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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홍 - 彩虹 : 무지개 ㅣ 김별아 조선 여인 3부작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역사는 사랑을 기록하지 않아요. 아니,애초에 못하지요. 그래서 사랑은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 기억되는 것입니다.' 역사에서 지워진 여인,이름도 없고 시호도 없이 그녀가 한때 지녔던 '순빈' 이라는 품계가 그녀를 부를 수 있는 호칭의 전부라니.조선의 역사에서 얼마나 많은 여인들이 스러져갔을까. 격식,절차,의례,명분,도리... 등의 이름뒤에 자신의 삶을 버려야 했던 여인들이 얼마나 많은까? 순빈 또한 그런 역사의 몽둥이에 자신의 날개를 한번도 펼쳐보지 못하고 그저 파닥이가 죽어간 것은 아닌지,읽기 전에는 무얼까? 하던 것이 읽고 난 후의 느낌은 정말 씁쓸하면서 가슴의 깊은 날카로운 비수에 깊게 찔린 것처럼 아프다. 꽃 한송이가 활짝 피어보지도 못하고 몽오리에서 그만 누군가에 의해 '똑' 떨어져 버린것어럼 이 슬품은 무엇일까? 왜 그녀는 '위험한 사랑'을 선택해야만 했을까?
평범하게 살 던 그녀,아니 평범함이라기 보다는 자유롭게 살던 난은 구중궁궐에 갇혀 지아비인 세자의 발길조차 뜸한 궁에서 홀로 젊음을 뒤로 한채 시들어가야만 했을까. 누구보다 빼어나고 누구보다 사랑받을 자격을 가지고 태어난 그녀가 왜 유독 세자의 눈에서 멀어진 것일까? 세자는 그야말로 할 일이 많아서 그녀를 멀리 했을까. 그렇다면 왜 그녀가 아닌 다른 후궁의 처소에는 들러 봉빈과 눈지 못하는 그런 남녀의 사랑을 한 것일까? 정말 그녀에게는 사랑할만한 터럭만큼의 요인 한가지도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아니 그녀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었을까? 아마도 그녀에게도 문제가 있었을테지만 세자에게도 분명 문제가 있지 않았을까한다. 부부간의 문제는 양쪽 모두의 이야기를 들어봐야지만 그 깊은 속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어느 한 쪽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한쪽편만 들 수 있는 것이 부부사이 문제이고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고 하지만 칼에는 흔적이 남지 않지만 물에는 흔적이 남을 수 있다. 세자에게는 아무 문제없이 지나간 '사랑'이 왜 유독 사랑을 받고 훼임을 해야만 했던 세자빈 봉빈만 질타를 받아야 했을지.
'아름다운 것이 그녀의 죄일 리 없으나 아름다움 때문에 외면당하는 것도 그녀의 운명이었다.' 첫번째 세자빈을 폐하고 맞이한 두번째 세자빈 '봉빈'마져도 세자의 맘에 들지 않았던 것일까,아님 정말 해야할 업무가 많고 효심이 지극하여 그녀를 멀리한 것일까.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만큼 사랑을 받지 못하고 시들어가야만 했던 난, 혼자서 향기를 품고 있어도 그 향기를 맡아 줄 이가 없다면 그 꽃은 꽃의 매력을 잃은 것이다. 가끔 부모의 충고가 있어야 책임하에 찾아오는 세자,그런 세자에게서 무엇을 바랄 수 있으리요. 그런 사랑의 기울어짐을 침선으로 달래보려 해도 하루 이틀이고 또한 자신에게서 있어야 할 훼임소식도 아니 후궁보다 더욱 많이 찾아야할 봉빈을 무시하듯 하는 세자의 마음은 이미 기울어진 달처럼 지고 있다. 그녀가 의지하던 친정의 오라비와 아버지,그 아버지마져도 곁을 떠나시고 더욱 자신의 사랑의 길을 찾지 못하고 외로움에 방황하던 그녀의 눈에 들어 온 것은 소쌍,그리고 그들은 외로움을 달래듯 서로의 갈 길을 찾은 듯 서로를 탐했다,아니 중독되어갔다. '구리거울이 아니라 마음의 거울을 들여다보라고 했으렸다? 내 마음... 마음을 비추는 거울을?!..'
'그녀는 다만 살고 싶었을 뿐이다.'
구중궁굴에 갇혀 자신을 찾지 않는 세자를 기다리는 일도 하루 이틀, 마음의 방황을 잠재우지 못하던 봉빈은 그야말로 살 길을 찾아야 했다. 그것이 '소쌍' 이었다. 남녀의 사랑이 아닌 '여인과 여인의 사랑' 세자빈이기에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두의 눈이 되고 귀가 되고 벽에도 귀가 있듯 그녀의 말은 세어나가 그녀 자신으로 존재할 수 없었다. 그런 곳에서 남편인 세자마져 그녀를 등졌는데 그녀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마음'을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물에 빠져서 허어적 거릴 때 남편이란 사람은 나몰라라 하면서 지나쳐 가기만 할 뿐이고 스스로 지푸라기를 잡아서 살아야 했던 그녀가 선택한 것은 격식도 명분도 도리도 아닌 그저 마음이 동하는 사랑이었다. '마음, 정녕 어디에 있는 알 숭 벗는, 살 수도 팔 수도 없는 그것!' 젊은 나이에 미치지 않고 술로도 달래는 것에는 한계를 느꼈던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살 수 있는 길'은 '여인을 사랑하는 것' 아니 '사랑하고나니 여인이었다' 말은 정말 처참하고 처절하다. 어떻게 세자는 그녀를 그토록 홀로 내버려 둘 수 있었을까? 난 여자이기에 여자 편을 드는 것 보다는 그 마음을 이해하기에 남자를 벌하고 싶다.정녕 그녀를 내처야만 했을까.
'그의 따듯한 사랑을 담뿍 받았던 고명딸은 지금 춥다. 아무리 톡톡한 비단옷을 지어 입어도 뼛골까지 가득 찬 냉기로 한봄에도 한겨울을 산다.' 그녀가 세자빈으로 간택이 안되고 만약에 평범한 지아비를 만나 평범한 삶을 살았다면 그때도 그녀가 '여인과의 사랑'을 선택했을까? 오라비들과 아버지 그늘 밑에서는 밝고 자유롭고 누구보다 아름다웠던 그녀가 세자빈으로 선택되는 순간 그녀의 운명은 하향곡선을 그리며 지독히도 빠르게 낙하하고 말았다. 흔히들 '여자 팔자는 뒤웅박팔자'라고 하듯이 결혼을 하고 남편을 만나면서 그야말로 삶이 어떻게 변화할지 모르는 것이 여인의 삶이거늘,자유롭던 것이 모든 것이 격식과 명분을 따지고 도리를 따져가며 자유를 억압받고 오로지 한 명 믿을 수 있는 내 편인 남편마져 멀리한다면 그 삶은 어떨까? 세자빈으로 간택된 순간부터 그녀의 삶은 '낙화'가 되고 말았다. 혼자서 그 모든 시간을 이겨내기란 정말 슬프고 가슴이 저릿저릿 후벼파는 그 아픔에 몸부림치며 스스로 안에서부터 죽어가지 않았을까.
'사랑은 독이다. 사랑을 할 때는 마비되어 황홀하지만 정작 그 독력은 사랑이 끝난 뒤에 발휘된다.' 사랑의 지독한 독에 중독된 여인,아니 사랑의 그 진실을 맛보기도 전에 중독되어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죽어간 여인같다. 그녀를 죽게 한 것은 그녀 스스로가 아니라 모두의 잘못이다. 세자도 역사도 격식도 명분도 모두가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간 원인이다. 사랑보다는 절개를 더 중시하고 인지상정보다는 더 중한 것이 명분이고 격식이고 시부모에 대한 도리인 사회에서 사랑은 철저하게 통제를 받았지만 더욱이 여인의 삶보다는,아니 개인의 삶보다는 격식이 더 중히 여기는 구중궁궐에서 살고자,아니 살아나가고자 발버둥쳤던 여인의 흔적조차 사라졌다는 것이 씁쓸하다. 한 줄 역사에서 화려한 '무지개'로 부활한 난의 삶, 역사 속에서 다 피지 못하고 낙화한 그녀의 삶이 소설속에서 처절하게 피어났지만 가슴이 아리다. 비단 이런 삶은 역사 속뿐만이 아니라 지금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는 또 다른 그녀도 있을지 모른다. 그녀들의 꿈이 더이상 낙화하지 않고 비상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