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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집 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작품은 파묵의 두번째 소설이라 한다. 난 그의 소설중에 <내 이름은 빨강>과 <순수 박물관>을 읽었고 <눈> <이스탄불> <하얀성><검은 책>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 읽지는 못했다. 하지만 처음에 읽은 <내 이름은 빨강>이라는 책이 너무 강했기 때문일까 그에게 빠져 들고 말았지만 그의 소설은 언제나 어렵다. 동서양을 만나는 지점인 이스탄불, 지역적 위치의 잇점이 소설 속에서도 여실히 드러나 있다. 문화적 충돌지이면서 동서양의 충돌지인 터키, 터키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오르한 파묵' 이지만 내겐 정말 어려운 작가이다.
<고요한 집>은 이스탄불에서 벗어난 지역에 살고 있는 아흔 살의 파트마 할머니 집에 역사가 파룩과 혁명주의자 여대생 닐귄, 미국에 가서 부자가 되고 싶어하는 메틴이 일주일간 머물면서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그 집에는 아흔 살의 파트마 할머니 뿐만이 아니라 할머니의 모든 것을 돌봐주고 있는 셀라하틴의 혼외 아들인 난쟁이 레젭이 함께 한다.아흔살의 파트마 할머니 또한 그 삶이 파란만장하지만 레젭 역시나 순탄한 삶을 살지는 않았다. 그 집의 집사이면서 혼외아들이면서 난쟁이이니 다른 이들에게 얼마나 주목의 대상이 되었을까. 묵묵히 한자리에서 터키의 역사와 함께 했던 파트마, 겉으로는 풍족한 삶인듯 보여지지만 장농에 있는 빈 보석함처럼 그의 인생은 하나 하나 없어지던 귀금속처럼 한귀퉁이씩 잃어가던 삶과 역사를 털어 놓게 된다.
소설은 한사람이 아닌 다섯명이 화자로 나선다. 이런 구성박식은 <내 이름은 빨강>으로 통한다.파트마는 자신의 구십년 생과 남편이면서 백과사전을 집필하며 생을 보낸 셀라하틴을 이야기 한다. 그는 갔지만 남은 사람들의 기억을 통해 함께 한다. 서구문화를 따랐던 그, 그리고 불완전한 혼외 아들들을 남긴 남편 셀라하틴, 그가 남겨 놓고 간 것은 난쟁이 레젭과 절름발이 이스마엘처럼 불완전하면서 동서양의 완전한 접목을 시키지 못하고 서양의 문물만 좇던 그처럼 불완전한 터키의 역사를 보여준다.
소설은 건조하면서도 때로는 독백과도 같은 나레이션처럼 짧은 문장으로 이어진다. 그런 문장속에서도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터키의 역사와 함께 했던 사람들의 삶을 잘 보여준다.'하지만 내가 난쟁이라서 분한 건 아니야. 사람들이 쉰다섯 먹은 난쟁이를 놀릴 정도로 못됐다는 게 내 마음을 정말 아프게 해.' 예전에도 난쟁이였고 지금 쉰다섯이어도 레젭은 난쟁이다. 하지만 지금도 사람들은 난쟁이라 놀린다. 그런가 하면 ' 아참,엄마, 얘는 메틴이야. 그 오래된 집 있잖아, 거기 산대 이상하고,고요한 집에' 파트마와 레젭이 살고 있는 집은 사람들에게는 오래되고 고요한 집이다. 하지만 그 집은 그냥 오래되고 고요한 것이 아니라 터키의 역사와 함께 했다는 것이다. 아들이지만 혼외아들이고 난쟁이라 사람들의 놀림감이었던 레젭,그런 아들을 집사로 두고 사는 아흔살이 된 할머니 파트마, 그들의 삶 또한 고요하지만 숨겨진 역사가 있다. 그리고 그 집을 구성했던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은 지난 것은 잊어 버리려 하고 좋다고 생각하는 것만 쫒으려 하기도 한다. 하지만 과거의 역사를 잊어서는 안된다. 밑바탕이 된 과거의 역사가 없이 현재의 역사가 이루어지지는 안는 법이다. 어쩌면 파묵은 그런 과거와 현재의 가교역할을 하는 소설을 탄생시키려 한 것인지도 모른다,고요한 집을 통하여 파트마와 레젭을 통하고 세 명의 젊은 친구들을 통하여 터키의 과거와 현재를 말해주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레젭을 아들로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그는 어쩔 수 없는 아들이다. 비록 난쟁이고 집사이지만 혼외아들이므로 분명 아들인데 인정이 되지 않는다. 어쩌면 터키의 역사 또한 혼외아들 레젭처럼 서양의 문물을 받아 들이고 싶지 않아도 스펀지에 흡수되는 물처럼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서구문명을 흡입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그렇다고 자신의 역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래된 집처럼 고요한 집처럼 근간이 되는 밑바탕은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런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것은 아닐까. '삶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위선일 뿐이라는 걸 이 거리는 말하고 싶어 하는 것만 같다. 마치 모든 것의 표면에 가짜라고 분명하게 쓰여 있는 것 같았다.' 집이란 좋은 일도 있을 수 있지만 나쁜 일도 있을 수 있다. 저자의 <내 이름은 빨강>은 세밀화를 보듯 그려냈듯이 이 소설 또한 세밀화처럼 집이 담고 있는 역사와 사람들의 희노애락을 잘 그려내고 있어 다음책을 빨리 읽고 싶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