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두려움 없이 - 삶의 폭풍우를 통과하는 지혜
틱낫한, 진우기 / 김영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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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라도 두려움이 없는 날이 있을까? 하루하루 나이가 들어가고 아이들이 커가면서 '노년'에 대한 두려움및 아이들의 장래에 대한 두려움및 걱정 불안이 더 하고 있다.그렇다고 그것이 금방 내일 닥칠 일은 아니지만 두려움과 걱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늘 그 안에 갇혀 있는 것 같다.나 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비슷한 연령의 친구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비슷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호소한다. 자식들이 대학에 들어가고 군대에 가고 이르면 결혼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있어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은 정말 끝이 없는듯 하다. 얼마전에도 총동창회체육대회 때문에 모처럼 시골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는데 모두가 앞날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아이들이 나이를 말하며 앞으로 몇 년을 더 고생을 해야 하는데 우리의 노년은 누가 보장해주나 하는 말들을 많이 했다.

 

어느 나이나 두려움이 없는 아니는 없는 것 같다. 어머니의 탯줄을 벗어나는 순간부터 인간은 '두려움' 에 놓이게 된다는 것. 스스로 호흡을 하게 되면서 시작되는 '두려움'을 극복한느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간단하게 '두려움을 인정하는 것 받아 들이는 것' 이다. 실패하는 순간 바닥에 떨어지지 않으려고 바둥거리면 더욱 힘들지만 바닥을 인정하고 짚는 순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이 솟는다고 했다. 인정하면 스스로 자신을 볼 수 있는 눈을 키울 수 있지만 인정하지 못하고 바둥거리면 자신만 더욱 힘들게 된다.두려움도 이와 같다는 것이다. 모두가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것은 두려움 그 자체이다.그렇다고 '두려워 두려워' 하기 보다는 두려움을 인정하고 극복하려고 노력하면 두려움은 더이상 두려움이 아니다.못 넘을 산은 없듯이 두려움 또한 극복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 닻을 내리면 미래를 휠씬 더 잘 계획할 수 있습니다. 현재 순간에서 깨어 있는 삶을 산다 해서 미래 계획을 세우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미래에 대한 근심걱정 때문에 자신을 잃어버리지 말라는 뜻입니다.

 

과거는 고칠 수 없지만 미래는 고칠 수 있다고 했다. 오늘이라는 현실에 충실한다면 보다 나은 미래를 맞을 수 있다. '지금 여기' '지금 이 순간' 에 닻을 내리고 이 순간에 충실하다면 두려움 또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를 인정하기 보다는 과거에 얽매어 있다면 오늘이라는 현실 또한 제대로 보기 힘들 것이고 두려움은 더 할 것이다. 현실을 인정하고 지난 과거에 연연하기 보다는 '내려놓고' 현재에 충실한다면 '내일'은 분명 희망적일 것이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 놓아버리기 다섯 가지 기억하기 방법으로 '다섯 가지 기억하기'를 들었다.

1.나는 늙어가는 본성을 타고 났다.늙음을 피할 수 없다.

2.나는 병마에 시달리는 본성을 타고 났다.병마를 피할 수 없다.

3.나는 죽어가는 본성을 타고 났다. 죽음을 피할 수 없다.

4.내게 귀중한 모든 것과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은 변화하는 본성을 타고 났다. 그들과의 헤어짐을 피할 수 없다.

5.나는 내 몸과 말,마음으로 행한 행위의 결과를 물려받는다.나의 행위는 나의 연속이다.

모든 것을 인정하고 받아 들이면 '두려움'이 덜하지만 받아 들이지 않고 '노화'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자신만 힘들어진다.'병'에 대한 것도 받아 들이면 이겨낼 힘이 생기지만 '나만 왜?' 하면서 인정하지 못하면 자신만 더 힘들어진다.나이가 들어가니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한 곳을 고치면 또 한 곳이 아프고 나 또한 병원신세를 계속해서 지고 있는데 이젠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 들이고나니 마음이 가벼운데 주위 사람들은 힘들게 이야기를 한다. 나이가 들면 아픈 것은 당연하고 기계도 오래쓰면 닳아서 고장이 나게 마련인데 하물며 사람인데 아픈곳 하나없이 살 수는 없다. 인정하면 살아갈 방법이 생기는 법이다. 인정하지 않으면 힘든 내일이 기달릴 뿐이다. 현대인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 또한 대한하다.요즘은 '죽음'에 대한 책도 많이 나와 있고 행복한 죽음을 맞기 위하여,자신의 죽음을 받아 들이거나 간접적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를 줄이려는 다양함을 본다. 무엇이든 인정하고 나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만 인정하지 않는데서 오는 불안감이나 두려움이 더한듯 하다.

 

기적은 물 위나 불 위를 걷는 것이 아니다. 기적은 이 땅을 밟고 걷는 것이다.

 

여러 번 사고나 큰 일을 당하고 보니 내가 지금 살아 가고 있는 이 순간, 이 삶에 더 감사하게 되었다. '지금 있는 곳에서 감사하기' 자신에게 주어진 현재의 삶에 감사하면 무엇이든 다 행복으로 다가오게 된다. 현실을 받아 들이지 않고 욕망이라는 것에 부풀어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을 붙잡으려고 하면 더 힘들어지게 된다. 하지만 현재를 인정하고 지금 내가 있는 현실을 감사하게 받아 들이면 '기적은 이 땅을 밟고 걷는 것'처럼 자신에게로 온다는 것. 현대인들은 별거 아닌데서 '두려움' 쌓여 산다. 늘 손에서 놓지 못하는 스마트폰, 밧데리가 조금 남으면 밧데리가 떨어질까봐 두려워,아니 핸드폰으로 연락을 하지 못할까봐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해 나 또한 외출 할 때는 여유분의 밧데리나 충전기를 가지고 나간다. 옆지기와 1박2일 서천여행을 가서는 동백정에서 나는 일몰을 기다리고 있었고 옆지기는 방을 잡으려 내려갔는데 내 핸펀의 밧데리가 얼마 남지 않아 꺼 놓았는데 그 두시간정도의 시간은 둘에게는 연락이 되지 않아 '두려움'에 대한 시간 이었다.나 또한 갑자기 생각해보니 주머니 속에 돈 한 푼 없고 핸드폰 밧데리도 다 되었고 그는 곁에 없고 둘이 만나지 못한다면 날은 저무는데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을 안할수가 없었다. 그러다 다 내려놓았다. 그런 생각이 있다면 우리 둘이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내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그가 알고 있고 나 또한 내려가도 입구에서 기다리면 그를 만날 수 있다. 두시간의 두려움은 그가 일몰과 함께 다시 동백정에 오면서 눈 녹듯 사라졌다. 왜 오지 않을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여 아름다움을 덜 보았는지.대부분 우리가 하는 두려움은 아직 오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명상이나 산책,우리가 간단하고 쉽게 할 수 있는 방법들도 나와 있다.걷는것 하나 허투루 하는 것이 아니라 '선'이라 생각하고 하면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극복하지 못할 것은 없는 것 같다.모두가 우리가 마음 먹기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

 

이 두 눈은 내가 아니다.나는 이 두 눈에 매이지 않는다.

이 몸은 내가 아니다. 나는 이 몸에 매이지 않는다.

나는 끝이 없는 생명이다.

이 몸이 소멸하는 것은 나의 끝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는 이 몸 안에 국한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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