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귀환 - 희망을 부르면, 희망은 내게 온다
차동엽 지음 / 위즈앤비즈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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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의 상자에서 '희망'이 먼저 나왔다면 세상은 어떻게 변했을까? 낭떠러지에 가 닿는 순간 맞이하듯 '희망' 이란 절망의 끝에서 발견하는 것이기에 더욱 값지지 않을까. 요즘은 식구들이 병원신세로 바쁜 날이 이어지고 있다.나도 팔이 아파 병원에 오래도록 다니고 있고 그런 시기에 갑자기 언니가 허리수술을 하게 되었다. 조카가 보호자노릇을 하고 있으니 가까이서 가만히 보고 있을 수도 없고 잠깐 가서 있는 것도 정말 힘든 시간인데 큰딸까지 체육대회연습을 하다 손가락이 골절되어 깁스를 했다해서 주말엔 녀석에게 올라갔다 왔다.힘든 일은 한꺼번에 밀려오듯 힘겹게 이 파도를 넘으면 좀더 잔잔한 바다를 만날 수 있을 것인지,아니 웃는 날이 올 것이란 것을 알고 있기에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수술당일 언니의 상태가 갑자기 안좋아져 중환자실로 옮긴다고 해서 늦은 저녁을 먹다 밥숟갈을 급하게 놓고 병원으로 뛰어갔다.잘못되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좀더 안정된 환경에서 지켜보기 위하여 옮기는 것,좋아지기 위하여 옮기는 것이라 희망을 가졌고 올라가서 언니의 상태는 매우 안정적이 되어 마음을 놓고 귀가 할 수 있었다.

 

저자의 <무지개원리>는 읽어보지 않았지만 <잊혀진 질문>은 한번 접해 보아서 낯설지 않다. 거기에 '희망'이라는 '긍정에너지'가 가득 담겨 있어 요즘 내 기분을 이해해주며 더욱 긍정에너지를 충전하는 것 같아 기분 좋게 읽을 수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다른 어떤 때보다 '절망'을 더 빠르게 느끼고 그 늪에서 빠져 나오는 것 또한 쉽지 않다고 여긴다. 남과 비교하여 조금만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금방 절망을 하기도 하고 너무 주위에서 '절망'으로 부추기는 것들이 많은 듯 하다. 그저 내려놓고 내 아래를 본다면 살아갈 힘,희망을 얻을텐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해바라기처럼 자신의 위의 태양을 향해 있기 때문에 절망과 마주하는 기회도 더 자주 오는 듯 하다. 그렇다고 절망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으면 안된다. 절망 속에 분명 우리가 내려 놓은 '희망'이 있다. '희망의 귀환' 잊고 있거나 잃어버렸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을 다시 찾을 수 있는 방법들이,이야기가 가득하다.

 

상황이 매우 고약할 때는 희망놀이가 결정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언제나 긍정적인 태도를 반복적으로 선택하여 '경영의 신' 으로 불린 일본의 전설적 기업인 마쓰시타 고노스케, 그는 숱한 역경을 헤치고 94세까지 살면서 수많은 성공신화를 이룩했던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인생승리 비결을 한마디로 '덕분에'라고 고백했다. "저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덕분에' 어릴 때부터 갖자기 힘든 일을 하며 세상살이에 필요한 경험을 쌓았습니다.

 

그를 대표하는 수식어로 '희망 멘토'라는 말이 있다니 정말 누구보다 뿌듯할 듯 하다. 그만큼 남보다 더 많은 긍정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듯 보이고 '희망' 이라는 긍정을 더 많이 찾아내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 책을 읽는 순간 긍정을 바로 충전해야 할 것만 같다. 우린 말을 할 때 '~~ 때문에' 라는 말을 많이 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니 이젠 '~~덕분에'로 고쳐야 할 것 같다. 내가 잘못하던가 자식들이 잘못하면 '~~ 때문에' 하며 책임을 회피하듯 잘못을 남에게 넘기려고 했는데 그것을 이젠 '~~덕분에' 라는 긍정의 말로 고쳐야겠다. 가난해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의 소중한 경험이 없는 사람이다. 뭐 가난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만큼 소중한 밑천이 없다는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있다.가난이란 부끄러움이 아니라 그것을 딛고 이겨낼 소중한 자원이 됨을 말해주고 있는데 요즘 아이들은 풍부함 속에서 살아서인지 하나만 모자라도 아니 어느 것 하나만 남에게 뒤쳐져도 이겨내질 못하는 부분이 있다. 모든 것을 가진 집안에서 태어났다면 그가 '덕분에'로 귀한 것을 얻을 수 있었을까.

 

사람의 뇌는 동시에 두 가지 반대 감정을 가질 수 없다. 곧 사람의 머리에는 오직 한 의자만 놓여 있어서 여기에 절망이 먼저 앉아버리면 희망이 함께 앉을 수 없고, 반대로 희망이 먼저 앉아 버리면 절망이 함께 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뇌에 의자가 하나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의자에 어떤 것을 앉게 하고 싶은가? 희망, 혹은 절망 중에서.누구나 자신에겐 '희망'만 가득차길 바랄 것이다. 절망과 가까이 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희망을 찾아 오늘 하루도 모두가 열심히 달리고 있다. 그러다 희망이 너무 멀리 도망가는 것 아닌가 때론 절망하기도 하는데 너무 긴 시간동안 절망하지 말아야 한다. 분명 희망은 파랑새처럼 우리 바로 곁에 있다. 그것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절망이라는 것을 의자에 늘 앉혀 놓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봐야 한다. 저자가 들려주는 다양한 '희망' 이야기를 좇다 보면 조금씩 조금씩 희망이 쌓여감을,아니 희망 속에서 긍정의 에너지로 완충된 느낌을 받는다. 빅토르 위고의 ' 젊은 아름답지만 노년은 찬란하다. 젊은이는 불을 보지만,나이든 사람은 그 불길 속에서 빛을 본다.' 어느 나이나 절망을 느끼고 또 희망을 본다. 요즘은 누구나 힘든 시간을 살아 가고 있다고 한다. 20대는 20대 대로 힘들다고 하고 30대는 40대는 그리고 그 후의 50대도 마찬가지로 모두 힘든 시간 절망뿐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희망' 있기에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아직 판도라의 상자안에 남아 있는 '희망' 이 내것으로 빛날 그 순간을 있다고 믿기에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시련이란 진리로 통하는 으뜸가는 길이다.'

그러므로 지금 혹시 자신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바로 이 시기가 지혜가 성장하는 시기,곧 생존의 내공을 쌓는 시기라고 희망적으로 생각할 일이다.

 

나도 큰 수술을 몇 번 경험하여 힘든 시간을 알고 있지만 언니가 힘든 수술을 끝내고 회복하여 나오는 순간에 나 혼자했다. '엄마'를 부르며 아픈 곳을 말하는 언니를 보며 어떻게 말을 이어야할지,목울대가 뜨거운 것으로 콱 막혀 아무말도 못하다가 한마디 했다. '언니,언니가 이렇게 깨어났으니 됐어.이제 밝게 웃을 희망의 시간만 남았어.' 언니는 제대로 듣지 못한 것처럼 울부짖었다.아프다고. 지금 순간에 다른 누구도 그 고통을 함께 하지 못하는 '절망'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분명 수술도 잘 되고 이제 새로운 '희망' 이 다가오고 있다는 부르짖음으로 들었다.그리고 시간이 흐르며 하루하루 희망은 더 가까이 오고 있다. 그렇게 아픔에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던 언니에게 '두 발을 움직여봐.움직일 수 있는 만큼'그랬더니 수술전에는 한다리가 마비가 와 움직이지 못하다더니 힘차게 두 발을 움직이며 좋아했다.하지 말라고 해도 계속 두 발을 움직였다.그리곤 비로소 웃었다. 앞으로 힘든 시간이 와도 두 발로 힘차게 걸을 생각에 열심히 회복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절망이란 시련을 이겨내려면 '목표'가 있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꿈을 현실화 하여 말하다보면 더 가까이 이룰 수 있고 현실화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배를 만드게 하려면,그들에게 바다를 보여주라!" 바다를 보지 못하고 그 앞에서 절망에 허우적 거리지 말고 '나도 희망할테니 너도 희망해라'라고 한다. 무엇이든 먼저 해야할 일은 '인정하기'이다. 자신의 현재를 인정하고 받아 들이며 포옹하고 그리고 춤추라고 한다.오기든 호기든 강기를 부리든 희망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도약하라고 한다. 천재를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고 했다.그렇다면 이제 희망을 찾아 도약했다면 '즐겨라' 목표를 향하여 좀더 구체화시키도록 꿈을 향하여 희망을 향해 '우보만리'의 기분으로 즐겨라. 희망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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