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의 배신 - 불편해도 알아야 할 채식주의의 두 얼굴
리어 키스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난 채식주의자도 육식주의자도 아닌 내가 먹고 싶은 것은 채식이건 육식이건 따지지 않고 몸이 원하는 것을 그리고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는다. 어릴 때에는 '먹지 않는 것'이 너무 많아 엄마의 속을 무척이나 썩이는 딸이었다. 심한 편식은 이십대가 되어도 고쳐지지 않았고 사회생활을 하며 겨우 조금 나아졌다고 봐야했지만 그래도 먹지 않는 것에 대한 분명한 선이 그어져 있었다. 소고기를 먹은 것도 몇 년 되지 않았고(소고기를 먹으면 비위가 상해서 먹지 못했다) 오징어국도 북어국도 그렇게 한가지 한가지 따져보면 밥은 먹어도 떡국은 먹지 않아 설날에 엄마는 날 위해 밥을 다시 하는 번거로움을 늘 감수하셔야 했다. 내가 나의 지난 시절을 뒤돌아보면 친정엄마를 너무 괴롭힌듯 하고 나자신이 너무 힘들게 살아왔기에 내 아이들은 편식을 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노력했지만 막내가 날 닮은 것인지 초등학교를 들어갈 때까지 먹는 것을 거부했었다. 그렇게 고생을 시키던 녀석이 갑자기 어느 순간부터 너무 먹어서 탈이 될 정도로 먹는 것을 잘 먹었다.이것저것 가리지 않고.지금은 왜 그때 강압적으로라도 먹게 시키지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오히려 내게 무어라 한다. 하지만 억지로 되는 것은 없다.

 

요즘은 사람들이 건강을 위해 다이어트를 하고 자신이 몸을 위해 '채식'을 혹은 '육식'을 한다. 그렇게 분명하게 선을 그어 놓기 보다는 난 골고루 먹는 것을,그것도 재철에 나는 신선한 재료를 먹는 것이 제일 좋다고 본다.하지만 요즘은 제철보다 더 일찍 시장에 나와 제철에는 오히려 구경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밭에서 '기다림'을 가지고 우리의 밥상에 오기 보다는 하우스에서 미리 키워져 나오는 것들을 우린 마트에 가면 풍성하게 만날 수 있다. 무엇이 과연 옳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미리 나온 채소들나 과일을 먹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텃밭에서만 키워 밥상에 올릴 수는 없는 일이니 미리 먹어주는 대열에 낄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저자는 왜 '채식'의 불편한 진실에 대하여 말하는 것일까? 환경운동가이기도 한데.그는 20여년 동안 채식을 했지만 채식으로 인해 몸이 건강해 진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독이 되었다고 한다. 생리가 멈춘다던가 우울증이 온다던가 관절염이 생기고 그 모든 것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채식으로 인해 생긴 병이란 것을 알고는 육식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모든 결론들이 다 단정적이어서 읽는데 조금 껄끄럽다.

 

데이터에 의한 것이라고 해도 너무 '이것이 아니면 저것이다'라고 결론지어 마무리지어 놓은 생각들이 강하다고 해야하나,자신의 생각과 데이터에 의한 결론을 너무 극단적으로 이어나가 어떻게 받아 들이면 읽어야 할지 난감한 부분이 많다. 자신의 책이니 자신의 생각을 쓴다는 것은 뭐라 할 수 없이지만 그렇다고 채식주의가 인간과 지구를 파괴하는 것이라는 극단적인 결론을 내린 것은 독자로 하여금 '환경' 에 대한 중요성을 알리기 보다는 더 반감을 사게 하는 부분이 있다. 그렇다고 모든 면에서 다 맘에 들지 않고 너무 극단적이어서 읽어볼 가치도 없다고는 할 수 없다. 분명 그녀가 들려주려는 소리 가운데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하는 부분도 있다. 얼마전 어느 프로의 다큐였던가 중국에서 참새를 대량으로 살생했던 사건을 다루었다. 참새떼가 먹어 치우는 나락은 굶주림에 허덕이는 많은 사람들을 구하는 수였기에 정부는 대대적으로 참새를 잡는 운동을 펼쳤다. 그렇게 하여 참새는 씨가 마르듯 했지만 참새가 다 없어진다고 나락이 잘 보존되어 사람들이 굶지 않게 된 것은 아니다. 참새가 존재할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참새가 사라지니 그 천적이 더 늘어나고 생태계의 파괴로 인해 사람은 더 고통받았다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우리나라의 한라산에서 사는 노루는 한라산의 상징이며 영물처럼 여겨져 보호를 받았고 그렇게 개체수를 늘려간 노루는 이제 보호동물에서 해로운 동물로 변하고 말았다. 과한것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이 있듯이 너무 과하면 차고 넘쳐나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인간이 동물과 식물의 생존에 개입하게 되면서 여러 문제가 발생하지만 그렇다고 식물이 동물의 피와 뼈를 먹고 자랐다고 채식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육식을 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렇게 따진다면 세상에 먹을 것이 존재할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질문처럼 난해한 생각과 결론들이 좀더 내 밥상에 오르는 '먹거리'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한다. 한 톨의 밥알이 내 밥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무수히 많은 시간과 땀의 결실을 거치며 왔다. 밥알 하나라도 소홀히 하는 사람들은 농부의 땀방울의 소중함을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직접 시골에서 한번 작은 텃밭이라도 가꾸어 보든가 요즘은 베란다텃밭을 가꾸는 이들도 많은데 그런 체험을 해본다면 내 밥상에 오른 먹거리에 대하여 '감사'하게 된다. 그것이 어떻게 하여 채식이 되고 육식이 되기 보다는 소중함과 감사함을 알게 된다면 그리고 텃밭을 가꾸어 본 사람들은 그 즐거움 또한 남달라서 먹을 것에 대하여 함부로 하지 않는다. 내 몸에 이상이 생겼다고 해서 그것이 꼭 '채식' 때문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울 듯 하다. 동양과는 다른 서양의 먹거리,요즘 사찰음식이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은 바른 먹거리이면서 건강도 지키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알지 못했던 부분에 대하여 좀더 지식적인 면에서 읽게 된 것은 좋았지만 자신의 의견을 너무 강하게 내세워 결론지은 부분은 맘에 들지 않는다. 참고로 나 또한 베란다정원을 가꾸고 있고 많은 식물을 가꾸고 있는데 늘 '민달팽이'와 싸우고 있다. 녀석들을 오늘 한마리 살려주면 그 다음에는 떼로 나타나 기어다니기에 난 녀석들을 보는 즉시 어떻게 해서든 죽이는 쪽으로 결론을 낸다. 우리집에서 민달팽이는 해충이고 내 화단에서는 사라져야 할 것이다.그렇다고 내가 자연을 보호하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아니다. 민달팽이보다 내 초록이들을 더 아낄 뿐이다.

 

'자연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우리들에게는 어떻게 보일지 모르지만 먹고 먹히는 행위는 도덕이나 정치와는 상관없다. 이 역시 공생의 문제다. 먹고 먹히는 행위는 정교하게 짜인 자연의 씨줄과 날줄인데 인간이 이 문제에 '모종의 개입'을 하면 이 모든 것이 순간적으로 풀려 버릴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