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홀로 왔다가 혼자서 가는 길이다. 살아가는 동안에는 무한한 인연들과 어우러지면 살겠지만 마지막 가는 길은 누구와 함께 할 수 없는 것이 또한 인생이다. 생도 삶의 길이라면 죽음 또한 생의 한가지 길이다.어떤 생과사를 보았거나 그것을 받아 들여야 하는데 그것이 나의 이야기이고 내가 당해야 하는 이야기라면 슬픔은 무척이나 크다. 아니 받아 들일 수 없는 문제처럼 발목을 잡고 늘어진다. 그렇게 생과 사는 흘러가는 것 같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로 배운 것이 있다면 이제는 죽음도 생의 일부로 받아 들일 수 있다는 거다. 사랑하고 아끼고 죽을 때까지 그리고 그 죽음을 지켜보면서, 그 죽음까지 아름다운 작은 생의 일부로 받아 들여주면 된다.' 이 책은 화가 이경미의 성장에세이다. 가난한 삶에서 아버지 또한 그녀의 삶에 큰 획을 긋듯 험난한 길을 사셨다고 할 수도 있다.누구보다 화려한 직업의 변천사를 가지고 계시고 술만 드시면 술주정으로 가족 모두가 힘겨운 시간을 보냈던, 그렇게 하여 엄마의 빈자리도 한때는 느껴야 했던 그녀의 삶에서 지난 시간들은 모두 불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 시간들 속에서 그녀는 늘 혼자였다.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혼자가 아니였다는 것.아니 어쩌면 혼자였던 시간들이 오늘의 그녀를 만들어 놓지 않았을까 하는 삶의 아이러니함을 본다.
아버지의 고난한 삶 덕에 식구들 또한 쓰나미처럼 아버지의 삶에 흔들리며 살아야 했다. 한복을 만드셨던 엄마는 그녀를 어린 나이에 떼어 놓고 아버지를 벗어난 삶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아버지의 흔들림 때문에 고난한 엄마의 하루하루는 그녀를 늘 혼자 있게 했다. 그런 속에서 혼자의 시간에 늘 마주하는 자연이나 사물을 관찰하기 좋아했던 그녀,그런 그녀의 재주는 그때부터 싹트고 있었을 터인데 발견하고 키우기 보다는 하루라도 편안한 삶을 살기 위하여 바빴던 탓에 뒤돌아 볼 여유가 없었던 것.하지만 원석 속에 있는 보석은 언젠가는 빛나게 되어 있다.그런 그녀의 재주를 알아 보셨던 선생님 덕분에 그림에 발을 들여 놓게 되었고 지금의 인생의 길을 걷고 있는 그녀, 그녀의 삶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의 길이란. 부모님께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볼 수 없는 것이 술주정이 심했던 아버지의 직업 속에서도 그녀는 무언가 잠재된 것이 있었을 터이고 어머니의 한복집에서 또한 영향을 받을 터이고 그녀의 그런 고난한 삶의 시간들 속에서 늘 함께 하면서도 죽음이라는 끝을 보여 주었던 생명들이 있어 혼자이면서 혼자이지 않은 아직은 어우러져 살고 있는 삶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그녀의 그림속에 등장하는 고양이와 미국이라는 신세계와 그리고 어머니의 한복집을 하는 천의 느낌이 어느 그림에서 느끼지 못해던 신선함을 주면서도 많은 이야기를 던져 주고 있다. 길지 않은 삶을 뒤돌아 보며 에세이를 쓴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인듯 한데 많은 부분 차지하고 있는 부모님의 삶이 어쩌면 더 탄탄한 그녀의 미래로 나아가는 길의 가로등과 같은 역할을 해주는 것은 아닐까.분명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는 삶지만 그것이 밑거름이 되었기에 오늘날의 그녀를 만들어 냈다. 미워할 수도 없고 미워해서도 안되는 애증의 관계처럼 그녀의 삶의 등짝에 들러 붙어 있는 부모님의 삶, 무엇이든 있을 때는 그 진정한 가치를 알지 못하지만 떠나고 나면,내 곁에 없으면 그 존재의 진정한 가치를 알게 된다. 나 또한 아버지를 보내고나니 비로소 내게 아버지의 그림자가 얼마나 큰지를 느꼈다. 친정엄마 또한 아버지가 아픈 상태라도 그대로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할 수 있다면 좋았을텐데 하며 늘 아쉬움을 내보이신다. 그녀와 함께 하고 있는 고양이들, 혼자이면서 묘한 시선으로 그녀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고양이들이 이젠 그림 속에서 그녀가 되어 그녀의 인생을 말해주고 있는 듯 하다.
'한때는 하루하루 어찌 살아야 하나 싶을 만큼 긴 것 같았는데,지나보니 인생은 저 골목어귀 같더라. 멀리서 올 때는 너무 멀어 보였는데 어귀를 돌고 나니 골목은 금방 끝이더구나......' 어머니의 말씀처럼 인생도 어쩌면 그와 같을 것이다. 무척이나 긴 여정같지만 뒤돌아보면 금방이다.고난한 삶의 뒤돌아 보는 그녀에게도 아버지의 파란만장한 삶 또한 금방이고 아무 말씀없이 가셨기에 무척 긴 시간인듯 하지만 뒤돌아 보면 금방인 삶, 그속에 그녀 혼자인듯 했지만 늘 누군가 그리고 무엇인가가 함께 했다는,그랬기에 지금 그녀의 삶은 방향이 있는 현재진행형이 되지 않았을까? 달에 다녀온 다음엔 우린 어디로 갈 것인가? '어딘지 몰라도 그냥 가자! 내 마음이 가리키는 그곳으로 함께 가자!' 엄마와 딸의 화해와도 같은 대화가 뭉클하게 한다. 딸의 곁을 떠나서 미안했던 엄마,그런 시간 속에서 감수성을 발전시키고 더 일찍 발견했던 딸, 삶은 그렇게 칡넝쿨처럼 얼히고 설켜서 흘러가는가보다. 함께 말이다. 혼자이면서 혼자가 아닌 삶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