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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천년의 밥상 - 먹을거리, 그 속에 살아 숨 쉬는 우리 역사
오한샘.최유진 지음, 양벙글 사진 / Mid(엠아이디)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예전에는 요리에 관한 책을 잘 읽지 않았는데 점점 요리와 음식에 관한 책들이 참 재밌고 흥미가 있다. 요리는 정말 창작이다. 똑같은 재료를 가지고도 서로 다른 요리 서로 다른 맛이 나오듯이 만드는 사람에 따라 음식과 맛이 다르다. EBS를 즐겨 보는데 '천년의 밥상'이라는 광고처럼 나오는 짧지만 느낌이 강한 프로를 보면서 '책으로 나온다면 정말 좋겠다'라는 생각을 늘상 가졌었다. 그런데 내 생각을 누가 읽은 것일까 정말 책으로 나왔다. '천년의 밥상'은 한편도 빼놓지 않고 다 보았는데 책으로 나왔다고 하여 얼른 찜을 하고 구매를 하였는데 큰딸과 함께 시청하고 있는데 책에 대한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딸이 '저 책을 누가 사서 읽기나 할까?' 하고 내게 묻듯 말했다.난 딸을 바라보며 웃으면서 '엄마... 엄마는 벌써 구매했어.' '정말..' 하고 둘은 웃었다. 영상으로 보던 것이라 그런가 머리속에 영상이 깊은 흔적이 남겨져 있는 상태에서 책을 읽으니 느낌이 더 좋다. 계속해서 더 많은 좋은 이야기들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나의 음식이 밥상에 오른다는 것은 먹는 이야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쌀 한 톨 재로 한가지에도 '역사와 삶' 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고 먹는다면 허투루 밥 한 술을 떠 넣을 수도 없을 것이고 흘리는 일이나 남겨서 버리는 일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늘상 아무렇지 않게 먹던 간단한 '인절미' 하나에도 역사가 담겨 있다는 것을 읽고 나면 인절미 하나가 내 입으로 오기까지 무수히 많은 세월이 그리고 역사가 흘러 갔다는 것을 알 것이고 인조와 백성들의 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런가 하면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에 대한 '죽수라상'에 담긴 이야기를 읽다보면 그의 효성이 어디까지인지 정말 그 깊이를 헤아리며 죽 한 술을 떠야 할 것만 같다. 뒤주에 갇혀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그리움으로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더 지극했던 정조,아버지가 잠들어 있는 수원 화성으로 원행을 준비하며 그곳에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에서 '죽수라상' 노인을 위한 영양만점의 음식을 장만하게 한다. 어머니를 위한 상이면서 아버지에게 못 다한 그리움의 표현이었던 밥상에 그동안 한으로 맺혀 있던 세월이 모두 녹아나는 듯 하다.
티비에서 보여지던 단정하고 정갈하게 갈무리를 마친 '천년의 밥상' 이야기를 접하는 것만이 아니라 책에는 '천년의 밥상'의 뒷이야기도 함께 나와서 더 인간적이고 정이 간다. ' 야 이놈아, 너 상 위에 오른다는 게 얼매나 큰 건지 알기나 하나? 밥상 위야말로 무대 위랑 같은 것이랑께! 별거 아닌 음식 하나하나가 부엌에서 주물럭 내 손을 거치다가도 상 위에 오르게 되면 완전히 다른 종자가 되어버리는 것이여. 그게 시댁에 처음 선보이는 새색시의 모습일랑가. 그 뭣이냐 극장에서도 손님들 땜시 배우들이 연습하고 얼굴에 뭐 찍어 바르고 하다가 무대 위에 올라가면 그것들 얘기에 홀딱 빠져서 무대 주변이 울고 웃고 그러잖혀. 그러니께 밥상 위나 너그들 극장 무대나 매한가지여! 이런 거 알고들 먹어봐 훨씬 만나제!' 어느 식당의 주인 할매의 이야기에서 전광석화처럼 그동안 맥을 못 잡던 것들이 한꺼번에 그림이 그려지듯 했다면 나 또한 이야기를 읽으며 '이거야 이거' 라며 읽게 되었다. 그렇다 정말 상에 오른다는 함부로 올리는 것이 아니라 갖은 정성,꽃단장을 마치고 노력 한 결실만 오르는 것이다. 그것이 관객이 평을 하느냐 먹는 사람들이 평을 하느냐에 따라 다른 것이다.
<천년의 밥상>을 보다 보면 정갈하면서도 정성이 들어가지 않은 것이 없다.밥상에 오르기 위하여 몸단장을 하는 그 과정이 어느 과정보다도 더 정성과 노력이 담겨 있고 그 재료나 음식에 '역사'가 가미되어 '천년의 밥상'은 더욱 깊은 맛을 내기도 하여 오감으로 보는 프로이기도 했다. 지금이야 문명이 발달하여 쉽게 맛집을 찾아 다니며 사진을 찍고 먹고 블로그에 올려 맛집이 아니면서도 맛집으로 거듭나는 세상이지만 오래전에는 어떻게 집안만의 '레시피'를 자자손손 이어갈 수 있게 하였을까? 그 속에 <음식디미방>이라는 우리나라 최고의 식경이 있다. 일흔을 갓 넘기 나이에 며느리와 딸자식들을 위해 종갓집 요리를 한 권의 책에 담아낸 장계향,'자기 삶이 목적이 '자기 내부'에 있느냐,그렇지 않느냐가 중요했던 사람이없을 것이다.' 밖에서만 세상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집안에서도 자기 완성을 기하는 '자기 내부' 의 완성을 보여주듯 하는 듯 보여지며 여자만 요리책을 쓰는 것이라 아니라 남자도 요리칼럼을 쓰고 요리책을 쓴다는 것을 보여주는 허균의 '도문대작'그는 아버지 덕에 풍부하게 맛 볼 수 있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유배지에서 그 맛과 추억을 되살리듯 풀어낸 <도문대작>이라는 책은 지금으로 보면 남자로서 최고의 요리블로거가 될 수도 있을 훌륭하 책이기도 하며 풍류를 담은 밥상인 <수운잡방> 또한 남자로서 음식에 대한 써냈다는 것이 참 특이하다.지금처럼 출판이 쉽지 않았으니 '요리'는 책으로 남겨지기 보다는 구전으로 더 많이 알려지고 지켜지게 되었을텐데 이런 책들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역사가 담긴 요리가 있는가 하면 백성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음식들이 있다. 제주 해녀인 잠녀들이 쉽고 편하게 먹던 양푼의 밥이나 도마에 그냥 썰어 놓고 먹던 수육이 돔베고기로 거듭나고 음식이 담긴 그릇 또한 서민적인 '질그릇'이 많이 사용되면서 그에 알맞은 음식이 담겼던 것은 아닌가. 지금이야 모든 것들이 시장이나 마트에 가면 쉽고 간편하게 구할 수 있지만 운송수단도 제철이 아닌 것은 더욱 얻기 힘들었던 때에 귀한 음식은 서로 정을 나누기도 하고 친구를 불러 들이기도 하고 인생을 바꾼 벼슬자리를 주기도 하였지만 나라 잃은 슬픔을 담아 내기도 하고 백성들의 고난한 삶을 고스란히 담아 내기도 했다. 지금처럼 대량생산이 아니었으니 먹을 것은 더욱 귀하고 밥상위에 오른다는 것은 존귀한 것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요리를 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대충대충 하기 보다는 가족의 건강을 위하고 정성을 들일 것이다.돈을 위해 음식이나 재료를 가지고 장난을 치는 사람들도 많은 세상이지만 이처럼 역사와 정성 그리고 우리네 삶이 담긴 정갈한 음식을 담아내는 프로는 장수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비록 그 길이 고난하다 할지라도 좀더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