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언젠가 파라솔 아래에서
모리 에토 지음, 권남희 옮김 / 까멜레옹(비룡소)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모리 에토라는 작가는 솔직히 처음이다. '언젠가 파라솔 아래에서' 뭘까? 집세를 아끼기 위하여 불감증이면서도 남자친구와 동거를 하는 노노,그런 노노를 동생 하나가 아버지 일주기를 의논하자고 부른다.집은 아버지가 갑자기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정원도 그렇고 엉망진창이다. 왜 안그렇겠는가 누군가 갑자기 잃게 되면 그 상실감에 한동안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갑자기 남편을 잃은 엄마는 여기저기 아프다고 하면서 날마다 병원을 가기 위하여 외출을 한다. 정말 아픈것일까? 정신과에 가봐야하는 것 아닐까? 아버지는 엄격하고 완고하여 아들 가스가와 딸 노노 그리고 막내 하나에게 무척이나 철두철미하게 했다. 그런 아버지에게 반감을 사듯 가스와 노노는 스무살에 집을 나가서 자유로운 생활을 하지만 노노는 불감증이고 가스와는 변변한 직업도 없이 생활하며 자주 애인을 바꾸며 살아간다. 그렇다고 노노도 괜찮은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빠 가스가와 비슷한데 그녀는 심한 불감증이다.
그런데 이변이 일어났다.아버지 사십구재 전에 나타난 여인,아버지가 바람을 피웠다고 한다. 정말일까?그토록 엄격하고 성에 관해서는 철두철미했는데.믿을 수 없는 일에 자식들은 모두 난감한 가운데 엄마도 또한 방황하는 기미를 보이고 노노는 회사로 그 여인을 찾아가지만 다른 여자에게서 아버지와 성관계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해할 수 없는 아버지의 사생활이 죽음 이후에 드러나게 된다.도데체 우리 아버지는 어떤 아버지였기에 안에서는 엄격하고 밖에서는 바람을 피웠을까? 왜 아버지는 자신의 고향은 떠나온 후 한번도 찾지 않고 살아왔을까? 고향에 무슨 비밀이라도 있을까? 자식들은 엄마 몰래 아버지의 비밀을 찾아 나선다. 아버지의 친구라고 장례식에 오셨던 분을 찾아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듣다가 할아버지에 대한 대단한 이야기를 듣게 되고 그들은 믿을 수 없기도 했지만 아버지의 고향이 사도에 계신 고모를 찾아가 아버지의 비밀에 대하여 들어보기로 여행을 떠난다.
노노는 여행을 떠나기 전에 남자친구로부터 이별을 통보받기도 하지만 일자리도 잃게 되기도 한다. 갑자기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흔들려 버린 자신의 인생,왜 자신이 불감증이게 되었고 아버지는 그토록 자신들의 어린시절을 억압하며 살아왔던 것인지,감추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셋은 그렇게 흔들리는 현실에서 탈피하듯 아버지 고향인 사도로,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떠나면서 꼭 무언가 밝혀내고 말겠다는 굳은 다짐을 하지만 사도에서 만난 고모는 정말 여행에 관한 것만,그들을 여행자로만 대한다. 왜 안그렇겠는가 어린시절 헤어져서 그동안 못보고 살아왔고 서로 살기에 바쁘기도 했지만 '세월'이란 것이 모든 것을 '풍하작용'에 의해 흐려 놓고 말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나게 되는 진실과 여행자로 사도와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을 맘껏 줄긴 나머지 그들은 이곳에 온 목적도 잊을 정도로 건강한 영혼으로 거듭나 있다. 여행이 그들을 치유해 주기도 했지만 그동안 뿔뿔히 흩어져 있던 가족을 하나의 울타리 안으로 모아주는 유대감을 주기도 했다. 왜 지금까지 가족보다는 서로 개개인으로 존재했었는지,아버지의 엄격함 때문이었을까?
마이너스에 마이너스를 더하면 플러스가 되는 플러스 효과.
노노는 여행하며 생각을 한다. 아버지와 그는 마이너스였다. 늘 일이 잘 안되거나 불감증도 아버지 탓이라고 돌렸다. 아버지는 그의 삶에 마이너스였고 그녀 또한 아버지에게 마이너스였는데 여행을 하다보니 마이너스와 마이너스가 만나 플러스가 됐다. '플러스 효과'를 내어 그녀는 여행 오기전보다 한 뻠 더 성장을 하게 되었고 마음의 치유를 가지게 되었다. 그런가하면 늘 방황하듯 하던 오빠도 애인이 임신을 하게 되고 결혼을 하여 정착을 한다는 기쁜 소식,자신을 꾸미지 않고 연애를 멀리했던 하나도 바뀌었다. 그런가하면 엄마 또한 이제 삶에 활력소를 찾은듯 다시 예전의 엄마로 돌아가 있고 노노의 남자친구는 그녀와 함께 하기로 했다. 완벽한 사람이란 없다. 모두가 조금씩 모자라는 부분을 서로에게서 채워가며 살아가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무엇이 잘 안되면 '부모탓'이나 남의 탓으로 돌리고는 하는데 모든 것은 자신 안에 있다는 것. 아버지를 모두 받아 들인것은 아니지만 노노는 여행중에 아버지와 함께 '언젠가 파라솔 아래에서' 맥주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한번도 아버지와 가까이 그런 시간을 가지지 못하고 보내드렸다. 아쉬움이 묻어나는 제목이다.
노노의 불감증을 이야기 하기 위하여 초반부는 섹스에 대한 이야기들이 펼쳐져서 '아,뭘까?' 했는데 정말 옮긴이의 말처럼 읽어 나가다보면 그 또한 일련의 삶의 일부분이었고 피할 수 없는 그의 문제점이었기에 깊게 어필을 해야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노노의 불감증과 아버지의 성에 대한 엄격성과 할아버지 야스의 바람끼등은 모두 가족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간다. 그녀가 사도로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면 불감증에서 헤어나지 못하여 인생 또한 더 꼬여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를 이해하고 할아버지를 이해하고 인생을 좀더 멀리 내다보는 해안을 가지면서 그녀 자신의 인생 또한 그러안을 수 있게 되면서 모든 것은 봄눈처럼 사르르 녹게 된다. 대부분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보면 상처를 '가족'에게서 받는다. 가장 가깝고 늘 함께 하기 때문에 상처를 제일 많이 받게 되고 그것을 치유하지 않고 놓아 두기 때문에 상처의 골이 더 깊어져만 간다. 노노가 사도로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면 아버지에 대한 상처인 몸과 육체의 상처가 더 깊어졌을 터인데 다행이다.
'누구의 딸이건,어떤 피를 이어받았건, 젖건 젖지 않건, 오징어를 좋아하건 싫어하건, 사람은 똑같이 고독하고 인생은 진흙탕이다. 사랑하고 또 사랑해도 사랑받지 못하기도 하고, 받아들이고 또 받아들여도 받아들여지지 못하기도 하고,인생이란 원래 그런것이어서 생명이 있는 한 누구도 거기서 벗어날 수 없다.'
아버지가 첫사랑의 추억을 사도에 놓고 온 후 평생을 묻고 외롭고 엄격하게 살았듯이 그들 가족 또한 모두 남의 핑계를 대며 방황하고 외롭고 사랑을 외면하고 살아왔다. 불감증에 한사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부유하듯 부평초처럼 살아가는 노노와 가시가,그런가하면 사랑을 거부하며 살아왔던 하나, 우리도 그런 사람속에 끼지 않는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으로 받은 상처로 인해 그것을 풀기 보다는 상처의 골을 스스로 키우며 담을 쌓고 살아가는 사람들,그렇게 가족의 유대도 끊고 혼자 부유하며 살아간다면 그들이 나몰라라 내친 아버지의 정원처럼 삶은 잡초만 무성할 뿐일 것이다.잘못된 잡초는 뽑아내고 가꿀 수 있으면 가꾸어야 한다. 함께 치유할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고 현실의 문제와 담을 쌓고 살지는 말아야 함을 노노를 통해서 본다. 문제를 회피하는 것이 정답이 아니다. 부딪혀 담을 부서든가 아니면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그녀가 언젠가 파라솔 아래에서 애인이 되었건 아버지가 되었건 맥주를 마시고 싶어하는 그 순간,나 또한 아버지를 생각하며 나도 그렇게 못하고 보내 드렸음을,사소한 일조차 제대로 못하고 보내드렸음이 안타깝다. 산다는 것 별거 아닌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