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부터 죽음까지 이어지는 정말 짧고도 강한 '제이' 삶 속에서 그가 들려주려 했던 것은 무엇일까? 십대 엄마의 몸에서 그것도 대형마트의 화장실에서 태어나야 했던 운명,죽음에 이르기 전에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엄마가 바뀐,아니 그는 엄마를 찾아보려고도 하지 않았지만 소설 속에서 제이의 엄마는 그를 찾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를 낳았다는 그 자체로,그가 울음을 터뜨리며 살았다는 증거의 소리를 내 지르는 것만으로도 공포에 떨며 그녀 또한 아기와 함께 소리를 지르던 엄마,엄마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혼자살면서 작은 토스트가게를 하던 여자의 손에 의해 그리고 손맛이 좋은 그녀가 룸살롱의 주방에서 음식을 하면서 그는 어린시절 생의 무대가 보지 말아야 할 것들을 미리 학습하듯 너무 일찍 조숙해지는 그런 환경의 영향을 받으며 자랐다.
양엄마가 그가 세들어 살던 집에 또 한명의 '나' 라고 불리는 동규는 스스로 말을 잃어버리듯 입을 닫아 버린 아이였지만 그에게 전부는 제이이듯 둘은 서로의 말과 마음을 읽어가며 그렇게 자랐고 동규가 말을 찾으면서도 왠지 모르게 제이가 하는 말이 자신의 말처럼 여기게 되었지만 나 역시나 그리 좋은 환경이 아닌, 아버지와 엄마의 이혼과 아버지의 재혼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부모들의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야 하는 그야말로 흔들리는 가정이었기에 양엄마가 떠난 재개발의 빈집에서 혹은 거리에서 홀로 살아가는 제이의 삶을 은근히 동경하듯 하던 나,급기야 제이의 삶처럼 물들어 가는 십대, 집을 나와 거리에서 생활을 하게 되면 그들 스스로 어른이 된 것처럼 무언가 어른의 행세하도 하며 살게 되고 싶은 것처럼 어른의 하는 모든 것들을 따라하듯 방탕하고 문란한,그야말로 난장과 같은 원조교제및 섹스 그리고 술과 폭주족이 되어 살아가는 어른도 아니면서 어른처럼 되고자하는 어린아이나 마찬가지인 그들의 삶을 제의 삶을 통해 조명해 보고 있다.
가정이 무너지면 그만큼 비행 청소년이 더 많이 생겨나는 듯 하다. 동규도 제이도 목란도 그렇고 다른 소년과 소녀들의 가정을 들여다보면 온전한 가정이 없다. 어른들의 삶이 무너지고 그 밑에서 함께 사는 청소년들의 삶이 자연히 무너져 내린다.인간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 동물인데 그들이 보고 배우고 자라야 하는 환경이 그야말로 '시궁창' 같다. 그런 속에서 그들이 배울 수 있는 '미래'라는 것은 존재할까. 결코 화장실에서 태어났다고 그런 거리의 노숙자와 같은 삶을 살게 되리라고,그런 삶이 운명처럼 정해졌다고는 볼 수 없겠지만 양엄마가 술만 마시면 해주던 자신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지만 그는 누군가의 소리를 듣듯 자신의 과거의 소리를 듣기도 하고 점점 거리를 누비며 살아가는 도둑고양이처럼 주위를 살피고 관찰하며 남보다 뛰어난 '무언가 소리'에 저 집중하는 그런 능력을 가지게 된다.
십대란 한참 자신이 '포장'되는 것을 좋아한다. 비록 자신의 뿌리는 자신이 원하지 않았던,남의 둥지에 탁란을 하는 뻐꾸기보다 못한 그런 비루한 과거를 가지게 되었지만 이제부터 하나 하나 자신이 만들고 정복하고 쓰레기 같은 삶을 정리해 나가 우두머리가 된다면,아니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만다' 라는 말처럼 자신에게는 그런 삶과 길이 예견되어 있던 것이나 마찬가지라 믿게 된다.십대들의 방탕과 난장과 같은 삶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 그 또한 그런 삶에 물들어 빠져 나올 수 없는, 그 세계에서 중심이 되어 가는 '제이' 의 삶. 스스로 택한 대장이 아니었지만 어쩌면 자신의 탄생부터 자신의 현재의 모습은 미리 길이 놓여져 있던 것 같다. '요요를 가지고 노는 것하고 비슷해.길이 스쿠터의 영혼 안으로 들어왔다가 다시 나가는 거야. 우리는 길 '위'를 달리는 게 아니라 길을 감아들였다 다시 놓아주는 거라고 할 수 있어. 길은 우리 밖이 아니라 내부에 있어.' '뛰지마.네가 이 우주의 중심이야.'
제이는 어쩌면 길에서 태어나 길에서 생을 마감한 그런 아이지만 그의 삶은 짧으면서도 모두에게 강한 흔적을 남겨 놓고 갔다. 나라는 시선에서 바라 본 '제이' 라는 인물과 진샘이 바라 본 그리고 목란이 보고 박경위가 본 제이의 삶, 그 십대의 소리를 저자는 들려주려고 노력한 듯 보인다. 그들이 왜 거리로 나가야만 했는지,그들이 왜 어른행세를 하며 어른의 어두운 삶 일부분을 따라하며 그들이 폭주족이 되어야만 하는지에 대하여 묻고 있는 듯 하다. 그들을 길 위로 집 밖으로 내 몬것은 어쩌면 모두가 '어른'들의 탓일지 모른다. 가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한 생명의 탄생부터 소중하게 지켰어야 하는데 생명의 소중함은 커녕 자신의 유희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는 어른들의 세상을 꼬집고 있는지도 모른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 제이가 늘 듣던 소리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누구의 소리를 들어가며 행동하고 생활하고 그리고 죽어간 것일까? 그를 태어나게 한 것도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도 모두 '우리'의 책임이다. 좀더 그들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는데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내버려 둔다. 튜닝된 오토바이로 밤거리를 누비는 폭주족들,그들은 아이들과 같다고 어리다고 표현했다. 그들의 속은 '악' 이 자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성선설을 바탕으로 하듯 그들의 본바탕은 선하고 어리다는 것이다. 그런 아이들이 어둠의 세계로 빠져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어쩌면 제이의 삶을 보여주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내겐 아직 '김영하'라는 작가는 낯설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라는 작품에서도 낯설었지만 이번 작품도 낯설다,좀더 작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듯 하여 다른 작품들을 섭렵해 봐야겠다. 그리고 좀더 십대들에게 따듯한 시선을 가져야겠다는,사춘기 울집 딸들부터 따듯한 시선으로 따듯한 마음으로 안아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