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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 - 펭귄 클래식 ㅣ 펭귄클래식 5
앙드레 지드 지음, 이혜원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을까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을까? 아님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행복할까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행복할까? 이 책은 십대때 도서관에서 읽고는 큰 충격을 받았던 작품이다. 사랑이란 '해피엔드'로 끝나야 달달하다고 생각하는 나이였고 이런 비련의 주인공이면 괜히 이목을 받으려고 하는 것처럼 껄끄럽고 무언가 긍정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다시 중학교를 거쳐 여고시절 다시 읽은 책은 좀더 폭넓은 사랑이 있구나,아니 이런 사랑을 선택한 알리사라는 인물이 궂이 왜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을까 라는 생각을 가져보게 했지만 세월이 지나고 나니 그 모든 이야기는 다 잊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라는 말만 기억에 남아 이 작품을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진정한 사랑이란 어떤 사랑일까? 아가페 사랑,정신적인 사랑 아니면 정신과 육체가 결합된 사랑.젊을 때에는 독신을 고집하던 사람들이 나이가 들고나면 자신이 젊어서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것을 정말 많이 봤다.또 그런 사람들이 주위에도 지금도 있다. 그렇다고 남녀가 결혼을 하여 모두 잘 사는 것은 아니다. 아니 함께 살고 있어도 모두가 행복한 것은 아니다. 행복한 사람도 분명히 있겠지만 자식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산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그렇다면 정말 어떤 사랑을 해야 행복한 것이고 완전한 사랑이 될까? 알리사와 제롬가 나눈 '정신적이면서도 종교적인 사랑' 이 행복일까,그것이 진정한 사랑일까?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고 힘쓴 알리사 그녀의 사랑이 결국 행복일까? 아니라고 본다. 결혼은 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이지만 해보고 후회하는 것이 더 낫다는 말이 있듯이 알리사와 제롬이 누군가 한사람 서둘러서 결혼을 했다면 둘은 운명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알리사와 그녀의 여동생 쥘리에트의 운명은 너무도 대조적이다. 제롬과 그들은 사촌이지만 알리사와 쥘리에트는 제롬을 좋아한다. 거기에 제롬과 알리사는 결혼을 할 것이라 모두들 생각을 하고 있고 당사자들 또한 약혼한 사이처럼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고 그런 상대로 모두는 알고 있다. 하지만 제롬의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마져 곧이어 돌아가시는 바람에 그의 의사결정권을 신속하게 처리해 줄 어른이 없어서 어쩌면 더욱 우유부단하게 둘 사이의 관계는 지속되지 않았을까.그런가 하면 알리사 또한 그녀의 엄마는 어떤 이유인지 집을 나간다. 장녀인 알리사는 그런 엄마의 가출이후 아버지는 물론 동생들에 대한 책임을 어깨에 떠 안고 있어서인지 선뜻 약혼이나 결혼에 나서지 않는다. 그러다 알게 된 사실,알리사는 동생인 쥘리에트가 먼저 결혼하기를 그것도 제롬과 함께 하길 원한다. 자신과 제롬이 사랑하는 사이이면서 동생과 제롬이 결혼하기를 원하는 알리사,하지만 쥘리에트 역시나 제롬과 결혼하기 보다는 아니 언니인 알리사와 제롬이 좋아하는 것을 알기에 그와 결혼을 원하는 남자의 손을 잡는다. 현실적인 결단을 내린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행복할 수 있을까. 사랑이 없는 결혼을 선택한 쥘리에트가 진정 결혼생활을 잘 해나갈까.
쥘리에트의 결혼 이후에도 그들은 서로의 사랑에 울타리를 하나씩 쳐 놓고 서로 침입하는 것을 어느 선까지만 허락하고 완전하게 허락을 하지 않는다. 아니 점점 더 굳건한 울타리를 만들어 간다. 그러면서도 서로에 대한 사랑을 갈망하면서도 놓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남에게 주지도 못하면서 전전긍긍하는 연인들처럼 그렇게 세월만 보내고 있다. 제롬은 그녀에게 안정되고 안전한 사랑을 주기 위하여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알리사는 그런 시간 속에서 점점 아버지에 대한 부담감을 안아야 하고 제롬을 사랑하면서도 제롬보다 더 종교적인 사랑에 매달린다. 어쩌면 자신의 제롬에 대한 사랑이 절박해서 더욱 기독교적인 사랑에 귀의하는지도 모른다.그녀가 쥘리에트처럼 집안에 대한 책임감이 없는 차녀였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런 알리사를 제롬이 좀더 용기와 패기가 있었다면 알리사와 결혼을 하여 그녀 곁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을 터인데 둘은 항상 한발 다가가면 한발 물러나듯 서로간의 거리만 재고 있다. 사랑을 가슴에 간직만 하고 현실에서 이루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어쩌면 현실 도피적인 면도 있다.
쥘리에트처럼 알리사가 결혼이라는 것을 그냥 선을 넘어 버렸다면 '좁은 문'이 아닌 모두가 들어가는 '넓은 문'으로 인생을 통과했더라면 그들의 인생은 모두 해피엔드가 되었을지 모른다.그녀도 쥘리에트처럼 행복한 삶을 살고 딸도 나아 제롬이 준 '자수정목걸이'를 딸에게 물려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어깨에 걸친 짐이 너무 무거웠다.그런 반면에 제롬에겐 알리사를 좀더 화끈하게 결혼까지 밀고 갈 힘이 없었다. 그들의 사랑에 모두가 방관자처럼 쳐다보고만 있었지 누군가 나서서 진행자가 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면에서 사랑앞에 모두가 죄인이다. '어디든지! 내게는 삶이라는 것이 하나의 긴 여행과도 같아.알리사와 함께 책과 사람들과 수많은 나라들을 여행하는... 너 '닻을 올리다'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적 있니?' 알리사보다 제롬은 어쩌면 좀더 자유분방함을 누리고 싶어했다.물론 알리사에게도 그런 맘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그녀는 그들을 버리고 떠난 '엄마'처럼 되고 싶지 않은 강박관념 같은 것이 자리하고 있었고 엄마가 떠난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고집이 있었을 것이다. 엄마가 떠나고 난 후 무능력자처럼 된 아버지도 지켜야했고 동생들도 지켜야했던 그녀는 이곳에 닻을 내린 것이다. 그러기에 그녀는 제롬의 곁에 있으면서도 그의 마음을 선뜻 따라가지 못하고 늘 정박한 배처럼 정착해 있으려고 한 것은 아닌지.
'알리사는 산호 목걸이를 목에 걸고 있던 참이었다.그녀는 고리를 채우려고 두 팔을 들고 고개를 수그린 채 문 쪽으로 등을 돌리고서 불 켜진 촛대 두 개 사이에 놓인 거울을 자기 어깨 너머로 들여다보고 있었다.그녀가 처음 나를 본 것은 거울 속에서였다.' 그 순간에 제롬이 다가가서 그 산호 목걸이의 걸어 주었더라면 그들의 결혼은,아니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제롬은 그런 그녀를 보고만 있었고 그녀는 거울로 그런 제롬을 보고는 산호 목걸이를 목에 걸려다 만다. 그들의 사랑의 앞날을 예견하기라도 하듯 목걸이는 그렇게 고리를 채우지 못한다. '좁은 문' 표지에 나와 있는 그림이 참 좋아서 더 이 책을 다시 읽고 싶었다. 이 대목의 그림이었다. 그순간 누군가 나서서 목걸이의 고리를 다시 채웠다면 정말 사랑이 이루어졌을까? 알리사가 기독교적인 사랑에 의지하여 자신의 상사병에 죽어가지 않고 제롬과 함께 하면서 쥘리에트처럼 행복한 미래를 만들지 않았을까. 편지로나 알리사의 일기로나 '심리묘사'가 섬세하게 되어 있다.하지만 글이란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글 밑에 숨어 있는 진정한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포장할 수도 있는 것이다. 글로 풀어낸 그녀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보다는 그녀와 진실된 대화로 서로의 마음을 풀었다면 알리사와 제롬의 인생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래서 대화가 필요한 것이다.예나지금이나. 마지막 순간까지 제롬에 대한 사랑을 붙잡고 싶었던 알리사,그녀의 사랑이 안타깝고 씁쓸하다. 사랑에는 좀더 용기가 필요함을 다시 느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