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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을 다시 뛰게 할 잊혀진 질문 - 절망의 한복판에서 부르는 차동엽 신부의 생의 찬가
차동엽 지음 / 명진출판사 / 201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잊혀진 질문>,故 이병철 회장이 1987년 타계 하기 전에 가까이 지내던 신부님께 남긴 인생의 절실한 질문들에 대한 답변이라 하지만 질문들을 읽어보다보니 누구나 인생에 한번쯤 갖게 되는 질문들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다다라서라면 더욱 '절실하게' 정말 절실하게 느껴질 질문들인 듯 하다. 이 책은 딸이 만성비염과 코연골이 휘어져 오랫동안 고생을 하다가 드디어 새출발을 하기 직전에 수술을 결심하게 되었고 정말 수술에 들어가는 그 순간까지 읽게 되었던 책이니 나 또한 인생의 종착역이 아닌 그 심정을 너무도 절실하게 느끼며 읽게 되었다.
딸이 수술을 들어가던 그 순간에 그날 수술동지인 딸보다 더 심한 아줌마가 앞에서 수술을 하시게 되었는데 수술이 끝나고 나오는 아줌마는 대성통곡을 하면서 나오시기도 했지만 코 앞에 붙여 놓은 거즈에는 피로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순간 아줌마와 교차하듯 수술실로 향하는 딸, 너무도 비참함에 녀석은 얼어 있었다. 수술당일까지 자신이 왜 여기에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수술을 하기 겁내하던 녀석이었는데 수술실앞에서 많은 이들과 기다리는 동안 세개의 엘리베이터에서는 연신 수술실로 혹은 중환자실로 향하는 사람들을 태운 침대가 들고 나고 하는 가운데 딸이 수술실에 들어가고 이십여분 지났을까 갑자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서 시신을 옮기는 철관이 올라오는 것이다.순간 남편과 난 얼어붙고 말았다. 딸의 이름은 계속 '수술중' 이었는데 아마도 그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보호자들은 모두 얼어붙었을 것이다,그순간에는 말이다. 그리고는 잠시 후, 시신을 태운 관은 내려가고 잠시 안도의 숨을 내쉬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한시간여 걸린다는 수술은 한시간 반이 지나도 계속 수술중이었던 것이다. 그리곤 갑자기 딸의 이름이 불려져 달려가니 녀석이 나온다. 그런데 눈을 꼭 감고 있는데 눈물이 한 줄 흘렀다. '고생했어. 아프면 울어도 돼.이제 다 끝났다' 했더니 눈물이 그렁그렁. 그리곤 병실로 옮겨지고 조금 정신을 차렸을 때 왜 울지 않았냐고 물었더니만, '엄마, 나도 이제 다 큰 어른이니까 참아야지.울면 어떻게 해.' 한다. 녀석 제가 무슨 어른이라고..아마도 기다리는 엄마를 생각해서 울지 않은 듯 하다.수술실에 들어간 순간,정말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신은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어디에 존재할까? 과연 내 옆에 신이 있을까? ' 큰소리로 묻고 싶었다. 그런 순간이 삶에서 한번뿐일까?
2011년에는 친정아버지를 폐암으로 보내드리게 되었다. 그때도 물론 지금 딸이 입원한 종합병원에서 내가 모시게 되었다. 정말 아버지와 함께 하며 난 '신의 존재를 믿고 싶었다.' 어떤 신이든 내 곁에 존재한다면 아버지를 오년만 아니 삼년만 아니 일년만이라도 건강한 모습으로 사실 수 있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아니면 아버지를 데려 간다면 정말 아버지가 아프지 않고 행복한 세상에서 사실 수 있는 곳으로 데려가 달라고 빌고 빌었다. 아니 아버지가 가시는 그 순간에 고통이 주시지 말라고 빌었는데 내 기도가 통했던 것일까,아버지는 고통없이,물론 아버지 본인은 고통을 느끼셨겠지만 보는 이들에게는 너무도 편안한 모습으로 주무시다가 아주 편안하게 가셨다.그 순간이 병원에 오니 더욱 생각이 나고 어린 딸이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을 하게 되면서 더욱 '신의 존재'를,특별하게 믿는 믿음은 없지만 어느 신이든 존재한다면 모두를 고통에서 해방시켜 달라며 빌게 되었다. 딸이 있는 병실에는 여든이 넘으신 할머니와 함께 하게 되었다.할머니는 우리가 입원하고 이틀까지도 정신을 못차리고 드시지도 못했는데 입원 이틀째 신부님과 수녀님이 오셔서 예배를 보시고 가셨다. 할머니는 정신이 없는 가운데도 우리말을 정확하게 못하시는 신부님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예배를 보신 그 다음날에 거짓말처럼 정신도 돌아오고 밥도 드시게 되었다. 말씀도 못하시던 할머니 내게, '자네 고향이 어딘가?' 하고 물으시며 앉으셔서 조근조근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정말 할머니는 신이라도 만나고 오신 것일까?
우리는 행복한 순간보다는 '고통'의 순간에 더욱 신을 찾는다. 故 이병철 회장 뿐만이 아니라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잊혀진 질문' 을 질문에 답이기 보다는 자신의 인생이야기를 하면서 아니 누군가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 속에서 신은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지, 무의식중에 신의 존재 부정보다는 믿음이 없어도 신을 긍정하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살펴본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절박한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는 '신'이란 존재는 더욱 부각되게 마련이다. 나 또한 그런 순간들에는 믿음을 떠나서 기도하고 신을 찾게 된다. 내 안에 아니 어느 곳에 존재하는지 모를 신을 찾아 기도하면서 고통의 순간을 이겨내어 보려고 노력한다. 고통을 벗어나려는 것은 어쩌면 삶을 좀더 희망으로 이어가려는 인간 본연의 모습이라고 할 수도 있을 듯 하다. 그 속에서 우린 '살아갈 이유'를 '존재의 이유'를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삶의 끝에서는 누구나 신을 믿게 되고 죽음이라는 또 다른 세계 보다는 이승에서 또 한번 굴러보고 싶은 욕심을 가지게 된다. 아버지 또한 삶의 끝에서는 그토록 고통의 순간에도 '아프다,무섭다' 소리 한번도 자식들 앞에서 하시지 않으셨는데 마지막 전날 집을 찾은 내게, '아버지 아파서 죽을 것 같다. 막내야,아프다' 하시었다. 그 말씀을 잊을 수가 없다. 좀더 자식들과 평생을 함께 알콩달콩하셨던 엄마와 조금더 생명을 연장하고 싶으셨던 아버지, 지금 신을 만나고 계실까? 딸의 수술실 앞에서 난 누구 다른 신보다는 '아버지' 께 빌고 또 빌고 그렇게 기다리는 모든 시간을 빌었다. 제발 꼭 손녀딸을 보살펴 달라고. 당신이 다 누리지 못한 세상을 좀더 행복하게 누릴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다. 고통의 순간에 늘 찾게 되는 아버지는 내겐 신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아버지가 찾지 못한 세상을 아니 찾아 안주하고 계실지 모를 그 세상에서 아직은 그 세상에 가려면 더 긴 시간이 필요한 존재들에게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서광의 길을 열어 달라고 부탁하곤 한다. 기도한다. 신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늘 내 옆에 있다. 그것을 내가 다 가진 순간에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가 고통의 순간에만 느끼게 되니 그것이 인간인 듯 하다. 모자라기에 그 모자람을 또 신부님의 말씀으로 채워본다. 신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