 더 쉽고 화려하고 볼거리가 다양한 문화에 젖어 노름마치 '놀다'의 놀음과 '마치다'의 마침이 결합된 말로 최고의 잽이를 뜻하는 남사당패의 은어를 잊어가고 있는 아닌가.고수중에 고수들이 한 둘 사라져 가듯 우리 삶에는 또 다른 문화가 차지하고 있는 현실에서 '노름마치' 이야기를 접하니 머리속이 환해진다.
어떻게 보면 밑바닥의 예인들을 그야말로 최고의 '노름마치'로 끌어 올려 준 이들이 있어 그들이 한평생 받은 '한'이 씻김굿 한판에 아쉽지만 더 마지막 불꽃을 불사르고 있는 듯 하다. 고수중에 고수이면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초야에 묻힌 이들의 이야기가 저자의 맛깔스런 한판 마당극에 옆에서 추임새라도 넣어가며 읽어야 할 것처럼 정말 글을 읽고 있으면 신명난다. 전통을 이어간다는 것은 배부르기 보다는 모자람이고 오래도록 묵혀 있어 곰삭아 발효되어 무엇과도 잘 어울리는 특별한 맛을 글로만 만나본다는 것이 더욱 아쉽다.어릴적 소리를 옆에서 듣는 기회가 많았던 그 시간처럼 많이 접할 수 있고 그들의 삶 또한 수면위로 올라와도 남에게 손가락질 당하는 것이 아니라 모도가 찬사를 보내는 그런 풍류로 자리잡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못내 안타까움으로 남았다. 결코 우리가 쉽게 접하거나 우리가 즐기던 것이 아니기에 조금 어려운 부분도 있다.오래전에 유행하던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와 같은 코너에서나 마주할 수 있었던 이야기고 예인들인데 그들의 삶은 문화의 질곡,삶의 질곡으로 이어져 삶이 끝나면 시대도 끝나는 그 한 많은 삶의 이야기가 저자가 풀여낸 글이 맛깔스러워 다시금 꺼내어 읽어봐야 할 책으로 한번 읽고 접기엔 아쉽다.
이 책을 읽으며 제일 아쉬운 말이'마지막'이다. 그분들이 가시면 전수자 없으면 대가 끊기는 것이다. 소리도 춤도 사라져 가는 것이다.누군가 기억하지 못하고 기억해주지 못한다면 오래된 유성기에서조차 나오지 않는,찾으려야 찾을 수 없는 아쉬움이 되고 말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라지기 전에 글로 한풀이가 되었다는 것이 뜻 깊은 일이고 전무후무한 소리꾼 춤꾼들의 농 익은 삶이 담겨진 글을 지금 만나고 있다는 것만으로 가슴이 뛴다.시대가 변하고 문화가 변하고 우리의 풍류도 변해 가고 있겠지만 소중한 '우리 것'을 글이 아닌 현실로 듣고 볼 수 있다면 더 좋은 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현장에서 직접 그들의 표정과 숨소리 춤 사위 하나 하나를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이 주어진다면,이 책이 그런 과거와 현재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잊고 있었던 우리 것에 대한 소중한 것을 일깨워 주는 시간이기도 했고 소리꾼 춤꾼으로 질곡의 삶을 살다 가신 분들의 한의 시간을 고스란히 담아 낸 듯 해서 아껴가며 봐야겠다. 책을 읽으며 오래전 법주사에서 보았던 '승무'가 겹쳐지고 어린시절이 생각나 과거와 현재의 모호한 그 시간 속에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