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살고 싶은 집은 - 건축가 이일훈과 국어선생 송승훈이 e메일로 지은 집, 잔서완석루
이일훈.송승훈 지음, 신승은 그림, 진효숙 사진 / 서해문집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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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와 툇마루가 맘에 드는 잔서완석루야..

이 가을 건축가와 건축주의 이메일로 집을 지은 사연을 읽다보니 나도 왠지 가을편지라도 써야 할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집이란 어떤 의미일까? 내가 무척 어린 시절에는 잠깐 초가집에서 살았다. 그때는 짚으로 이엉을 엮어 초가를 얹는 것이 연중행사로 동네마다 한집씩 돌아가며 겨우살이를 장만하듯 그렇게 지붕을 새로 하여 놓으면 얼마나 이뻤던지.그 날에는 동네잔치를 하듯 아이들은 모조리 나와 술레잡기를 하기도 하고 먹을 것을 나누어 먹으며 짚으로 장난을 하고 놀았다.그런시대가 지나고 바로 슬레이트 지붕이 들어서고 동네는 변했다. 초가집은 갑자기 사라져가고 모두가 슬레이트지붕에 블럭집이 들어서느라 그야말로 동네는 바빴다. 그 물결에 휩쓸려 우리도 새로 집을 짓고 이사를 했다. 새로 짓는다기 보다는 낡은 집을 헐고 아버지가 손수 우리들과 함을 합하여 집을 지으셨다. 고사리같은 손으로 돌을 나르고 벽이 되는 공간에 돌을 집어 넣고 구들장을 놓는 곳에서 장난도 치고 앞마당에 우물을 파던 날에는 바위가 뚫리지 않아 몹시도 애를 먹이다가 바위가 뚫리며 그야말로 물길을 뚫어 시원하게 솟구치며 모두를 환호하게 했던 우물 파는 날도 생각이 난다. 그렇게 아버지는 하나 둘 집을 지으셨고 집 주변에 나무도 하나 둘 심고 엄마는 꽃을 좋아하셔서 엄마가 좋아하고 초가집 뒤란에서 키우던 도라지며 함박꽃이며 나리꽃이며 백합이며 갖은 꽃들을 옮겨 심고 가꾸게 되었다.


하지만 왠지 낯선기분,초가집에 있던 '툇마루'가 난 너무도 좋았었다. 그 툇마루에서 들에 나가 일하시는 엄마와 아버지를 기다리기도 했고 그곳에서 모두가 밥을 먹거나 이웃들이 놀러 오면 간단하게 상을 차려 나누어 먹기도 하고 오빠나 언니와 공기놀이도 하고 숙제도 하고 들일 나간 부모님을 기다리다 지쳐 잠이 들면 햇살이 살포시 덮어주어 따뜻하게 해 주었던 그런 기억이 있기도 하거니와 아버지는 꼭 툇마루에 검은 고무신을 깨끗하게 닦아 엎어 놓으시곤 하셨다. 마지막 가시는 날까지 검정고무신을 신으시고 아끼셨던 아버지,툇마루에 고무신이 닦여 엎어 있다는 것은 아버지가 하루 일을 마쳤다는 증거이고 검정고무신이 없다는 것은 아버지가 들일을 나가셨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안계시면 검정고무신부터 찾아 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 마루는 정말 좋아서 나무냄새까지 좋았다. 그래서 늘 내 기억속에는 내가 나중에 집을 짓게 되면 초가집에 있던 그런 '툇마루'가 있는 집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져 보게 되었고 커가면서 연꽃을 좋아하여 집안에 작은 웅덩이라도 해 놓고 연을 심어 그 꽃과 향을 맡아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며 나름 연의 향기가 있고 책이 노니는 집이라는 뜻으로 '연향서유당' 이라는 이름을 지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가면서 흙을 밟고 살던 시대보다는 흙을 밟지 않고 사는 삶에 더 익숙해져 가다보니 성냥갑같은 아파트 생활에 익숙해지다보니 내가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지도 자꾸 잊는 것 같기도 하고 익숙한 공간에서 움직이다보니 건강이 좋지 않은 듯 하여 아이들이 크면 흙을 밟고 살아야겠다는,낡은 집이라도 구해 새로 손을 봐서 살고 싶은 생각을 가져 본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너무 많은 살림을 가지고 있다는 것,버리는 것에 익숙하지 못해서인지 남들보다 많은 짐을 가지고 있으니 늘 집을 생각하면 내 짐에 과연 저 집에 다 들어갈까? 그런 생각부터 하게 된다. 나누어 주고 정말 기본적인 것만 가지도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하지만 그것이 과연 하루아침에 이루어질까? 내가 그동안 살아온 고정관념과 같이 내 몸에 베어 익숙한 것들에서 벗어나 '불편한 삶'을 산다면 얼마나 버틸지도 의문이다. 과연 우리들은 불편한 삶을 어디까지 용납하며 살 수 있을까? 아파트 생활이 아닌 단독을 짓고 산다는 것은 어쩌면 불편함을 어느정도는 받아 들이고 살아야 된다는 것을 용납해야 하는데 그것이 어디까지일지 궁금하다. 산다면 살아지겠지만 나이들고 몸이 아픈 상태에서 갑자기 생활을 바꾼다는 것은 더 힘든 일일듯 하다.그런 면에서 자신들의 느낌을 집으로 이루어 내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대단한 듯 하다.


건축주와 건축가와 집을 놓고 서로 연애를 하듯 이메일로 편지를 주고 받으며 마음 안에 자리한 집에 대한 것들을 끄집어 내어 그것을 형상화 하기 까지는 정말 많은 시간들이 필요했고 서로의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것이 꼭 한 편의 詩를 혹은 수필을 읽는 것처럼 어쩌면 그렇게 마음에 콕콕 박히는지 정말 좋다. 서로를 배려하며 정말 깨알같은 것도 놓치지 않기 위한 세심한 배려가 이루어졌다는 것이 간접적으로 읽는 사람도 꼭 하나의 집을 완성하는 기분이 들게 만든다. 그 어떤 말보다도 '바람이 통하고 빗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삶의 그늘이 되는 집..' 이라는 말이 참 좋다. 그리고 잔서완석루에서 제일 부러운 것은 '툇마루와 서재'이다. 내가 정말 갖고 싶은 것들,물론 나도 삼천여권의 책을 가지고 있으니 당연히 서재를 가지고 있긴 하다. 거실이 서재이니 하지만 2층으로 통하는 '책의 길'이며 공중서재며 멋진 서재는 정말 부럽다. 그리고 내가 정말 가지고 싶은 튼튼한 '툇마루',툇마루라는 것이 그렇다. 모두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사연이 있는 공간이다. 시골에서는 그곳에서 모든 것을 나눈다. 커뮤니케이션의 장소라고 할 수 있는 공간, 잔서완석루는 툇마루가 여기저기 있기에 모든 이들이 소통하고 교감하는 집이다. 혼자만의 집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누리는 집이고 소통하는 집이라 더욱 맘에 든다.


내가 바라는 나중의 집은 한옥이다. 그렇게 하여 한옥에 관심도 많고 무수히 많은 세월을 지나도 주인장들의 바지런함처럼 반들반들 윤이 나는 마루나 그외 나무결을 정말 좋아 한다. 낡은 것이 아니라 세월이 갈수록 윤이 나는 그런 집의 나무처럼 많은 이들이 밟고 앉아 주고 사용해야만 빛이 나는 툇마루에 모두가 둘러 앉아 서로가 공감할 수 있는 것을 나누는 장이 된다는 것은 정말 부러운 곳이다. 집은 소통이 되어야 한다. 현관문을 닫으면 모두와 차단이 되는 그런 집이 아니라 이웃과 더 먼 사람들과 교류를 하고 소통을 하는 그런 집이기를 원한다. 아버지의 말씀이 늘 '집에 사람이 찾아 와야 살아 있는 집이지 사람이 오지 않는 집은 죽은 집이다.'라고 하셨다. 그래서였을까 늘 마을 중심에 있어 어린시절 이웃들로 넘쳐나던 집이 난 싫었는데 나이 들고보니 그것이 참 좋았다는 것을,북적북적 사람사는 냄새가 늘 가득했다는 것을 이젠 알겠다.그런 집을 잔서완석루에서 본다. 도둑을 걱정하고 방범을 걱정하기 보다는 보다 더 이웃고 소통하려는 주인장의 배려처럼 담장이라도 이웃에게 내어 주듯 길을 내주기도 하고 툇마루에서 함께 하는 모습이 참 좋다. 그런가하면 집을 형상화 하기 전에 건축가 혼자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건축주도 함께 '건축'에 대하여 '집'에 대하여 공부하고 의견을 나누고 하는 모습이 참 좋다. 배울것이 너무 많다.


그냥 돈으로 지어지는 집이 아니라 정말 그 집에 들어갈 살 사람의 마음을 읽는 집처럼 '삶의 그늘'이 될 집을 '공간마다 사연'을 두어서 멋진 집을 완성해 낸다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일텐데 서로의 의견을 절충하며 서로 잘하는 모습을 복돋워주고 세세한 가정사까지 나누며 마음을 나누는 모습이 집이기 이전에 인간대 인간으로 더 와닿고 그야말로 집이기 이전에 살아 있는 집이 된 잔서완석루가 부럽기도 하다. 집이란 아니 건축이란 이렇게 하는 것이다라고 이야기 해주는 것 같다. 이메일로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집 공사를 시작하며 세세한 것들을 사진으로 그리고 그림으로 모든 것을 기록해 놓은 것을 보면서 어린시절 아버지와 함께 돌을 나르며 집을 짓던 먼 기억이 떠오르며 나만의 그런 집을 다시 짓고 싶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연향서유당을 말이다.그때는 넉넉한 툇마루도 밖을 내다 볼 수 있는 창도 멋지게 내고 내가 좋아하는 나무들 꽃을 심어 울타리로 해도 좋을 것이다.




'아,졌다. 내 의로인은 건축가보다 한술 더 떠 '채나눔'주장에 대하여 집을 아주 열어 놓고, 이웃과 더불어 살기를 실천하고 있으니 어디 이 책-아니 건축주와 건축가의 은밀한 연애편지-을 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와 봐라, 어디 나보다 더 보람 있는 건축가가 있는가.'


살아가면서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몇이나 될까? 나이가 들어가다보니 아파트 평수와 가격은 그사람의 얼굴처럼 친구들을 만나면 '너 몇 평에서 사니?' 혹은 '너 무슨 아파트에서 살아?' 라고 묻는다. 아파트 평수가 그사람을 나타내는 기준처럼 집 평수 먼저 물어 보고 호구조사를 하고 수다를 떤다. 집이 아무리 크면 뭐할까? 애들 크면 다 나가고 덩그러니 부부만 남게 될텐데. 난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것들로 그야말로 내 집을 내 맘에 드는 것들로 채워 넣으며 살 것이라,누가 뭐라 하든 그렇게 살 것이라 한것이 지금은 집이 좁을 정도로 책과 화초로 가득찼다. 가족들은 불평을 가끔 하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은 몹시 부러워 한다.있다고 힘을 주기 보다는 가꾸다보니 한 권 한 권 좋은 책들 구매하다보니 늘어 났는데 이젠 그것들 나누어 주는 기쁨 또한 쏠쏠하다. 그리고 누군가는 우리집과 같은 서재를 로망으로 가진 사람도 있다고 하기도 한다. 그런데 잔서완석루를 보니 그렇게 근사한 집이 아니어도 내가 꼭 가지고 싶은 기본적인 것만으로 흙을 밟으며 살 수 있는 그런 아담한 집을 인생에서 한번은 꼭 짓어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그런 날이 꼭 오기를.'연향서유당아, 그날까지 내 마음안에 터를 잡고 잘 있어 주길 바란다. 그 마음이 언제 변하려는지 모르겠지만 생각하면 생각한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인생이고 그런 꿈 하나 간직하고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 행복하다. 잔서완서루의 건축주와 건축가처럼 서로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면 그렸다 다시 그리고 하더라고 내 안에 돌 하나 나무 한그루 천천히 심으며 그날을 기약하마.어린시절 툇마루에서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모두가 함께 모여 밥을 먹고 공기놀이를 하고 숙제를 하던 그시절처럼 소통할 수 있는 이들과 함께 모여 따뜻한 시간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시간이 꼭 오기를.내 마음 안이 아닌 밖에서 널 볼 수 있기를 고대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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