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무사 이성계 - 운명을 바꾼 단 하루의 전쟁
서권 지음 / 다산책방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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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이라는 나이가 내가 그 나이에 접하지 않았을 때에는 별 감흥이 없었는데 내 나이 마흔이 지나고나니 왠지 모르게 '마흔'에 관계한 것들이 쏟아져 나오는 듯 하다.그만큼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는 나이, 지금까지 살아온 과거와는 다른 미래를 살아야 하고 인생의 반환점을 돌고 있는 나이라 더욱 그럴 것이다. 마흔 여섯의 이성계,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 건국의 태조 이성계가 아니라 변방의 일개 무사로 그리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던 일개 시골무사에 불과했다. 그런 그에게 일생일대 중대한 싸움인 왜적과의 '황산에서 만나게 되었다.'황산대첩' 그는 황산싸움에서 크게 승리를 하여 개혁도 혁명도 그리고 자신의 꿈도 이루게 된다.

 

황산이란 어떤 곳일까? 언젠가 피티에서 본 '황산'은 그곳이 큰 싸움이 벌어졌던 격전지라고는 생각 못할 정도로 야산과 벌판으로 이어진 곳이었다. 그때는 황산대첩에 관하여 별 감흥없이 보게 되었다. 하지만 다큐를 좇아 가면서 그런 곳에서 큰 싸움이있었다니 언젠가 한번 그 지역을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져보기도 했다. 14세기 후반에 왜구는 오백여척의 대선단을 이끌고 지금의 금강 어귀로 침입을 하여 삼남지역에 걸쳐 갖은 노략질을 일삼은 듯 하다. 그렇게 하여 이성계가 왜구 토벌에 나서게 되는데 왜구는 우리의 평범한 민초들을 납치하여 그들의 노예로 부리다 군사로 이끌고 오기도 하고 간자로 이용하기도 한 듯 하다. 이성계 또한 북방의 이민족들이 그와 함께 하면서 귀화를 하기도 하여 그와 힘을 합해 싸움에 임하기도 한 듯 한데 민족간 마찰이 있었음을,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박쥐처럼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이중적 인물들이 나오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신을 굽히지 않고 자신을 따르는 무리를 이끌고 왜구를 토벌하려고 힘썼던 이성계,그의 곁에는 정도전과 정몽주가 함께 했다.

 

이성계,그가 좀더 조정에서 알아 주는 인물이었다면 체찰사나 그외 장수들과  별일 없이 수장으로 본분을 다하겠지만 체찰사와 함께 하며 갈등을 빚는 가운데도 그의 인간됨과 수장으로의 역할에 막힘없이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의 뒤에서서 그를 지지했지만 그렇지 못한 아군도 적군도 아닌 사람들 또한 그에게는 적군과 같은 의미가 아니었을까.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듯이 '승리'만이 존재하는 전쟁터인 싸움터에서 수장이 둘이라면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까. 전장터에서 오래도록 경험과 노하우가 있어도 그의 승진에서 늘 물먹었던 그를 조정의 힘만으로 밀어부치려는 사람들과 어깨를 겨루며 당장 눈 앞에서 벌어지는 싸움에서 승리를 거머쥐기란 쉽지 않았을 듯 하다. 순간에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그곳에서 말이다. '마흔 여섯 살,그도 어느덧 나이가 들어버렸다. 동북면 변방에서만 활을 쏘며 지내다가 인생을 거의 다 소진했다. 시골무장,물정 모르는 변방의 늙다리,화살 하나 들고 설치는 천둥벌거숭이...... 중앙군과 관리들은 그를 그렇게 멸시했다.' 지금까지 변방에서 천둥벌거숭이처럼 자신을 든든히 받쳐줄 힘 하나 없이 살았으니 전장에서 또한 그의 맑이 먹혀들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역량을 믿고 따르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아직 그에게 운이 있다는 것이다.

 

이성계가 이 싸움에서 이겨야 하는 이유가 분명하다면 왜구의 수장으로 온 '아지발도' 또한 뜻이 분명하다. '우리는 개경을 부수고 고려를 차지할 것이다. 몽골의 속국 고려를 우리가 해방시킨다. 고려는 우리 땅이다. 여기에서 수십 만 남조군을 만들어 오만한 북조군을 칠 것이다. 남북조의 통일,그것이 우리가 고려에 온 목적이다.' 자신들의 아내는 물론 어린 자식이며 가족을 모두 죽이고 배에 오른 왜구들 또한 이 싸움에서 이겨야만 북으로 알라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땅을 저희땅으로 착각하는 것은 똑같은 듯. 만삭의 조선인 아내를 죽이고 이 싸움에 오게 된 아지발도 그의 곁에는 그가 스승으로 모시고 있는 슈겐부츠라는 인물이 그의 눈과 귀가 되어 주고 있다. 그도 또한 고려군 속에 간자를 넣어 염탐을 하기도 하고 간인을 넣어 자신들을 거짓된 정보를 흘리기도 한다. 서로가 서로를 속이면서 진실이 무엇인지 감추고 오로지 싸움에서 '승리'를 하면서 고려인들은 이 땅을 지키려 했고 왜구는 이 땅을 쳐서 자신들의 것으로 한 뒤 북으로 올라가려는 속셈을 숨기고 있었다. 그들이 가슴에 간직하고 있는 '정복과 부흥'은 이성계가 품고 있는 '혁명과 개혁' 에 맞부딪혀 황산벌을 피로 물들인 것이다.

 

아지발도는 변방에서 굴러 다니던 늙다구리 이성계를 무시하듯 했지만 싸우면 싸울수록 그의 진면목을 보게 되었다. '저자는 생각한 것보다도 더 노회하구나.어떻게 대로를 뚫고 그대로 밀고 올 생각을 했지? 요동벌을 쳤다는 것이 소문만은 아니었던 모양이야. 적은 숫자인데도 군사를 정밀하게 집약시키는 능력이 놀라워. 저자가 비록 비루한 종2품 하급 벼슬아치라는데,아직까지 밑바닥에서 뒹굴고 있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군.' 왜구의 수에 비하면 이성계가 이끄는 수는 너무도 적었다. 그렇지만 그들이 가족을 죽이면서 배수진을 치고 들어왔다면 우리 또한 우리땅을 지켜야 하고 모두의 목숨을 지켜야 하는 하나된 이유가 있다. 우리 땅을 자신들의 앞마당인듯 쳐들어온 왜구를 그냥 놔둔다면 앞으로 더욱 이땅에서 날뛸 것이다.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대체, 몇을 죽여야.형제들을 얼마나 죽어야 이따위 더러운 잔혹이 끝장이 날까.미안하구나 커르차,커르차......' 이성계는 계란으로 바위치기와 같은 싸움에서 죽어 나가는 그의 형제와 같은 장수들과 민초들의 죽음에 침울해졌지만 이 싸움은 기필코 이겨야 한다.

 

'전쟁은 이유를 따지지 않는 법입니다. 살기 위해,자존을 위해,그도 아니면 명예를 위해 나서는 게 전쟁이올시다. 인간은 오로지 전쟁을 위해 살아갑니다.다만 크기가 크거나 작거나 할 따름이지요.' 인생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전쟁'이다.내가 살아 남기 위해서는 남을 이겨야만 한다. 그렇다면 마흔 여섯의 이성계에게는 이 싸움의 의미는 무엇일까? 고려는 기울기 시작하고 있고 그는 힘도 없는 변방의 비루한 벼슬아치일 뿐이다. 그는 명예를 위해서라기 보다는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정말 비루한 민초들을 위해서라도,그들의 영혼을 달래 줄 '풍등'을 만들어서라도 이 싸움을 이겨야만 한다. 왜구의 발길에 무참히 죽어간 수 많은 민초들의 넋을 달래 줄 길은 '가자,세상은 우리가 구한다' 그랬다. 그가 왜구의 발에 밟혀 죽어가는 세상을 구해서는 그가 나서야만 했다. 조정의 힘을 등에 업은 관리가 아닌 변방에서 '싸움의 기술'을 익힌 그가 나서서 이 싸움을 종결지어야만 했다.

 

이성계, 그의 노련함에 젊음의 뜨겁고 폭발하는 듯한 힘을 가지고 있던 아지발도는 적수가 되지 못했던 것이다. 무릇 승리는 그가 혼자서 일구어낼 수 없는 큰 영광이었지만 오합지졸과 같은 무리들을 잘 이끌어 낸 수장으로 그의 그릇이 그만큼 준비되기도 했을 터이다. 한 편의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듯한 '전쟁'이 바쁘게 투잡을 하던 작가의 손에서 사실감 있게 그려질 수 있었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고 이 소설을 내려 놓고 홀연히 세상을 등졌다는 것이 못내 아쉽고 안타깝다. 작가 또한 마흔 여섯, 이성계는 다른 세상을 이룩하고 열었다면 작가 또한 작가로 확고한 입지를 굳힐 그런 미래가 코 앞이었을 터인데 아쉽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을 또한 선택하여 읽게 되었다. 나 또한 그 나이에 이르러 '인생이란 무얼까? 앞으로 어떤 생을 살아야 할까?' 라는 질문을 하게 되는데 마흔 여섯이라는 전환점에 '황산대첩'을 마주하게 된 이성계와 작가 그리고 독자의 나,인생 또한 전장터이다. 자존을 위해서는 좋은 전략도 필요하고 자신의 마음을 알아 주는 동지도 필요하고 그리고 '꿈' 또한 필요하다는 것을 또 한번 느낀다. 이성계는 건국을 꿈 꾸었다면 작가는 작가라는 꿈을 꾸어서 동분서주 했을 터이고 그렇다면 '나'는 지금 무슨 꿈을 꾸고 있는가? 그대는 지금 무슨 꿈을 꾸며 이 책을 읽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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