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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 - 김말봉 애정소설
김말봉 지음 / 지와사랑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오월,울집은 바로 옆에 작은 동산이 있어 아카시아와 찔레꽃 향기로 온 집안이 흔들린다. 창 문을 열어 놓으면 뒷산에 가지 않아도 찔레꽃 향기와 아카시아 향기에 정말 정신을 차릴 수 없어 꼭 몇 번은 뒷산에 가고야 만다. 온 산을 하얗게 덮은 찔레꽃,유독 뒷산엔 찔레나무가 많다. 아무곳에서나 잘 자라는듯한 찔레,거친 땅에서 가시를 세운 찔레는 오월에는 정말 대접받는 꽃이다.그 하얀 꽃에 벌들이 윙윙 알통다리를 하여 노란 꽃가루를 묻히고 이 꽃 저 꽃으로 날아디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그 향기와 소박함에 취하지 않을 수가 없다. 더구나 난 장사익의 <찔레꽃>과 양희은의 <찔레꽃 피면>이란 노래를 좋아해서인지 더욱 이 계절엔 찔레꽃에 취한다.
찔레꽃은 참 소박하면서도 순수한 꽃인듯 하다. 가꾸지 않아도 그 향기는 은은하고 멀리 멀리 퍼진다. 그런 찔레꽃을 좋아하고 찔레꽃과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안정순'이라는 가정교사를 하는 이십대 처녀는 비가 오면 빗물이 줄줄 세는 초가집에서 아버지 병구안을 하고 어머니와 제비새끼들 같은 동생들을 책임져야만 하는 실직적인 가장역할을 해야만 한다. 꽃다운 나이에 꽃과 같이 피어날 수 없는 운명이지만 그녀의 향기는 멋부리지 않아도 은은하게 흘러 나오는 찔레꽃처럼 그녀를 본 사람들은 그녀만의 멋에 반한다. 그녀에게는 민수라는 약혼자가 있다. 그는 시골부호의 아들이지만 그에게는 출생의 아픔이 있다. 그런가하면 농사만을 알고 땅만 아는 아버지의 잘못으로 땅은 모두 00은행앞으로 잡혀 들어가게 생겼다. 목숨줄이나 마찬가지인 땅을 은행에 모두 빼앗기게 된 것, 그 은행의 두취가 바로 정순이 가정교사로 있는 집이기도 하고 그의 집에는 독신으로 살겠다는 미술을 한 딸 '경애'가 있다. 그녀의 구두를 백화점에서 밟은 인연으로 민수와 경애는 인연이 되고 또 그렇게 운명적으로,아니 복수심에 우연이 필연이 되고 마는 운명을 선택한다.
우연하게 가정교사 자리를 00은행장인 조두취의 집으로 들어가게 되지만 그곳 마나님은 오랜 병인생활로 가정교사를 음혜하기도 하고 자신 멋대로 나가게 한다. 그것이 그녀가 그녀 자리를 지키는 방법이기도 했지만 피해는 모두가 당하고 있다. 이 소설에서 여인네들의 삶에 주목을 하며 읽게 되었다.물론 사랑과 욕망 그리고 돈이라는 것을 따라가기도 했지만 그것들과 얽힌 여인네들의 잡초처럼 질긴 생명력을 본다. 안방마님이 병인생활로 정신적으로 날카로워졌다면 그 밑에서 마님의 수족처럼 움직이는 할멈은 능수능란하게 자신의 이익을 꽤하려 하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꾀에 자신이 걸려 들고 만다. 그런가 하면 사랑이 아닌 돈에 움직이는 기생 옥란의 삶 또한 참 가련하면서도 씁쓸하다. 기생이기에 한 남자에게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돈에 흔들리며 급류와 같은 삶을 사는 여인네,그녀가 바란 것은 아들의 뿌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었지만 결국 자신으로 인해 모든 뿌리를 잃고 만다.
00은행장 조두취의 집에 가정교사로 들어간 정순,그녀는 돈에 휘둘리지 않고 조두취의 아이들을 성심성의껏 자신의 본분에 맞게 울타리가 되는가 하면 경애가 아무리 언니 동생 먹자고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돈의 상하 관계에 자신은 밑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자신에 맞게 처신을 하는가 하면 조두취의 아들과 딸인 경구와 경애는 뿌리부터 자본가의 자식들이기에 그들이 아무리 남을 위한 것을 한다고 해도 남에겐 그저 자본가의 자본을 가지고 쇼를 하는것에 지나지 않는다. 정순의 약혼자 민수까지 경애의 차지가 되고 민수 또한 복수심에 경애를 선택하지만 정순은 자신의 본분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지켜내는 찔레꽃처럼 경구의 구애를 뿌리치지만 아들과 함께 찔레꽃과 같은 정순을 음탐하는 조두취,정순을 다 가졌다고 생각한 순간 크나큰 오류에 빠졌다는 것을 그로 인해 해를 당하기도 하는 조두취의 끝은 찔레꽃의 무수한 가시에 찔린 인간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소설은 1930년대에 쓰여진 애정소설이라고 하는데 지금 읽어도 재밌다. 그 시대의 문화가 담겨 있고 그 시대를 읽을 수 있어 두께는 있지만 빠져 들어 금방 읽을 수 있다. 그 시대에는 흔하지 않던 자유연애 자유결혼 구시대와 신세대간의 갈등 돈에 대한 욕망등이 잘 담겨 있다. 부모의 세대는 중매혼이었다면 그들의 자식들은 '자유연애와 자유결혼'을 꿈꾼다. 부모들이 부를 축적한것과는 다르게 그들은 누리고 살고 싶어하고 그들이 이상처럼 농촌부흥이라도 힘을 써야만 할 것 같다. 비만 오면 빗물이 줄줄 세던 초가집에서 살던 정순이 고대광실 고래등같은 집에 가정교사로 들어갔지만 그 집에서 산다고 그녀 또한 부르조아가 될 수는 없다. 그녀의 뿌리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찔레꽃럼 그녀만의 터전이 있는 것이다. 타인의 자본을 내것인양 욕망을 가져서도 안되고 그것에 물들어 가봤자 자신만 다치고 자신만 상하게 된다. 고대광실에서 정순이 얻는 것은 한달 가정교사로 얻을 수 있는,자신의 가족이 굶지 않을 정도의 최저생활비다.
'세상은 물레바퀴다.' 민수네의 어려움을 쳐다보지도 않았던 조두취의 딸 경애를 민수가 구해줌으로 인해 세상은 혼자 독식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얽혀 사는 것이라는 것을 민수의 아버지는 '물레바퀴'라고 한다. 그런가하면 민수는 자신의 땅을 빼앗아 간 자본가들에 맞써 복수하듯이 경애와의 사랑 없는 사랑을 선택하게 되는 험한 세상, 그 속에서 아무 흔들림없이 자신의 존재만으로도 그 향기를 발하는 정순의 확고한 삶은 희망을 보여준다. '이렇게도 돈이 귀중한 물건인가.민수씨가 나를 버리고 돈을 취한다면 정말 돈은 퍽 소중한 물건이지?' 사람이 살아가는데 얼마의 돈이 필요한 것일까? 그것이 모라라도 문제지만 차고 넘쳐도 문제가 되는듯 하다. 마음이 우선인 사랑에 돈이 개입이 되고 나면 그것은 더 큰 문제를 낳는다. 마음이 아닌 저울질로 선택하는 사랑에 마음을 다치는 사람들,그렇지만 그 속에서도 온전한 사람은 분명 있다. 지고지순하면서도 어느 것에도 물들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꽃을 피우는 정순의 삶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찔레꽃, 여인네들의 심리묘사도 좋았고 돈에 얽힌 인간의 욕망을 엿본듯 하여 씁쓸하긴 하지만 1930년대를 다시 만난듯 즐겁고 이런 좋은 작품을 만나게 되어 기쁘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될 사랑과 돈, 그것이 어떤 색과 향기를 가지느냐에 따라 삶 또한 다른 향기를 보여주리라. 좋은 작품이 묻혀 있지 않고 다시 빛을 보게 된 것이 기쁘고 구수한 된장찌개 한 그릇 배부르고 맛나게 먹고 난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