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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
이창래 지음, 나중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월
평점 :
전쟁을 겪은 세대들은 영원히 전쟁을 잊지 못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전쟁을 겪지 못한 세대는 아무리 전쟁중의 힘들었던 시간을 이야기 해주어도 믿지 못한다. 그만큼 경험이란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준과 헥터 그리고 실비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이 전쟁을 겪고 또한 그 시간을 이겨내며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보여주는 다큐와 같은 긴 과거와 현재 속에는 그들이 겪은 전쟁은 트라우마처럼 그들의 삶에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으며 물 밑 깊숙한 곳으로 가라앉듯 한다.그들이 한국전쟁의 어떤 시간속을 지나왔기에 삶은 베베 꼬인 새끼줄처럼 그들을 물고 늘어지는지 두께도 장난이 아닌 '생존자'는 쉽게 다가왔다가 무겁게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사람은 행복했던 기억보다 자신이 힘들었던 순간을 더 오래도록 기억하는 듯 하다. 나의 아버지 또한 아버지가 겪은 전쟁과 부모님을 잃던 그 시간을 두고두고 이야기를 하며 아버지가 어떻게 힘든 시간을 이겨내며 동생들을 건사했는지 어린시절 무릎에 앉혀 놓고 이야기를 했지만 아버지의 이야기는 소설속의 이야기처럼 혹은 이야기책의 다른 사람의 이야기처럼 내것이 되지 못했다. 준 또한 전쟁중에 아버지와 오빠의 죽음을 그리고 어머니와 언니의 죽음을 직접 눈 앞에서 보아야 했고 그 후 힘들게 남의 것을 훔쳐 동생들을 먹여 살렸지만 기치사고로 인해 동생들을 잃게 되고 혼자 남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혼자 살아 남은 '생존자'가 되어 전쟁속에서도 살아 남았듯이 앞으로 이어지는 현실의 삶 또한 이겨내야 했다.
혼자 남겨진 준이 이후에 핏줄로 연결된 '가족'으로 가지 된 '니콜라스'라는 아들,그러나 그 아들은 엄마의 삶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나듯 그녀의 곁을 떠나버렸다.그런 아들을 찾아 가려하지만 그녀의 삶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말기암환자,그렇게 하여 그녀는 니콜라스의 아버지인 헥터라는 인물을 찾아내어 긴 여행을 함께 할 것을 부탁하게 되지만 그는 니콜라스가 자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받아 들일 수가 없다.준과 헥터의 결혼생활이란 것이 그만큼 가족이라는 끈끈한 울타리가 아니었다는 것,그들은 어떻게 만나고 아들을 낳고 그리고 헤어졌을까? 그 중간에 다리처럼 '한국전쟁'이라는 고난의 시간이 있다. 그리고 그들을 이어주듯 또 한사람 '실비'라는 고아원 목사 부인이 있다. 그들의 운명은 한국전쟁이라는 같은 시간에 맞물려 비극적으로 흘러가고 만다.
'니콜라스가 헥터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헥터에게 그다지 의미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니콜라스에게는 의미가 있는 일이길 그녀는 바랐다. 그래서 미래의 어느 날,그가 세상살이에 절망하고 좌절을 느낄 때 자신이 세상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를 바랐다.'
인생은 혼자 왔다 혼자 가는 것이다. 하지만 혼자 남겨진 자신의 아들 니콜라스에게 가족을 만들어 주고 싶었던 준,마지막 여행이 될 이번 여행에서 헥터를 찾아 니콜라스에게 가족을 만들어 주고 싶었던 것은 그녀가 전쟁중에 모든 가족을 잃었고 그로 인해 그녀의 삶이 고단했음을,니콜라스는 그런 삶을 살지 않기를 바라며 모든것을 주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른 이들도 그녀의 맘과 같을까? 헥터는 한국전쟁으로 인해 세상과 문을 닫고 살아간다. 한국전쟁 때 포로로 잡힌 소년을 보호하지 못했고 고아원에서 목사 부인인 실비와 비극적인 사랑을 하면서 그의 삶은 점점 세상에 벽을 만들어 가고 말았다. 바닥과 같은 삶이지만 그는 그래도 자신의 세운 규칙을 지키듯 반듯하게 살아가지만 남에게 보여지는 삶은 구질구질하다. 마지막 여자처럼 만난 여인을 불운하게 잃고 준을 마지막을 지켜주게 되는 헥터,그가 니콜라스를 만나 닫힌 세상의 문을 열고 살 수 있을까.
어찌보면 준이 마지막 여행으로 택한 니콜라스를 찾는 여행은 그녀의 과거와 현재를 용서하고 받아 들이는 그런 시간이 되었다. 물론 헥터도 마찬가지다. 전쟁으로 닫혔던 세상과의 문을 준을 만나 조금식 열어 나가듯 그도 과거와 맺혔던 매듭을 풀어 나간다. 준과 헥터가 겪은 전쟁은 과거였지만 현재 또한 그 전쟁속에 갇혀 있듯 닫힌 삶이고 또한 현재의 삶도 전쟁과 같은 삶을 이어나간다. '전쟁은 엄격한 스승이다'라는 말이 가슴 깊이 남겨지듯 과거도 현재도 전쟁과 같은 삶을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그들의 운명은 달라진다. 전쟁과 같은 삶에서 이겨내는 것 또한 자신이며 그 시간 속에서 자유를 찾는 것 또한 자신이다.
그들의 삶은 소용돌이처럼 닮고 닮아가는 것을 보며 참 우습다고,어쩌면 이럴수가 있지 하며 읽게 되었다. 전쟁중에 동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하여 도둑질을 했던 준,그녀는 자신이 도둑질을 해 보았기 때문에 아들의 도벽을 눈감아 준다.어쩌면 그 도벽으로 인해 아들은 죽은 것이다. 그런가하면 헥터는 고치고 닦고 자신의 손으로 하는 것을 잘한다.그의 아들 니콜라스 또한 골동품 가게에서 딱고 고치고 하는 것을 좋아한다. 어쩜 그렇게 닮은 것인지.분명 핏줄로 이어진 삶이지만 그들은 결코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가지지 못하고 '세상 천지에 전부 고아야!' 라는 말처럼 그들은 고아와도 같은 고난한 삶을 살아간다. 전쟁은 그들을 모두 고아로 질곡의 삶을 살아가게 만들었지만 준은 끝까지 가족이라는 끈을 놓고 싶지 않다. 자신의 아들이 아니지만 마지막까지 자신의 아들이라 믿었고 헥터 또한 그녀의 남편이라 할 수 없지만 그녀의 죽음을 지키는 마지막 살아 남은 자가 된다. '생존자' 살아 남은 자는 먼저 간 자의 모든 것을 기억해야만 하는 고난의 시간을 가진다. 그것이 지난 시간에는 괴로움이었지만 준의 죽음을 대하며 헥터는 탈피를 거친 나비처럼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는 가슴을 가지게 된다. 그의 삶은 지난 삶과는 분명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전쟁이 세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변하시켰는지 그들은 전쟁으로 잃은 것도 많지만 분명 얻은 것도 있다. 과거도 전쟁이었지만 오늘도 전쟁이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 남아서 생존자가 되어야 한다. 내일은 살아 남은 자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