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석파란 - 제1회 황금펜 영상문학상 금상 수상작 ㅣ 황금펜 클럽 Goldpen Club Novel
류서재 지음 / 청어람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돌 사이에서 피는 난인 '석파란', 조선시대 난 그림으로 알아주는 이로 주로 흥선대원군을 꼽는다. 학창시절 그의 난그림을 보고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고 나 또한 잠시 몇개월 동양화를 배운다고 붓을 잡아 보았던 시절 난과 대나무를 그려 보았었는데 머리속에는 온통 흥선대원군의 묵란이 존재하고 내 그림은 시원치않았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묵란,쉬운듯 해도 자신이 스스로 그려 보면 정말 힘든,들숨도 날숨도 정말 어느 때에 쉬어야 옳을지 모를 정도로 숨을 참게 만드는 그런 자신과의 노력 덕분에 얻을 수 있는 것이 또한 묵란인듯 하다. 그 묵란의 대가다운 묵란 밑에 자신의 야심을 숨기고 시대를 내다보며 자신이 꿈을 키워 나갔던 이하응,고종의 아버지. 자신의 뜻을 이룰 기회는 없었지만 둘째 아들 재황이 강화도령 철종의 뒤를 이어 왕이 되면서 그야말로 자신의 숨겨 두었던 야심을 펼쳐나가는 왕의 아버지 흥선대원군. 이 소설은 고종이 왕이 되고 그가 어린 아들 대신 섭정을 하면서 왜 '쇄국정책'을 펼쳐 나가는지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
처음에 소개되는 묵란에는 바위가 없다. 그냥 난이 하나 둘 당당하게 자신의 의지를 펼치며 화선지 안에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완벽한 균형미를 발휘하며 그렇게 도도하고 고고하게 드러나 있다. 자신이 누구보다 도드라지면 많이 모여 있는 것보다는 홀로 아름다움을 발산하며 그렇게 고고함을 드러냄이 난에 더욱 어울릴 것이고 이하응 또한 왕족이었지만 벼슬도 없고 달리 힘이 될 수 있는 버팀목이나 그외 아무런 것들이 없다. 하지만 오백년 이씨 조선은 지금 강화도에서 나무나 하고 살던 강화도력을 왕으로 안쳐 놓았지만 왕을 이을 세손도 없거니와 철종 또한 위태위태하다. 그런 속에서 장남 재면과 둘째 재황 두 아들을 두고 있는 이하응은 장남은 집안에서 왕처럼 키운다. 그런가 하면 둘째는 장남과는 정반대로 키우는 이하응의 집에 어느 날 갑자기 총소리와 함께 총에 맞아 죽어가는 '최갑수'라는 인물이 들어오게 되고 노비가 그를 잘못하여 죽이게 됨으로 하여 이하응은 '동학' 이란 것을 접하게 된다.
그의 말처럼 지금 조선은 삼각관계에 놓인 것이다. 이씨 조선이 바탕을 두고 있는 성리학에 중국을 통해 들어온 '서학'과 최제우와 그외 인물들이 들고 일어난 '동학' 그렇게 삼각관계 속에서 세계 열강들이 자꾸만 조선을 넘본다. 그의 친구인 김병학은 안동 김씨 세력을 등에 지고 한양의 세도를 쥐락펴락하기도 하고 이하응을 이빨 빠진 호랑이 취급을 하며 알아주기도 않는다. 그런 속에서 이하응은 최제우를 만나 동학을 접하고 지방의 서원들이 한양에 왕이 존재하지만 지방에서는 왕처럼 군림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안동 김씨 세력들이 들끓는 가운데 자신 또한 친구 김병학에게 돼지 취급을 받으면서 그는 바위 사이에서 꿋꿋하게 자신의 도도함을 키우 나가는 '석파란' 을 그리며 혼돈의 시절을 이겨내고 있다.
민자영, 훗날 고종의 아내이며 명성황후가 되는 자영은 이하응의 아내 민씨를 통하여 이하응의 집에서 수양딸처럼 성장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어린 자영을 보며 그녀의 넘쳐나는 힘을 익히 보게 된 이하응은 그녀를 딸처럼 대한다. 이하응의 '묵란'을 누구보다 정확히 읽어낸 자영, 그녀는 김병학과 이하응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며 묵란이 어떻게 흔들리는 시대 속에서 그 역할을 하는지 제대로 보여 준다. 최제우 또한 이하응을 보는 순간에 그의 미래를 보았는가 하면 자영이 심부름하던 묵란을 김병학의 집에서 본 수녀 또한 그림 주인의 됨됨이를 알아 보았던 것이다. 숨 죽이고 있는 호랑이, 김병학은 호골주며 그외 호랑이에 관계된 것들로 자신의 힘을 나타내려 했지만 실제 호랑이와 같은 힘을 숨기고 있었던 것은 '이하응'이다. 그가 아들들을 어떻게 교육을 시켰으며 훗날 큰아들이 아닌 둘째가 왕이 되는,아니 그런 일까지 내다보고 있었다는 놀라운 통찰력이 또한 발휘 되기도 하는데 사랑방에 앉아 교교히 묵란을 치던 이하응은 묵란을 그리며 훗날 자신의 꿈을 담금질 한 것은 아닌지.
홀로 혹은 두어개로 그려지던 묵란은 뿌리를 드러낸 그림으로 그려지기도 하다가 시간이 흐르고 난 밑에는 '바위'가 그려진다. 땅에 의지하던 난은 땅보다 더 단단한 바위 사이에서 흐드러지게 피어 그 눈매가 매섭게 빛나며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이하응 그가 지금 그런 존재로 숨을 죽이고 있는 것처럼. 자신의 꿈을 잘못 드러내면 동학과 서학 성리학의 삼각관계와 안동 김씨의 세력이 판을 치는 곳에서 자신들의 삶 또한 어떻게 될지 모른다. 글의 처음에 등장하는 '조대비' 또한 안동 김씨 세력에 밀려 뒷방늙은이로 늙어 가고 있다. 자신의 능력을 발휘도 못해보고 시든 꽃이 되고 만 것이다. 하지만 아직 그 성정은 죽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에 철종이 죽고 왕위 계승에 큰 힘을 발휘하는 조대비,그녀에 의해 이하응의 둘째 아들이 왕위에 올라간 것이다. 친구이지만 늘 이하응을 개 돼지 취급을 했던 김병학,안동 김씨 세력을 등에 지고 쥐락펴락하며 자신의 위세를 떨치던 그와 이하응의 삶은 하루아침에 바뀐 것이다. 바위 사이에서 늘 숨 죽이고 언제 필까 세상을 지켜보던 석파란이 드디어 활짝,그 모습이 너무도 당당하게 핀 것이다.
왕손이면서 정치인이며 예술가였던 이하응, 정치인이 먼저 일까 예술인이 먼저일까? 자신의 야망은 크고 높았지만 그것을 드러내는 순간 꽃도 피지 못하고 뿌리채 뽑히고 말지도 모른다는 세상을 너무도 잘 읽고 그 야망을 '묵란' 밑에 숨겨 두고는 조용히 아니 미친놈 취급을 받아 가며 살아 남아야 했던 이하응은 어쩌면 진실로 그 시대에 미치지 않고 날카롭게 현세를 읽을 줄 알았던 인물임에 분명하다. 한 번 붓을 들여 펼히며 난 하나를 그리듯 남자의 기세 또한 높았던 인물이며 그가 쇄국정책을 펼쳐야만 했던 이유는 '조선' 조선을 지키기 위하여,지금까지의 조선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하여 그가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그려진다. 김병학은 난세에 대처하기 위하여 일본의 '총'을 가지고 집안에서 '왕'을 노릇을 했지만 이하응은 '은장도'를 가지고도 그 밑에는 누구보다 강인한,호랑이보다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달도 차면 기울기 마련이다. 오르막길이 때에는 오르는 일만 생각하면 되는데 권력의 정점에서는 내리막길을 생각해야 한다. 완벽하면 어딘가 균열을 생각하고 행복하면 멀리 숨어 있는 불행이 두려웠다.' '나는 조선의 사대부들과 싸우는게 아니오. 나는 내 몸의 이상理想과 싸우는 중이오.' 자신의 이상과 싸워 그 이상을 이루어낸 이하응,묵란을 통하여 그의 삶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는 소설이다. 어찌보면 한 편의 대하드라마를 보는 듯 하기도 한 '석파란' 을 통해 이하응을 다시 들여다보기 할 수 있는 기회이며 여러 인물들을 통해 서로 다른이상과 삶 속에서 역사의 한 단면을 재밌게 볼 수 있다. '내가 조선의 법이니라... 이제부터 쇄국이다' 그 한마디를 꾹꾹 눌러 묵란에 담아 숨겨야 했던 이하응, 글을 통해 그의 묵란을 다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