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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상처 ㅣ 스토리콜렉터 13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2년 11월
평점 :
넬레 노이하우스,일본 추리소설에 빠져 있던 독자들을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이란 한 권의 책으로 북유럽 추리소설에 빠져 들게 한 작가이며 나 또한 그녀의 책인 <사랑 받지 못한 여자>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바람을 뿌리는 자>를 읽었고 <너무 친한 친구들>은 나오자마자 구매를 해 놓고 읽지를 못하고 있지만 모든 책이 나란히 책장에 꽂혀 있는 것만 봐도 흐믓하다. 그녀는 낯선 독일의 작은 마을 '타우누스'를 그녀의 소설로 인해 관광지로 만들기도 했지만 그녀가 만들어 낸 인물인 '피아형사' 와 '보덴슈타인 반장'을 어느 추리소설의 콤비보다 더 잘 어울리고 익숙한 콤비로 만들어 놓았다.그녀의 책을 순서대로 읽은 것은 아니지만 낱 권으로 읽어도 사건은 일단락 되기에 별 무리없이 읽을 수 있지만 '살인사건'과 함께 피아 형사와 보덴슈탕니 반장의 사생활이 연장이 되기에 첫 권부터 읽는다면 더 깨알같은 재미를 느끼며 읽을 수 있다.
노이하우스의 장점이라면 모든 인물을 세세하게 표현하기도 하며 심리묘사도 뛰어나다.그런가하면 살인과는 관계 없을 것만 같은 평범한 이웃이 모두 '용의자' 가 될 수 있고 '이웃을 믿지 마세요'라고 경고라도 하듯 한 마을에 살인범이 함께 살기도 하며 살인사건을 파헤쳐 들어가다보면 저마다 한가지씩 용의자가 될 수 있는 소지를 모두가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고구마 줄기를 손에 쥔 것처럼 굵은 알맹이들이 여기저기서 불거져 나와 더욱 재미를 느끼며 읽을 수 있고 끝까지 읽어야만 사건의 모든 부분을 파악하고 진짜 살인범을 잡을 수 있지만 언제나 끝은 씁쓸하다.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허망하고 보잘것 없으며 욕심으로 인해 인간이 얼마나 비굴해지고 끝도 없는 구렁텅이로 빠질 수 있는지 여실하게 보여준다. 이 소설은 유대인 학살과 관계된 홀로코스트의 이야기가 함께 버무려져 좀더 독일다운 추리소설이 탄생하지 않았을까.그러니 저자가 가장 애착을 가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역사와 현재가 알맞게 잘 버무려져 멋진 작품으로 탄생한 듯 하다.
미국 대통령 자문이었고 유대인 이었던 노인이 자신의 자택에서 나치 처형을 연상시키는 자세로 죽어 있는가 하면 '16145'라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숫자가 쓰여 있다. 누가 그를 처형한 것일까? 라는 문제를 풀기도 전에 그와 똑같은 방법으로 다른 노인이 처형을 당했다.그 역시나 살인사건에는 의문의 숫자가 남아 있고 그가 살던 지하실에 들어갔던 피아는 놀아운 광경을 보게 된다. 나치에 관계된 영상과 그외 자료들,유대인이라 60여년간 믿고 있던 이들이 부검 결과 나치 친위대였다는 사실,그렇다면 그들은 왜 자신들의 신분을 속이고 지금까지 살아 왔을까? 그리고 시작된 또 한 명의 살인,역시나 세번째 살인 또한 전 번의 살인과 같다. 동일범에 의한 소행인줄 알겠지만 누가 그들을 처형을 했을까? 왜? 베라 칼텐제 집안에는 그들과는 다른 족속처럼 취급당하는 문제아가 한 명 있다. 살인사건은 모두 가가 한 범행처럼 몰고 가는 시점에서 그와 그의 애인이 또한 시체로 발견된다. 하지만 모든 것은 계획된 살인이라는 것을 시체는 말해주고 있다.
다섯 건의 살인사건을 파헤쳐 들어가던 중에 살해 당한 노인들은 한 마을이라 가까운 이웃에서 살았고 유대인이 아닌 남의 신분으로 지금까지 살아 왔으며 베라 칼텐제 또한 그녀의 과거가 의심스럽다는 알게 되고 그의 자식들 모두 살해 혐의를 가지고 있을 뿐더라 베라의 자서전을 준비하던 토마스와 베라와 연관이 있는 마르쿠스 또한 용의자 선상에 놓이게 된다. 얽히고 설힌 과거사와 현대사 사이에 모든 이들의 이해 관계가 얽혀 있다. 모두 자신들의 욕망 때문에 살인을 저지를 소지가 다분하다. 그렇다면 살인 사건 현장에 남아 있던 숫자의 의미는 무엇일까? 유대인 행세를 하며 60여년간 남의 눈을 속여 오며 살아 왔던 노인네들과 관계된 '16145' 라는 숫자의 의미가 풀리면서 지난 과거사가 한꺼번에 드러나게 되고 얽혀 있던 현대사 또한 하나 하나 정리가 된다. 칼텐제 집안에서 겉돌듯 했던 큰 아들 '엘라르트' 그의 출생의 비밀이 밝혀 지며 그동안 그의 가슴에 남아 있던 '깊은 상처'는 서서히 풀리게 된다.
우리에겐 일제강점기나 한국전쟁이 '깊은 상처'로 자리하고 있다면 독일인들에게는 2차 대전 '홀로코스트'가 깊은 상처로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그런 아픔의 역사를 추리소설에 아주 재밋게 녹여냈다. 60여년의 세월동안 '깊은 상처'를 서로의 가슴에 묻어 두고 거짓의 가면 뒤에서 살아 온 사람들,하지만 진실의 눈은 그들을 현대사의 심판대로 올려 놓는다. 거짓의 가면 뒤에 숨는 다고 거짓이 모두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자신들 안에 묻어 두었던 과거사가 자신들 목숨을 위협하는 올가미로 작용을 하고 긴 세월동안 상처에 약도 바르지 못하고 덧나듯 하기만 했던 엘라르트와 아우구스테 노박,그들은 많은 피의 희생을 치르고 겨우 진실 앞에 섰지만 육십년의 세월은 그들을 갈라 놓고 마는 아픈 현실. 육십여년 동안 잠들어 있던 과거사가 수면위로 떠오르고 죄를 지은 사람들은 죄값을 치르고 욕망에 눈이 먼 사람들 또한 자신의 죄값을 받는다. 시간이 가면 흐려질것만 같았던 과거사가 현대사에서 무섭게 다시 '살인'이라는 인간의 욕망으로 재현되는 현실,정말 끔찍하다. 하지만 정의는 반드시 옮은 자의 손을 들어 주는 것 같다.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바뀐 운명 속에서 허우적 거리며 살았던 그들의 시간, 무엇으로도 보상 받을 수 없지만 역사는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