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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별 ㅣ 문학동네 동시집 19
송찬호 지음, 소복이 그림 / 문학동네 / 2011년 7월
정말 동시집을 언제 읽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이다. 시골에서 자라서인지 왠지 책을 접하면서 '훗 후웃~~' 하고 웃음이 나왔다. 내 지난 추억이 짙게 묻어나며 왠지 올망졸망 친구들과 어울려 마당에서 한 판 질펀하게 땀을 줄줄 흘리며 놀고 난 후 시원한 물로 우물가에서 등목을 하고 난 느낌이다.내가 살던 시골에서는 마당마다 놀이가 하나씩 그려져 있었다. 농사일 나가시는 부모님을 따라 아침을 일찍 먹고 친구들과 어울려 동네 마당을 한바퀴 돌며 공기놀이도 하고 땅따먹기도 하고 비사치기도 하고 오징어점도 하고 갖가지 놀이를 하면 해가 언제 졌는지도 모르게 지곤 하던 추억,그 추억속을 다시금 거닐고 온 느낌이다.
왜 어른이 동시를 쓰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을 할까. 동시가 아닌 시를 써야만 할 것 같은데 점점 어린이소설과 동시가 좋아진다. 나이를 먹는다는 증거인지. 책 머리글처럼 '몇 년 전 어느 날,나는 그날부터 동시를 쓰기를 결심했습니다. 그전부터 동시를 쓰고 싶었지만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가, 그즈음 나온 어떤 좋은 동시집이 내 게으름을 채찍질한 것입니다.' 마음에 담고 있던 일을 누군가의 아니 무엇인가의 채찍질에 움찔하며 실행에 옮길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멋진 일인듯 하다.그렇게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열정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선 나부터 '다음에 하지 뭐..' 하며 포기하듯 하고 말았을텐데 이런 멋진 동시집을 낼 정도로 써냈다는 것이 우선 정말 대단한 일인 듯 하다. 그리고 우선은 그가 시골이라 할 수 있는 청정자연에서 살고 있기에 시들은 더욱 맑고 깨끗하게 다가왔다.
<수박씨를 뱉을 땐>, 수박을 먹고/ 수박씨를 뱉을 땐/ 침처럼 드럽게/ 퉤, 하고 뱉지 말자// 수박을 먹고/ 수박씨를 뱉을 땐/ 달고/ 시원하게/ 풋, 하고 뱉자// 얼마나 정겨운가. 툇마루에 앉아 가족이 모두 둘어 앉아 수박을 먹어가며 풋, 풋, 풋 하고 수박씨를 뱉는 풍경을 그려 보는 것만으로도 참 정겹다. 침처럼 퉤,하고 뱉으면 멀리 가지 못하고 내 옷 어딘가에 떨어져 내릴것만 같은 수박씨, 그 하나에도 멋진 풍경을 그려 냈으니 정말 맑고 깨끗하다.모여 앉아서 수박을 먹다 보면 풋,하고 수박씨를 뱉기도 하지만 좀더 세게 '풋웃~~' 하고 뱉어 누가 멀리 수박씨를 뱉나 내기 시합도 한번쯤 해보지 않았을까 한다. 그런가 하면 고개를 살짝 뒤로 젓히고 '푸웃~' 불어 얼굴 어딘가에 수박씨가 붙게 하고는 '훗 훗 ' 불어서 수박씨 떨어뜨리기 시합도 해 보았을 것이다. 그 풍경들이,추억들이 모두 이 시를 읽어가며 기억나는 것은 정겨운 그림들과 함께 첫 장부터 '훗~~' 하고 웃을 수 있는 맑은 시가 날 붙잡는다.
<상어>, 앗!/ 상어에게/ 선물을 잘못 보냈어요// 상어에게/ 구두를/ 보내다니요// 상어가/ 발이 생겨/ 바다를 쿵쿵 뛰어다닌다면 몰라도!// 하 하 하~~ 정말 재밌다. 그 상상만으로도 재밌다. 상어가 두발에 새 구두를 신고 좋아서 바다를 쿵쿵 뛰어다니는 상상을 해 보시라. 정말 웃기지 않는가.상어는 부레가 없어서 계속적으로 지느러미를 저어야 한단다. 그런 상어에게 구두를 선물하면 상어는 어떻게 받아 들일까? 그 상상만으로도 재밌는데 구두를 신고 쿵쿵 뛰어다닐 상상을 하니 정말 재밌다. 한 줄정도 되는 짧은 동시로도 아이들에게 아니 시를 읽는 모든이에게 '상상력' 이란 정말 좋은 선물을 해주고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그의 시를 읽으면 곧 그림을 그리 수 있다. 아니 그런 재미난 그림들이 있어 더욱 재밋게 읽을 수 있다.
<사슴 뿔 숙제>, 사슴을 그리다/ 뿔을 잘못 그려/ 지우개로 지웠다// 뿔을 다시 그리면서/사슴에게/ 내는 숙제// 너에게 꼭 맞는/ 작은 뿔을 그려 줄 테니까/ 앞으로 네가 튼튼하고 크게 키워// 푸하하하~ 정말 기발하다. 그림을 그리면서 사슴에게 숙제를 내주고 있다. 작은 뿔을 크게 키우라니, 아니 시인은 독자에게 숙제를 대신 내주고 있다. 자신의 상상력은 여기지만 더 많은 상상력으로 발전시키라고 말이다. 얼마나 좋은가.방학을 맞은 아이들은 이 책을 읽으며 동시와 함께 그림을 그려보는 것도 좋은 숙제가 될 듯 하다.작은 뿔을 그려준 사슴이 있는가하면 그 사슴 옆에는 더 많은 가족이 있을 수 있고 친구가 있을 수 있고, 그렇게 상상력을 키워 나가다보면 더 좋은 그림 더 좋은 시를 쓸 수 있으리라. 그 모든 것은 독자의 몫이다.아니 숙제이다. 사슴이 작은 뿔을 키워야 하는 숙제처럼 어느 독자가 되었든간에 좀더 다양회 시킬 수 있는 것은 독자의 숙제이다.
<저녁별>, 서쪽 하늘에/ 저녁 일찍/ 별 하나 떴다// 깜깜한 저녁이/ 어떻게 오나 보려고/ 집집마다 불이/ 어떻게 켜지나 보려고// 자기가 저녁별인지도 모르고/ 저녁이 어떻게 오려나 보려고// 저녁 일찍 서쪽 하늘에 저녁별이 떴다.분명 저녁별인데 자신이 저녁별인지도 잊고 저녁은 어떻게 오는지 집집마다 불은 어떻게 켜지는지 지켜보는 대상이 되고 있다.시인은 그렇게 나이를 먹고 '나는 지난 몇 년간 동시에 푹 빠져 살았습니다. 동시를 읽고 쓰면서 나는,허겁지겁 어른이 되느라 미처 작별 인사도 못 하고 떠나온 내 안의 작은 아이와 만나기도 하고 또 요즈음 아이들의 사금파리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세상과 사물을 바라보는 즐거움도 얻었습니다.' 책머리의 말처럼 어른이 되고나서 자신 안에 숨어 있는 작은 아이와 작별인사를 하듯 아니 다시 그 추억을 되새김질 하듯 그렇게 저녁별이 되어 모든 시간들을 아우르고 있다. 그렇게 하여 지난 시간들을 오롯 이 <저녁별>이라는 동시집에 담아낼 수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한다.
모든 시들이 정말 한번씩 생각을 해보게 하고 잊었던 아니 잊고 있었던 웃음을 웃게 만든다. 그가 가져다주는 반전이 좋아 책을 받자마자 앉아서 기쁜 마음으로 모두 읽고 또 다시 읽었다. 다시 읽어도 정말 재밋고 풋풋하고 맑다. 그리고 나 또한 무언가 추억속 기억들을 따라가게 만든다. 내 속의 작은 아이는 잘 있는가 묻고 싶다. 어린이의 눈높이서 보는 시가 있다면 때론 어른의 눈높이의 반전이 있다. <밤에 우는 매미> 환환 가로등 아래/ 전봇대에서 / 매미가 운다/ 밤 열 시가 넘었는데도/매미가 운다// 할아버지가 말씀하신다/ 매미야,/낮에 열심히 울고/ 밤에는 일찍 자야지/ 이제 그만 울거라/ 전기세 많이 나간다// 칠년 간 땅 속에서 겨우 탈피를 거듭하여 세상에 나온 매미는 정말 바쁘다. 그런 매미에게 밤시간도 아깝다. 아니 그만큼 우리네 사는 세상이 밤에도 환하다. 그런 매미가 밤에 울면 우린 시끄럽다고,소음공해라고 하는데 시인은 '전기세 많이 나간다' 라고 했다. 왜 갑자기 이 대목에서 친정아버지가 생각나는지...
내 마음에 때가 낄 때쯤에 다시 한번 꺼내서 읽어야겠다. 아니 한번이 아니고 두번 세번 계속 읽어도 재밌을 동시들이다. 어느 것하느 사소한것이 없다. 땅콩 하나 그냥 보아 넘기는 것이 아니라 그에겐 하나의 세상이 되었다. 넘 재밌는 <땅콩>이란 시,땅콩을 먹을 때 떠올릴것만 같다. 땅 콩 땅 콩...그리고 나팔꽃이 활짝 핀 모습은 '충치 검사'를 한다고 표현해 놓았다.아이들이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동시 하나를 탄생시키기 위하여 시인이 자연과 사물을 무심히 넘겨버리지 않고 얼마나 오랫동안 관찰하고 친구처럼 자연과 벗하며 살았는지 동시속에는 모두 담겨 있다.시가 곧 일상이고 그의 생활이다. 그래서 더욱 좋다. 자신이 살고 있는 맑은 자연을 그대로 동시로 옮겨 놓은 것처럼 그의 추억과 일상이 오롯 <저녁별>에 담긴 동시에 모두 담겨 좋다. 이런저런 말을 쓴다는 것 자체가 흠이 될 것만 같다.아이와 함께 읽어보면 더욱 좋을 동시들이고 아이와 함께 읽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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