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무게
애니타 슈리브 지음, 조한나 옮김 / 북캐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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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큼이나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라고 하니 괜히 '무게'가 느껴진다. 100년의 살인사건의 진범은 누구일까? 그리고 그 살인사건을 파헤쳐가는 사진기자 진의 이야기가 씨실과 날실로 교묘하게 엮어 가면서 완벽한 한 벌의 옷이 되는 소설이다. 100년 뉴햄프셔 해안 근처에 있는 스머티노즈 섬에서 있었던 끔찍한 살인사건, 두 여자가 끔찍하게 살해 당하고 한여자는 그곳에서 살아남았다. 그리고 살인자는 면식범인 그들과 함께 지냈던 남자. 뭔가 냄새가 풍기는 듯 하다.치정에 얽힌 살인사건일까. 아님 다른 이유의 살인사건일까? 교수형을 당한 루이스 와그너가 정말 돈을 훔치기 위하여 두여자를 살해하고 한 여자는 그곳에서 살아 남은 것일까?

사진기자인 진은 시인이며 대학교수인 남편 토마스와 딸 발리 그리고 남편의 동생인 리치와 애인 애덜린은 요트여행을 그 섬으로 떠난다. 이야기는 그 섬에서 있었던 살인사건과 진의 이야기가 얽혀가면서 점점 사건을 파헤쳐 들어가면서 진 부부와 리치와 애덜린의 사이도 교묘하게 엮이어든다. 그렇다면 교수형을 당한 루이스가 진범일까? 진은 살해현장에서 살아 남은 목격자 마렌에 촛점을 맞추어 나간다. 그녀의 어린시절부터 이야기가 나오고 진 자신 또한 어린시절부터의 이야기가 서서히 나오며 시인인 남편을 어떻게 만났고 그들이 어떤 결혼생활을 했는지, 마렌 또한 어떤 어린시절을 보내게 되었는지 세세히 나오면서 그녀는 원하지 않은 남자와 원하지 않은 결혼을 하여 이 섬 스머티노즈에 와서 살게 되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그렇다면 살인사건으로 인해 죽은 캐런과 아넷은 누구일까? 다름아닌 캐런은 마렌보다 열살이 넘게 차이나는 언니이고 아넷은 두살 위 오빠 에번의 아내였던 것이다. 언니와 올케가 죽은 것이다. 그 현장에서 마렌 그녀만 살아 남은 것이다.그 섬의 도서관에 갔다가 '살인사건' 에 대한 자료를 보던 그녀, 그 자료들을 몰래 가져오게 되고 마렌의 이야기는 점점 베일을 벗게 된다.한편 요트여행을 온 그들에겐 아무 일이 없을까.무언가 이상한 기류가 흐른다. 애덜린과 남편 토마스의 눈빛이 이상하다. 둘이 수상하다. 그리고 자신은 자꾸 리치의 스킨쉽을 거부하지 않게 되고,그렇다면 지금까지 자신이 토마스를 사랑하지 않았다는,결혼생활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것일까.토마스의 비밀과도 같은 과거 이야기를 알고 있는 자신인데.

마렌은 오빠 에번과 친구처럼 지내다 이상한 감정의 교류를 느낀다. 선을 넘어서듯 둘의 사이가 어머니의 죽음으로 이상해지고 그런 오빠의 곁을 떠나는 방법으로 선택한 길이 존과의 결혼이었지만 의도하지 않게 섬에 갇혀 살게 되었다. 하지만 오빠오 언니인 캐런도 그녀를 찾아 모여들게 되고 그녀의 부부와 함께 생활하며 과거 누적되었던 감정들이 겉잡을 수 없이 부풀려지고 억눌렸던 감정들은 그 끝을 알 수 없게 작용을 한다. 한 핏줄이면서 남보다 더한 악한 감정을 지나고 살았던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마렌이 섬에 갇혀 살지 않았다면 다른 식구들이 그녀를 찾아 모여들지 않았다면 그 섬에서 비극이 발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을텐데.어쩌면 매듭처럼 꼬인 감정의 고리를 서로 풀지 못해서 그런 끔찍한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진 또한 남편과 애덜린 사이를 의심하면서 그와 같은 아픔을 겪게 된다. 자신이 남편과 애덜린 사이를 의심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살인사건에서 살아 남은 마렌과 그 살인사건을 좇아 섬에 가게 된 사진기자 진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의심과 내면세계가 비슷하게 맞아 들어간다. 서로에게 풀지 못했던 감정의 뒤끝, 그 결과는 정말 잔인하고 큰 아픔이다. 사람을 믿는 다는 것,거짓이 아닌 진실로 받아 들인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 것인지 진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알게 되기도 하지만 마렌의 이야기는 정말 가슴이 아프다. 그녀를 믿어주지 못했던 캐런,언니이면서 동생인 그녀를 그렇게 쥐구멍으로 몰아갔어야 했을까. 시작은 정말 작게 시작한 감정의 매듭이 점점 눈덩이처럼 커져 겉잡을 수 없는 결과로 치닫게 되는 비극적인 두 사건은 진과 마렌 두 여자의 내면을 잘 그려내 이야기에 점점 빠져들게 한다. 처음엔 무슨 이야기지 하다가 점점 집중하게 되면서 끔찍한 '살인사건' 이 주가 아닌 '인간의 내면세계'가 주인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된다. 생각이란 정말 무섭다. 살인도 부르고 말이다. 진이 애덜린을 리치의 애인으로 넓게 받아 들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마렌 또한 아넷을 올케로 받아 들였다면 아니 이야기 속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캐런이 좀더 폭넓게 동생들을 감싸주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자신안에 키웠던 '악의 감정' 을 발전시켜 종국에는 자신을 죽이는 화살이 되게 만들었다.

정말 여자가 극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더 무섭게 변할 수 있을까.
자신의 진실을 대변하는 방법으로 '살인' 을 선택했다는 것이 너무 가슴 아프다. 마렌은 어쩌면 '피해망상' 에 시달렸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왜 그런 삶을 선택받아야 했는가.오빠를 사랑해야 하고 아기도 가질 수 없는 자궁이 되었으며 대도시가 아닌 섬에 갇혀 사는 신세. 오빠와 언니가 모이기 전까지는 그녀 나름 잘 살고 있었다. 건드리지 않았다면 상처는 그저 안에서 곪았을텐데 캐런이 그 상처를 건드려 밖으로 터뜨려 놓은 것이다. 그녀를 이해해주기 보다는 보이는 상황만 판단하고 그녀를 나쁘게 몰아가려던 친언니 캐런, 그리고 오빠의 아내 아넷까지 없다면 이 섬에서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물에 갇혀 '물의 무게' 에 눌려 살았던 지난 날을 그녀들은 모른다. 그녀는 그저 살고자 했을 뿐인데 모든것들은 '삶의 무게' 로 그녀를 무겁게 내리눌렀다.가슴안에 품은 진실 또한 그녀가 죽기 전에는 '진실을 왜곡한 무게' 로 그녀의 삶을 옥죄었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을 풀어내 놓아야만 가벼워질 수 있다.'리치, 결혼이란 건 정말이지 이 세상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계약인것 같아요.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어떻게 똑같이 생활할 수 있을까요. 사랑보다 중요한 건 어쩌면 시간일지도 모르겠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변해가니까요.' 결혼이란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해도 시간이 흐르면서 변해갈 수 있을지도 모르겟지만 처음부터 잘못 끼워진 단추는 마지막에 가서도 제 짝이 맞지 않게 된다.모두에게 시간이 약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어찌보면 그녀들의 삶은 가슴 아프다. 엉킨 매듭을 풀지 못하고 비극으로 치달은 삶이 비단 그녀들 자신만의 일은 아니라고 생각이 되며 심리묘사가 뛰어난 작품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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