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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소설 읽는 노인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23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평점 :
1989년 세폴베다는 살해당한 환경 운동가 치코 멘데스에게 바치는 소설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을 발표했다.원주민들이 사는 아마존 정글에 '양키'들이 금을 찾아 들어오거나 야생동물을 마구잡이로 노획하려고 들어와 원주민을 쫒아 내기도 하지만 정글이 무참히 파괴되기도 한다. 그런 속에서 원주민들은 양키들에게 자신들의 터전을 내어 주고 떠나가고 정글은 그런 양키들에게 해를 가하게 된다,아니 정글의 동물이 인간의 피맛을 보고는 인간에게 복수를 한다. 인간과 자연이 공생하는 길은 없는 것일까?
지구의 허파라고 하는 '아마존' 그 아마존이 인간에 의해 점점 파괴되고 있다. 정글은 아직 인간에게 다 정복된 것도 아니고 인간이 모르는 것들이 정말 무긍무진하다고,세계 신약회사의 연구진들은 아마존에 다 몰려 있을 정도로 아마존은 인간이 정복하고자 하는 무한의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더욱 인간에 의해 파괴되고 있고 정복당하고 있는 것 같다.하지만 그런 정글과 함께 공생을 하는 원주민들이 있는가 하면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덤벼 들어 기생을 하고자 이들도 있다. 지켜야 할 것은 지켜나가야지 자신이 살 수 있는 길이란 것을 우린 가끔 잊고 산다. 그런 이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소설이다.그런 아마존에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프로아뇨라는 정글을 잘 알면서 자신이 글을 쓸 줄을 모르지만 글을 읽을 줄 아는 노인이 있다. 그의 꿈은 자신의 오두막에서 연애 소설을 읽는 것,얼마나 멋진 꿈인가. 하지만 정글도 주위 사람들도 그를 가만히 놓아두지 않는다. 그런 그가 정글로 향하게 되는데 왜 무엇 때문일까.
'처음에 길을 잘못 들어서면 끝까지 헤매는 곳이 밀림이라오'
정글에는 주기적으로 오는 욕쟁이 치과의사가 있다. 그는 사람들의 썩은 이를 뽑아 주는데 그야말로 입을 열면 시원스런 욕이다. 그런 그가 안토니오 노인에게 연애 소설을 가져다 주게 된다. 왜, 그가 다른 책보다 연애 소설이 자신에게 맞는 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애 소설에 집중할 수가 없다. 어느 날 노랑머리 '양키' 한사람이 죽어서 발견되었다. 그는 어린 살쾡이의 새끼를 죽이고 그 가죽을 얻었는가보다. 그의 행동에 암살쾡이는 도리어 인간에게 복수를 하게 된다.인간의 피냄새를 맡은 것이다. 하지만 안토니오 노인만큼 정글과 동물과 자연을 잘 아는 사람은 드물다. 노인은 수아르 족에게 정글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웠기 때문에 정글을 읽을 수 있고 섣불리 자연을 건드리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정말 오두막에서 글자들을 음미하면서 연애 소설을 읽는 것이 낙이라면 낙이다. '그는 한 음절 한 음절을 음식 맛보듯 음미한 뒤에 그것들을 모아서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읽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단어가 만들어지면 그것을 반복해서 읽었고,역시 그런 식으로 문장이 만들어지면 그것을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다. 이렇듯 그는 반복과 반복을 통해서 그 글에 형상화된 생각과 감정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가 글자를 알아 가는 것처럼 정글 또한 그는 그렇게 자신의 것으로 익혔다. 하지만 양키들은 정글을 너무 가볍게 여긴다.
'낮에는 인간과 밀림이 별개로 존재하지만 밤에는 인간이 곧 밀림이다'
암살쾡이의 복수는 노랑머리 한사람이 아니라 점점 마을을 향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피해자가 된다. 정글도 모르고 자연도 모르고 오르지 '국가' 가 '나'인 뚱뚱보 읍장은 권력만 내세우며 사건을 해결하려고 하지만 연륜이 묻어나는 안토니오 노인 앞에서는 안된다. 자연은 돈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경험과 어쩌면 자신의 이기심을 버리는 마음을 비우는 일에서 더 가깝게 되고 하나가 되는지도 모른다. 양키들의 총을 가지고 정글에 들어가지만 수아르 인들은 총이 아닌 입으로 불어서 맞추는 '독화살'로 죽여야 영혼이 자유롭다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안토니오 노인도 어쩌다 보니 양키의 총을 소지하게 되었고 그 총으로 마지막에는 궁지에 몰린 암살쾡이를 쏘아 죽게 만든다. 사건 전반에 걸쳐 노인은 어떤 명탐정보다 냉철하고 명석함을 드러내며 불려 다니게 되고 급기야 정글에 혼자 남겨지며 복수심에 불타고 있는 암살쾡이를 죽여야 하지만 그는 어린 새끼를 잃고 숫놈마져 잃은 암살쾡이를 결코 미워할 수 없다. 그리고 그는 수아르인들이 가르쳐 준 독화살이 아닌 양키들의 총으로 살쾡이를 죽였기에 자신 또한 그 영혼을 자유롭지 못하게 했다고 믿게 된다.
소설의 분량은 길지 않은데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경고, 자연과 공생하려면 어느 정도 자연을 보호하고 인간이 지켜야 함을 말하기도 하지만 무조건 적으로 문명화된 이기와 문화가 최고라 아니라 아무리 원시적이고 무가치해 보여도 그 속에는 반듯이 배울 것이 있는 자연이고 정글임을 그리고 파괴되어서는 안되는,자연이 도리어 인간에게 해를 입힐 수도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원주민도 아니고 그렇다고 문명화된 사회의 문화인도 아닌 그야말로 '경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안토니오 노인은 얼마전에 읽은 <노인과 바다>의 안토니오 노인과 닮아 있는 듯 하면서도 약간은 다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연애 소설이 늘 '해피엔딩' 만 있는 것도 아니고 슬픔과 기쁨이 교차하듯이 어쩌면 무한대의 상상을 할 수 있는 것이 '연애소설' 일 것이다. 그런가 하면 정글 또한 그런것 아닐까.정글인 자연을 파괴하고 정복하기 보다는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니 공생을 하며 살아가는 법을 그리고 더이상 파괴하지 말고 지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