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함을 드세요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난 우리 외할아버지를 생각하면 '막걸리와 매운탕'이 생각난다. 외할아버지는 천렵도 잘하셨지만 그것으로 끓인 '매운탕'을 즐겨 드시기도 했고 우리집에 오면 꼭 엄마는 내게 노란주전자를 들고 가서 막걸리를 받아 오게 했다. 그리곤 오빠들에게는 마을 앞 뒤 개울에 가서 물고기를 잡아 오게 하여 매운탕에 막걸리를 대접해 드렸다. 그러니 마을 어귀에서 한복을 정갈하게 차려 입으신 외할아버지가 나타나면 난 얼른 노란주전자를 들고 뛰었다. 그래서였을까 외할아버니는 다른 손주들보다 나를 무척이나 이뻐하셨다. 돌아가시기 일주일전에는 물 한 모금 넘기시지 못하며 내가 보고 싶다고 해서 가서 뵙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또한 물한모금 넘기지 못하다가 내가 왔다는 말에 할아버지는 물을 한모금 한모금 넘기셨다. 여름방학만 주면 외가댁에 가서 할아버지와 함께 그물을 들고 난 양동이를 들고 물고길르 잡으러 다니기도 했다.난 매운탕을 먹지를 않았지만 할아버지와 함께 하는 그 시간이 좋았다. 할아버지는 그래서였는지 영면하시고 다른 식구들 꿈에는 한번도 나타나지 않으셨는데 내 꿈에는 두어번 다녀가셨다. 엄마는 외손녀딸을 아끼긴 아꼈나보라며 말씀 하시곤 하셨다.

 

외할아버지는 매운탕과 막걸리가 생각이 난다면 친정아버지는 아버지가 늘 아궁이 잔불에 끓여 주시던,물론 엄마가 다 준비하셔서 아궁이에 안쳐 놓았지만 보글브글 잔불에 끓어 넘치지도 않고 맛있게 끓었던 된장찌개와 잔불에 석쇠를 올리고 구워 주셨던 '고등어구이'가 생각난다.아버지는 막내딸 입에 가시가 들어갈까봐 늘 조심조심 살을 발라 주시고는 했다. 말로는 잘 표현하지 않으셔도 지금으로 말하면 '딸바보'쯤 되는 울아버지는 그렇게 막내딸을 아끼셨다. 그런 아버지가 폐암으로 병원에 계실 때 난 일주일 동안 엄마와 아버지 밥반찬을 해서 병원으로 날랐다. 아버지가 아궁이 잔불에 끓여 주시던 된장찌개의 맛은 아니어도 국물멸치와 콩나물 바지락 두부를 넣어 시원하고 담백하게 끓인 된장국을 끓여 가면 좋아하셨다. 밥을 잘 드시지는 못했지만 국에 말아서 떠먹기 좋았던 것, 병원밥을 맛이 없는데 내가 해 가는 반찬들을 올려 놓아 드리면 그래도 한그릇 뚝딱 드셨던 아버지, 그때 간식거리로 과자를 사다 드렸는데 그중에서 '새우깡'과 '커스타드'인가 하는 것을 참 좋아하셨다. 새우깡은 안드신다고 하시면서 한봉지를 혼자서 맛있게 다 드시는 것이다.그래서 날마다 과자를 사다드렸는데 병실 아저씨들께 막내딸이 사왔다고 자랑도 하시고 당신도 한봉지씩 드시면서 '아버지는 과자 싫어하는데...' 그 말씀을 꼭 하셨다.다음엔 사오지 말라고. 아마도 그 말씀에는 내가 돈을 많이 쓸까봐 걱정이셨던 것 같다.그래도 날마다 맛나게 드셨던 생각이 난다.

 

오가와 이토의 <달팽이 식당>을 가지고 있는데 난 아직 읽지를 못했는데 큰딸이 지난 겨울방학에 읽고는 '엄마, 이 책은 꼭 읽어보세요.정말 감동이에요.' 했던 기억이 있어 언젠가 읽어야지 했는데 못 읽고 있었다.그런데 이 책을 보니 얼른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책을 읽고나니 더 읽고 싶어졌다. 이 책에는 7가지 '음식'에 대한 이야기들이 삶의 한 부분인 약속,이별,죽음등과 함께 하는 이야기와 연결이 되어 있다. 우리가 과거를 기억하거나 추억할 때 거기에 '음식'이 함께 하면 과거의 추억은 더욱 진하게 맛이 나고 그 기억을 잊을수가 없다. 나 또한 외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음식과 연관이 되어 더욱 생각이 난다. 한동안 아버지가 맛있게 드시던 과자를 먹을수가 없었다. 그러다 어느날 나도 아버지처럼 맛있게 먹어볼까 하며 먹게 되었다. 그런 이야기들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아버지와 떨어져 엄마와 살고 있는 나,할머니가 요양병원에 들어가시게 되고 밥을 드시지 않아 엄마는 걱정이 많다.엄마가 그렇다고 음식솜씨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갖은 솜씨를 부려서 음식을 해가지고 가 할머니 앞에서 어린애같은 말로 할머니께 음식을 드려도 할머니는 금쩍하지 않았다.그런 할머니가 우연히 열은 창문밖 후지산에 반응을 하고 언젠가 아빠와 엄마와 함께 모두 모여 먹었던 후지산을 닮은 '빙수'를 찾는 다는 것을 알고는 얼른 빙수를 사러 가서 할머니 사정을 이야기하고는 후지산을 닮은 빙수를 사가지고 와서 할머니께 드렸는데 할머니는 맛있게 드신다.그리곤 할머니가 엄마에게도 나에게도 빙수를 건네 주신다. 빙수를 먹고 곤히 잠든 할머니와 엄마, 할머니의 입술에 묻는 빙수맛을 보며 '할머니는 부패하고 있는 건지,아니면 발효하고 있는 건지.'에 대하여 생각을 하다가 할머니는 빙수맛처럼 맛있게 '발효'되고 있는 것이라 생각을 한다. 소녀는 아버지로부터 외면당하고 할머니 또한 나이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고 나니 '삶과 죽음'에 대하여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그것이 음식과 함께 하면 가슴 뭉클한 감동을 준다.

 

아버지와 삼겹살 덮밥,아버지는 미식가였다.한곳에서 밥을 다 먹는 경우가 없을 정도로 어느 가게에 무엇이 맛있는지 맛순례를 하듯 엄마와 나를 데리고 다니며 먹곤 하셨다.그러던 아버지도 인정한 맛집이 있다. 요코하마 주카가이의 허름한 중국집,그곳에서는 미식가였던 아버지도 한곳에서 식사를 코스별로 다 마치셨다.아버지가 가시고 나서 나는 애인을 데리고 이곳에 왔다.그녀는 이곳에서 나오는 요리마다 맛있다며 정말 맛있게 먹기도 하고 그릇을 싹싹 비운다. 마지막까지 배부르게 먹는 애인,너무 먹어서 헤어지자고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는 순간 그는 프로포즈를 한다.아버지는 이곳에서 맛있게 먹는 사람과 결혼을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에는 피곤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지금 자신의 인생을 바뀌 놓고 있다. 음식이라 정말 마음이 맞는 사람과 먹으면 더욱 맛이 배가 되는 겨우가 있다.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먹는 사람과 상황이 좋지 않으면 맛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맛있는 음식과 그 맛을 알아주는 사람,그런 사람이라면 인생을 함께 해도 된다는 가슴 따듯한 이야기.

 

안녕 송이버섯, 10년을 함께 했지만 그들은 이제 이별을 하려고 한다. 하지만 송이버섯 요리를 먹으러 가는 온천여행,애인의 생일날 여행을 그들은 취소할 수가 없어 마지막이지만 함께 한다. 따듯한 온천과 정말 맛있는 송이버섯 요리들, 송이버섯 철에 오면 더욱 맛있는 아침에 먹는 송이버섯 요리는 최고인듯 하다. 왜 그들은 십년을 사귀었는데 결혼을 못하고 이별여행을 오게 된 것일까.아무리 남자가 다른 여자가 있는듯 하다고 하지만 자신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결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마지막까지 난 그들이 해피엔딩이 될 줄 알았는데 애인을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그의 진심을 알게 되는 여자, 인생은 그렇게 엇박자인듯 하다.엇박자라고 비난하거나 자책할 것이 아니라 서로 합일점을 찾아서 마음을 나누어 보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남자는 왜 진심을 표현하지 않았고 여자는 그런 남자를 왜 잡으려고 안했을까? 이별을 앞에 두고 그들은 이별과는 별개처럼 맛있는 음식들을 함께 한다.맛있는 음식들로 인해 그들의 이별의 감정이 녹아날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가보다. 맛있는 음식과 삶은 별개이기도 하다.아니 그런 와중에 삶은 진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코짱의 된장국, 엄마는 그녀를 남겨 두고 암으로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만약에 그녀를 임심하지 않았다면 엄마는 아빠와 오래도록 살 수 있었던것 아닐까? 자신의 탄생이 괜히 자책감이 들어 아빠에게 물어보지만 아빠는 아니라고 이야기 한다. 그녀가 있어서 엄마와 아빠는 더 행복했다고 이야기 한다. 엄마는 그녀가 아주 어린 나이부터 그녀에게 '된장국' 끓이는 법을 알려 주었다. 엄마가 빨리 갈 것을 알고 어린 그녀에게 된장국 끓이는 법을 알려준 것일까?이제 그녀는 결혼을 앞두고 아빠에게 마지막 된장국을 끓여주고 있다.그녀가 떠나면 아빠는 혼자서 된장국을 끓여 먹어야 한다. 아빠의 프로포즈와 같던 말에 엄마는 평생 맛있는 된장국을 아빠에게도 끓여 주었고 그녀에게도 가르쳐 주었다. 엄마는 떠났지만 엄마와 함께 했던 맛있는 된장국은 오래도록 남아 있다. 인생도 그런것 같다. 삶은 소멸하고 탄생하고를 반복하는 가운데 음식이라 이어지고 이어져 누군가의 기억에 오래도록 추억을 남겨 놓는다. 엄마는 분명 떠났고 이제 그녀도 아빠의 곁을 떠나야 하지만 그들의 기억속에는 모두 함께 했던 된장국에 대한 행복한 기억이 존재한다. 그 따스함을 전해주고 있다.

 

그외 이야기로 동성연애를 하여 딸과 아내에게 소외된 남자가 돼지와 함께 프랑스 여행을 간다. 아사를 하겠다고 하다가 맛있는 것을 앞에 놓고 그들은 마지막 음식으라며 먹고는 하는데 그들이 과연 죽을 수는 있을까. 그런가하면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함께 했던 맛있는 고르케에 대한 추억을 잊을 수 없어 찾아 왔지만 맛있는 음식은 있는데 사람이 없다. 삶은 또 그렇게 흘러 가고 있는 것이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순간에도 우리는 먹어야 한다. 사는 것이 먼저인지 먹는 것이 먼저인지 한참 그런 질문이 돌았지만 먹어야 살 수 있는 것 아닐까? 그것이 맛 없는 음식보다는 보다 더 맛있고 한때의 기억속에 행복했던 사람과 나누었던 음식은 그것이 맛이 없어도 더욱 맛있게 기억된다. 돌아가신 아빠가 그토록 먹고 싶어 했던 '기리탄포'를 아빠 49제에 함께 나누기 위하여 엄마와 하지만 실패를 한다.왜 갑자기 그 맛이 변했을까? 간장을 넣어야 하는데 직원이 가져다 준 약초물을 잘못 넣은 것이다. 그리곤 다른 요리를 하여 먹는 모녀, 아빠와 함께 했던 기억이 있기에 기리탄포가 더 맛있게 기억되고 마지막까지 아빠가 그 음식을 먹고 싶어했기에 더 기억되는 음식인데 지금 그들이 만들어 낸 맛은 그 맛이 아니다. 맛이란 시간이 지나면 변할 수도 있다. 추억이란 것도 시간이 흐르면 퇴색해 간다. 삶 또한 영원하지 않다.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고 사랑이 있으면 이별이 있다.일상적인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음식과 나누는 일상적인 맛 이야기는 결코 일상적이지 않은 것처럼 목울대를 막히게 한다. 나이가 들어가니 점점 음식과 함께 한 '행복한 만찬'이나 '행복한 기억'들 속의 음식들을 찾게 된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사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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