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 사계절 1318 문고 66
황선미 지음 / 사계절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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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아닌 인생이 있을까.뒤돌아 보면 나의 인생도 그리고 다른 이의 인생도 모두가 소설속 한 부분처럼 여기지는 삶들이다. 이 소설은 작가의 자전적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하는데 빚 때문에 고향을 떠나 평택의 작은 객사리라는 마을에 정착하여 외갓집 식구들과 함께 하며 받는 설음과 그 속에 섞이고 싶으면서도 섞이지 못하고 겉돌듯 하는 삶 속에서 그 힘든 시간을 이겨낼 수 있게 한것은 다름아닌 '가족' 이라는 울타리,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판자집인 꺽다리집이지만 그래도 가족이 함께 했으므로 그 힘든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 본다.

작가의 다른 소설 <마당을 나온 암탉>을 읽고 너무 좋았다. 시골에서 자라서일까 공감대가 같고 비슷한 시기를 거쳤기에 그 부분 또한 내 이야기와 비슷한 것을 느끼면서 어쩌면 카타르시스를 느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 뒤돌아보지 않고 이 책을 얼른 집어들게 되었다. 후회없이. 아픔도 가난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가족이 함께 함으로 하여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고향에서 부유하게 살았지만 빚으로 모든 것을 거덜내고 외삼촌집에서 함께 살게 되었지만 아버지는 한 달에 한번 집에 올까말까,왜 아버지는 이 상황을 함께 이겨내려하지 않고 집에도 오지 않은 것일까.고향을 떠난 후로 엄마는 억척이 되었다. 시장에서 행상을 하며 살림을 꾸려 나가는 엄마,그대신 집안 일은 맏딸인 내 몫이다. 열 한살인 내가 이 상황을 이겨내기는 버겁기도 하지만 위로 세살 많은 오빠가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자신을 총명하다고 알아주는 삼촌이 있기에 그나마 삶의 희망이다.

그래도 가난은 벗어날 수 없는 힘겨운 터널,아무리 엄마가 시장에서 행상을 해도 아버지가 와서 함께 생활을 해 나가도 가난은 벗어날 수 없는 무거운 멍에처럼 가족을 둘러싸고 놓아주지 않는다. 자신의 집도 아니면서 이모할머니의 집을 자신의 집인양 기세등등하게 자신을 골려 먹는 재순이와 그외 친구들과 함께 하고 싶지만 늘 외톨이처럼 지내면서도 맏딸로서의 일은 늘 듬직하게 해내는 열 한살 소녀 연재의 삶은 가난해도 오빠를 남의 집에 주지 않아서 돈을 조금밖에 벌지 못해도 아버지가 함께 해서 행복하다. 그 힘든 시간에 아버지마져 없었다면 어떠했을까. 하지만 그런 아버지는 벌이도 시원찮은데 추운데서 자다가 입이 돌아가기까지 한다. 그런 가운데 '벼락맞은 대추나무' 효험이 있다하여 오빠와 연재는 벼락맞은 대추나무를 구하러 다니는데 자신을 미워하기만 한다고 생각한 재순이마져 구하러 다니고 있지 않은가.

70년대를 살아 온 사람들은 낯익은 새마을사업이며 초가집등 공감하는 부분이 많겠지만 지금시대의 아이들에겐 낯선 시대가 아닐까 한다. 나 또한 그시대를 거쳐왔고 그런 비슷한 삶도 살았기 때문에 내 유년시절이 많이 녹아 나 있는 듯하여 많은 부분을 공감하며 읽었는데 과연 지금 시대의 아이들은 그 시대를 알까? 아니 이해나 할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집이 없어 남의 집을 전전하며 함께 공동우물을 쓰고 연탄난로를 사용하고 맏이는 부모님이 일을 나가면 밑의 아이들을 부모 대신하여 거두느라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는 그런 일을 이해나 할까.집이 없어 남의 집 처마밑에 서로 색이 다른 판자를 이어 붙여 엉기설기 판자집을 지어 살지만 겨울에는 그마져도 바람 손님이 한자리를 차지하여 입이 돌아갈 정도의 추위와 싸워야 했다면.

비록 빚잔치로 모든 것을 빼앗기고 남의 집에서 단칸방에서 옹기종기 모여 살지만 집안의 대들보는 열 세살인 의젓한 오빠다. 학교에서도 군수님의 상을 탈 정도로 든든한 엄마의 기둥인 오빠,그런 오빠를 남의 집에 주어야 할 정도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결코 가족을 흩트러지지 않게 하는 엄마의 강단함이 맏이인 연재에게도 전해진 듯 하다. 고향에서는 순했던 그녀가 환경이 바뀌면서 앙칼진 재순이에게도 덤벼서 결코 지지 않는 싸움꾼이 되기도 하고 외톨이에서 점점 친구들과 어울릴 줄도 알면서도 아버지를 위해 혹은 엄마와 가족을 위해 한 몸을 바치듯 제대로 한 몫을 해내는 것을 보면서 그런 삶에서도 삐뚫어지지 않고 강단한 삶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유년의 기억들이 영양분이 되어 지금의 그녀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해주지 않았을까.

아픔이 아픔에서 끝나지 않고 다시 꺼내어 보면 가슴 시리면서도 연탄난로의 온기처럼 '따듯함' 이 살아 있는 것은 모두가 함께 이겨내고자 했던 의지가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내 어린시절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지난 기억과 추억속에 폭 안겨 볼 수 있었던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시절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시절 그 온정은 다 어디로 갔을까? 지금의 가족과는 너무도 다른 가족의 풍경이기도 하다. 지금 가족이란 어쩌면 자신의 공간에서 자신의 영역을 차지하고 홀로 시간을 나누지 가족이 모두 함께 하며 따듯한 정을 나눈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 옛날에는 작은 방에서 한가족 모두다 모여 옹기종기 한이불 아래 살을 부비며 정을 나누고 그렇게 서로를 살뜰히 챙기기도 했다. 그런 시간이 때론 그립기도 하다. 넘쳐나고 배불렀다면 기억에 오래도록 남았을까? 부족하고 모자랐기에 서로를 챙길 수 있었고 나눌 수 있었으며 집의 소중함과 가족의 소중함을 깨우칠 수 있는 시간이 되었기에 가슴이 아리자만 아름다운 시간이 되지 않았나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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