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정거장 - 21살 데이빗, 처음으로 혼자 지하철을 타다
글렌 핀란드 지음, 한유주 옮김 / 레디셋고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부모에게 자식은 어떤 의미일까? 요즘 이부분에 대하여 많이 생각하게 된다. 두 딸들을 대학에 보내며 객지로 내보내고 이제 좀 녀석들 그늘에서 벗어나나 했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금 자취생활을 하는 녀석들 뒷바라지를 해야만 하는 내게 주변인들은 '그만'하라고 한다. 하지만 자식에게 끝이 있을까? 눈을 감는 순간까지 자식은 자식이다. 친정엄마 또한 팔순을 바라보고 있지만 지금도 자식들 먹거리를 하나 하나 늘 챙겨 보내신다. 며칠 전에도 오빠 손에 들려 쌀이며 대파 김장김치 청국장 가루를 만들었다고 한보따리 보내셨다. 그모든 것을 내가 다 먹는 것도 아니다.반은 먹고 반은 썩거나 혹은 먹지 않은채 방치해 두기 일쑤인데도 엄마들 자식들 모두 똑같이 보내신다. 나 또한 엄마에게 보고 배운대로 내 자식들에게 '보조바퀴' 노릇을 하고 있을 뿐인데 내 건강이 먼저라고 옆에서들 난리를 피니 내가 더 짜증이 난다. 난 당연해서 하는데 왜?

 

얼마전엔 스마트폰으로 바꾸고 여고시절 친구와 연락을 하게 되었다.친구는 큰아들이 뇌성마비라 지금껏 아들을 돌보느라 여행 한번 제대로 해보지도 못했고 친구들 만남도 모든 것들 다 포기하고 살았는데 어느 순간 자신이 바뀌어 버렸다면서 다르게 살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그 친구가 아들에게 소홀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 자시을 받아 들이고 좀더 밝고 자신의 인생에도 색을 입혀보겠다는 것인데 나도 친구의 말에 공감이 갖다. 누구나 자식 때문에 자신의 생을 포기할 수 있고 대부분의 엄마들이 그런 시간을 어느 정도 거친다. 그러다 아이들이 크고나면 갑자기 빈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공허함을 느끼며 우울증을 겪기도 한다. 내게 그리고 친구에게 '자식'은 무얼까? 자폐아 데이빗을 키우며 글렌은 자신의 일을 포기하고 아들들 아니 데이빗과 함께 한다. 집안에 장애아나 이런 아이들이 있으면 모두가 그 여파가 미친다. 친구 또한 아들 때문에 딸이 힘든 어린시절을 겪었고 그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너무 일찍 철이 들어 엄마맘을 많이 이해해 준다고 했따. 데이빗의 형들 또한 데이빗에게 부모를 빼앗기듯 했으니 그들 또한 일찍 철이 들었을 것이다.

 

'세월이 흘렀고,그간 나의 지적 능력은 아들을 지키느라 소진되었다. 데이빗은 내게 의존했고 나는 그런 데이빗에게 의존했다. 이제 그만두어야 할 때다.'

 

그러면 왜 '데이빗'이 태어났을까? 누구의 탓도 아니다. 서로 조상을 생각해 보았지만 누구의 탓도 아니고 어쩌면 자신에게는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데이빗이 가져다 주었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입장이 되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이해를 하지 못한다. 겉으로 멀쩡한 청년인 데이빗이 왜 엄마의 보호가 필요하고 사회에 적응을 못하는지,우리나라와는 다른 조금 다른 면들이 보여서 어느정도는 그래도 그들에게도 세상이 열려 있다고 보았다. 그래도 아직은 현재진행형이고 부모에게 데이빗은 언제나 무게감을 주는 아들일 것이다. 엄마는 데이빗에게 세상을 가르치기 위하여,아니 데이빗의 홀로서기를 위하여 지하철을 타는 법을 가르쳐준다.하지만 집 밖으로 한발짝만 나가도 모두가 걱정이고 불안거리다. 가족들은 그에 대하여 알지만 타인은 데이빗이 현재 어떤 상황인지 모르고 그가 하는 행동들이 자폐나 틱 때문이라는 것을 모르기에 오해를 할 수도 있고 언제 어디서든 나침반이 고장난 아이처럼 길을 잃을 수 있다.그래도 언제까지 부모가 데이빗의 '보조바퀴'일 수는 없다. 어느 순간 데이빗은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도 있고 또 그렇게 홀로서기를 해야만 한다.

 

'아이들이 새로운 환경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 줍시다. 실수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받아 들여야 해요. 왜냐하면 실수를 하기 마련이니까요. 그러고 나면 아이들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못한다고 안가르치기 보다는 부단하게 노력하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듯 하나 하나 가르치고 자신의 엄마 슈가 그랬던 것처럼 무언가 몹시 화가 나거나 던져버려야 할 문제거리가 생기면 계란을 벽에 던진다. 그것을 데이빗과 함께 하며 무슨 놀이를 즐기듯 풀어 버리는 글렌,엄마라는 이름으로 그녀는 누구보다 더 강한 '인내'를 가지고 데이빗를 바라보고 가르치고 그리고 기다려 주고 있다. 그렇게 학교도 졸업하고 운전면허도 따고 튼튼한 두다리로 마라톤도 뛴다. 장애인들이 함께 모여사는 시설에 가서 비로소 자신의 데이빗이 얼마난 행복한 존재인지,등이 휘지도 않았고 물건에 이름을 써붙여 놓지 않아도 되며 건강하고 튼튼한 두다리로 걸을 수도 있다.아니 힘차게 마라톤도 한다. 그런가하면 말도 잘한다. 남을 잘 도와주기도 하고 동물도 좋아한다. 그런 데이빗이 조금 느리지만 사회에 천천히 발을 내딛으며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 나간다. 잦은 실수를 거치면서 말이다. 부모들은 자식들의 '실수'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것이 장애아이건 정상인것 말이다. 모두다 실수를 하면서 성장을 하는 것이다. 부모도 실수를 하며 현재에 이르렀고 자식들 또한 그렇게 크는 것을 부모는 자식들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면 실수를 하지 말라고 강요한다.

 

'이제 내가 내 주인이야.'

글렌은 데이빗에게 자기 삶에 주인을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지하철을 타고 동물원에 가고 번번히 일자리에서 쫒겨나고 언젠가는 자신을 받아 줄 아니 자기가 주인이 될 삶을 살도록 멀리서 보조바퀴가 되어 굴러가고 있다. 그런 데이빗이 어느날 친구도 사귀고 마라톤도 뛴다. 정말 힘든 그 시간들을 이겨내고 완주를 하여 피니쉬라인에 들어서고 누구보다 지치지 않은 모습으로 자신들 앞에 설 때 그는 정말 자신의 삶에 '승리자'가 된 것 같았다. 데이빗 그 청년은 이제 자신의 삶에 <다음 정거장>에서 내릴 수 있는 강인한 힘을 키운 듯 보인다. 부모에게는 늘 모자라고 옆에서 지켜봐줘야 하는 아들이지만 누구보다 튼튼하고 강인함을 가졌으며 조금 더디지만 분명 세상 사는 법을 많이 익혀 나갔고 그렇게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 스스로 어디로 가야할지 목적지를 알고 있는 청년이다.

 

부모는 어느 정도 자식이 크면 아니 자식에게는 기다려주는 '인내'가 필요하다고 본다. 부모가 언제까지 자식 앞의 길을 만들어줄 수는 없다.실수도 해 보고 실패도 해보고 그렇게 소중한 경험을 통하여 스스로 일어나 우뚝 설 수 있고 자신의 길을 찾아갈 수 있는 힘을 키운다고 본다. 데이빗은 인지능력이 모자라 부모가 반복학습으로 그것을 익히게 해 주었지만 글렌 역시 서서히 데이빗의 인생에서 부모의 보조바퀴를 떼어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소년에서 청년으로 큰 데이빗은 그렇게 사회인이 되었고 우리 또한 데이빗과 같은 친구들을 받아 줄 수 있는 가슴을 가져야 한다. 데이빗은 타인의 아이가 아닌 우리 모두의 아이다. '저 애가 숨 쉴 틈을 좀 줘야지! 어린애 돌보듯 하지 마라. 저 애도 혼자 잘 해낼 수 있어.' 부모는 한번 지나 온 길이기에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숨쉴 틈을 주지 않는다.밀어부치면 아이들은 힘에 부쳐 꺽이기도 한다. 데이빗 뿐만이 아니라 지식을 키우는 입장에서 많이 반성하게 해준다. 나 또한 막내를 혼자 서울에 떼어 놓고 오면서 참 많이 걱정했다. 하지만 녀석은 혼자 씩씩하게 지하철을 타고 잘도 다니고 힘든 시간을 인내하며 자신의 꿈을 키우며 잘 견디어 내고 있다. 모든 것은 기우였다는 것을 바로 알았다. 멀리서 지켜보고 있으면 스스로 일어나는 힘을 키운다. 데이빗의 앞으로의 홀로서기가 따뜻하고 많은 사람 속에서 어우러지면서 사랑으로 거듭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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