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정말 돈답게 쓴다는 것은 무얼까? 아니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오랜시간을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늘 의문이다. '나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돈을 제대로 잘 쓰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돈보다 귀한 것은 무얼까? 그런 의문을 가지게 만드는 작품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은 해마다 크리스마스때면 생각나게 하기도 하지만 한 살 더 먹어가는 세밑에서도 자신을 뒤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우리 속담에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 는 말도 있듯이 정말 어떻게 쓰고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일까.
'스크루지' 수전노와 같은 스크루지는 그렇게 절약하고 아껴서 어디에 쓰려는 것인지 무척이나 아낀다. 자신 혼자만 아끼는 것이 아니라 그와 관계된 모든 것에서 아낀다. 그가 사는 집도 동업자 말리가 쓰던 집이고 그와 함께 있는 사무실 직원 밥이 추위를 감내하기 위하여 난롯불을 좀더 지피는 것조차 허용이 안된다.그는 추위를 좀더 누구러뜨리기 위하여 촛불에 의지한다. 그렇다고 스크루지가 낭비를 할까? 그또한 철저하게 아끼고 조카에게조차 한 푼,아니 따듯한 말한마조차 건네지 않는다. 모든 면에서 인색하고 옹색한 노인네처럼 그렇게 살아간다.왜일까? 왜 그렇게 돈앞에서 벌벌 떨며 자신뿐만이 아니라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돈의 노예처럼 살아가야만 할까. 그렇다고 죽은 후에 그 모든 것을 다 짊어지고 갈 수 있을까.
내일이면 크리스마스이지만 밥에게도 조카에게도 물론 자신에게도 인색하게 크리스마스를 맞으려고 한다. 하지만 우중충한 낡은 집으로 들어간 순간 그는 말리의 유령을 만나게 된다.그는 분명히 몇 년 전에 죽었는데 그를 비롯한 과거 현재 미래의 유령은 그를 데리고 여행을 하며 그의 지난 시간들 속에서 그의 모습과 그를 보는 주위의 시선과 말들을 듣게끔 한다. 그가 과거에도 인색한 사람이었을까,왜 인색해져야만 했을까. 그가 인색하게 한다고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그를 싫어하고 나쁜 말만 일삼을까.그런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반대로 그들은 스크루지를 '불쌍한 사람' 이라고 한다. 무엇이 불쌍한 것일까.함께 나누지 못하고 혼자만 아는,'돈을 우상처럼 섬기는' 것을 불쌍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인생에서 돈보다 귀한 많은 것들이 있지만 그는 그런 맛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돈이 우상이 아니라 돈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가슴에서 머리'
유령들을 만나면서 자신의 과거에서 미래까지 보면서 그의 가슴이 흔들리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그는 점점 변해간다. 잃었던 웃음도 되찾고 주위 사람들의 아픔을 볼 줄 알게 되고 그가 아닌 아니 돈이 아닌 주변인들의 사는 맛을 들여다보게 되고 자신 또한 속하고 싶어한다. 그렇게 어율려 사람같이 살아갈 수 있는 날이 있다. 바로 '크리스마스' . 유령들과 먼 시간속을 여행하며 그는 '가슴에서 머리' 까지의 거리를 좁혔다. 그동안 너무 멀게 느껴졌던 거리를 좁히고 이젠 사람속으로 그가 들어가려 한다.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 태어나려 한다. 어느 순간 '새로운 삶'을 깨우치고 나니 모든 것이 새로워졌다. '지금껏 잘못을 바로잡을 시간이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이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삶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그는 잘못된 것을 바로 잡을 시간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그리곤 하나하나 바로 바로잡아 나간다.
깨달음이란 무서운 것이다. 어느 순간에 깨닫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은 다른 그림을 그릴 수 있다. 하지만 평생을 자신이 잘못 살고 있다고 깨우치지 못하고 가는 사람도 많다. 장례식장에 가보면 그사람이 제대로 살았는지 그렇지 않은지 알 수 있다.살아서 많이 나누고 베푼 사람들을 보면 시끌벅적 잔치집 분위기인데 그렇지 못하고 옹색하게 살다간 사람들의 장례식장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스크루지 또한 미래의 유령에게서 자신의 마지막 죽음을 보고는 그런 슬픈 죽음을 맞이하고 싶진 않았다. 버려지듯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죽음,그리고 그 죽음을 무시하고 그의 모든 것을 탐내는 사람들. 가졌다면 아니 어느정도 자신의 욕심을 채웠다면 이젠 베풀고 나누는 것이다. 나눔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 끝을 보여주기도 한다. 사랑은 받는 것보다 주고 베푸는 것이 더 행복함을 보여준다.
<크리스마스 캐럴>은 모태가 된 <교회지기를 홀린 고블린 이야기>외 에도 크리스마스에 관련된 단편이나 글들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학창시절에 읽었던 기억으로 흘려버릴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는 나이에 다시 읽으니 '과연 나는 잘 살고 있는가? 하는 의문보호를 가지게 한다. 스크루지만이 정말 스크루지일까? 우리도 아니 나도 드러내지 않았지만 스크루지와 다르지 않은것은 아닐까.그런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정말 내 삶을 뒤돌아보게 만든다. 점점 대화가 단절되고 있는 현실,따듯한 말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지 가끔 느끼는데 돈이나 그외 많은 것을 나누어서가 아니라 정말 따듯한 말한마디 정답게 건낼 수 있음이 베품이고 나눔인 듯 하다. 어린시절에도 그리고 지금에 다시 읽어도 재밌고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그래서 고전은 고전인가보다.추울때일수록 가족의 정이,따듯함이 절실히 필요함을 느끼는 계절인데 정말 물질적인 것을 나누기 보다는 '따듯한 마음'을 나누어야 함을 느꼈다. 그리고 스크루지가 영들과의 만남이후 웃음과 행복을 찾은 모습이 왜 그리 귀여운지,디킨스의 위트를 다시금 되새김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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