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은 세상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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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적엔 정말 등에 커다란 바구니를 하나 매달고 쓰레기를 주우러 다니시던 분들이 있었다. 그리고 지역 어느 한 곳은 커다란 쓰레기장으로 쓰레기를 주워 사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 또한 빈병이나 폐휴지를 가져오라는, 그런 숙제아닌 숙제도 있어 한참 애를 먹기도 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다 잊혀져 가고 먼 기억속이라 내 아이들에게 말을 해 주면 '정말' 하고 반문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에는 '쓰레기' 가 나오게 되고 쓰레기는 음식물이건 그외 분리수거용 쓰레기건 문제가 자주 거론되곤 한다.한때는 자기가 사는 지역에 쓰레기매립장을 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사람들과의 마찰도 커 이슈가 되기도 하였지만 지금은 쓰레기가 그냥 쓰레기가 아닌 돈이고 자원이 되는 세상이다.

난지도,난꽃과 지초가 사는 모래섬으로 꽃과 철새들의 고향이나 마찬가지였던 곳이 70년대 자연제방이 생기고 서울의 쓰레기매립장으로 변했다 한다. 이십여년간 쓰레기매립장이던 것이 90년대 중지하고 다시 생태고원으로 복원되어 지금은 하늘공원과 노을공원 그리고 그외 땅콩등 작물을 재배하는 곳으로 바뀌었단다. 우리 인간은 얼마나 이기적인가 쓸모 없는 섬이라 생각하고 환경적 자연적 가치를 따지지 않고 그저 버려진 섬처럼 있는 난지도라고 그곳에 쓰레기매립장으로 사용할 생각을 했으니,그렇다면 그곳에 살던 사람들과 그외 식물이며 철새들은 다 어디로 가란 말인가. 이기심이 불러 일으킨, 꽃섬을 쓰레기섬을 만든 인간의 이기심에 대하여 무참히 스러져간 것들에 대한 작가의 진혼곡으로 나는 읽었다.그가 기억해주지 않았다면 누가 기억해 주었을까. 작가의 말에 '치매문학' 이라고 했지만 우리는 어쩌면 후세대에 우리의 기억을 모두 소중히 남겨 주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띄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면에서 치매문학이라기 보다는 '약속이행' 으로 보고 싶고 꽃섬에 살던 식물과 자연 그리고 그곳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에 대한 그의 살풀이와 같은 진혼곡으로 보고 싶다.

보육원에서 자란 엄마와 아버지는 아무리 노력해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들이 살던 곳은 시장이 인접한 산동네,아니 달동네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그마져도 아버지가 교육대에 끌려 가면서 떠밀려 나와야만 했다. 엄마가 선택한 것은 아버지의 친구라는 아수라를 닮은 쓰레기매립장에서 일하시는 아저씨를 따라 겨우 보따리 하나 들고 14살의 아들 딱부리와 빈 몸으로 쓰레기매립장인 '꽃섬' 으로 향하는 것 뿐이었다. 쓰레기장엔 온갖 것들이 다 있었다. 판자집을 지을 재료들이나 남들이 먹다 버린 음식물들과 옷가지들,산동네보다는 이곳에서의 수익은 배가 되어 엄마와 딱부리는 열심히 일했지만 엄마는 곧 아수라 아저씨와 동거아닌 동거에 들어가고 아수라 아저씨의 아들인 땜통은 딱부리의 동생처럼 함께 살게 되었다. 엄마가 뜨거운 물을 머리에 부어 머리에 화상과 땜통처럼 상흔이 남아 있는 아픔을 간직한 땜통, 녀석은 한자리 모자란듯 하면서도 영특하게 아버지와 딱부리 엄마의 사정을 꿰뚫어 보고 그리고 주변 상황을 다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딱부리가 적응하지 못하는 듯 하자 그들만의 아지트인 '본부'에 데려가기도 하며 그와 빼빼엄마만이 볼 수 있는 영혼인 '김씨네 가족' 의 이야기도 해 준다.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빼빼엄마는 만물상 할아버지와 함께 장애 강아지들을 키우며 살고 있다. 쓰레기매립장과는 벗어난 곳에서.

거대한 쓰레기매립장은 그곳을 생활터전으로 삶아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들만의 계급이 있고 그들만의 영역이 정해져 있다.아수라 아저씨 덕분에 딱부리네는 그래도 자리를 잘 잡고 살아가고 있지만 아수라 아저씨는 늘 술추렴에 노름판으로 벌어 든인 돈을 날리기 일쑤다. 그런 아수라를 보고 엄마는 마누라처럼 잔소리를 하고 어른들이 소란스러우면 딱부리와 땜통은 그들만의 세계인 본부나 빼빼엄마의 집이나 그외 교회에서 시간을 잘 보낸다. 그들의 아지트인 본부에도 계급이 정해져 있지만 남보다 손발이 긴 딱부리는 본부의 대장인 두더지와 친구로 지내며 자신의 위치와 영역을 확고히 한 덕분에 편히 지내기도 하고 그곳을 가끔 피난처처럼 사용을 한다. 쓰레기매립지만 벗어나 언덕을 넘으면 곧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섬의 원래 모습인 땅콩밭과 그곳을 터전으로 살던 사람들의 모습및 바다가 보이는 것이다. 숲도 있고 바다도 있고 땅콩밭도 있는 아름다운 이 섬이 왜 도시인들이 쓰다가 혹은 넘쳐나서 버린 쓰레기매립지가 되어야 했는지, 그곳의 원주민이었던 파란불인 '김씨네가족' 은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빼빼엄마에게 혹은 땜통에게 보여진다. 김씨네가족 혼들은 꽃섬이었던 과거와 쓰레기섬이 된 현재를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한다.

하루종일 도시민들이 버린 쓰레기에서 '금' 을 찾듯 쓰레기를 캐어 돈이 될만한 것을 찾는 그들에겐 피할 수 없는 것이 있다,지독한 냄새. 시내에 나가기 위하여는 빡빡 문질러 목욕도 해야 하고 쓰레기 냄새가 나지 않는 옷으로 갈아 입어야만 보통의 사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대로 나가면 '난 쓰레기섬에 살아요' 라는 표식처럼 모두가 코를 쥐어 싸게 된다. 물질만능주의와 황금만능주의 대량생산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서는 쓰레기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버린 사람들은 자신들이 버린 쓰레기에 대한 혐오감을 나타내지만 그것이 '삶이고 인생' 인 사람들은 받아 들이고 긍정적으로 대한다. 명절 전후엔 그들도 쓰레기에서 명절을 맞을 수 있다. 하지만 그곳엔 위험도 언제 어디서나 도사리고 있다. 두더지의 형이 두 다리를 잃었듯이 땜통의 아버지인 아수라가 자신들 또한 조금더 편하게 돈을 벌어보기 위하여 협상을 하려고 갔다가 노름판에서 살인미수죄를 저지르듯 그곳 또한 삶이 연장되는 곳이고 어느 세상이나 똑같이 사람사는 동네인 것이다. 그곳에 그들이 인지하지 못하던 사이 위험은 점점 크게 번져 가고 있었다. 바로 쓰레기에서.

쓰레기들이 썩으면서 내는 독한 가스는 점점 위험수위를 넘고 있었던 것,하지만 그에 대한 대비가 없었다. 꽃섬을 쓰레기섬으로 만든 것과 같이. 한편 김씨네 가족들에게 메밀묵과 막걸리로 잘 대접하여 좀더 평화롭게 살고자 했던 할아버지와 빼빼엄마 덕분에 땜통은 그들의 은혜를 받아 돈과 금부치를 찾아내게 되고 그로 인하여 도시구경을 하게 된다. 쓰레기 동네에서는 예전에 살던 곳이 '그리운 곳' 이었는데 인간은 환경적응이 뛰어난 것일까 벌써 쓰레기매립장에 적응이 되었는지 도시와 예전 그곳이 이젠 평범하게 받아 들여진다. 이젠 이곳이 그의 삶의 터전이 된 것이다. 쓰레기매립지의 독가스로 인해 커다란 불이 나고 땜통 동생을 그 불로 인해 잃게 되면서 쓰레기매립지도 변하게 되고 딱부리네의 삶 또한 변하게 된다.불은 모든 것을 태운것 같지만 아니다. 그곳엔 새로운 꽃들이 피어나고 바람이 불고 그곳에 적응하여 살 수 있는 새로운 생명들이 다시 움트고 있다. 그곳에 희망이 자라게 된 것이다. 땜통 동생의 죽음은 서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마지막이 희망적인 생명의 땅으로 거듭나면서 끝이 나 다행이다. 노작가의 노련함에 쓰레기섬은 다시 꽃섬으로 되돌아가기 위한 용틀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 꽃과 철새들의 고향과 같았던 아름다운 섬이 '쓰레기' 의 종착지가 되는 아니러니, 그렇다고 인간이 떠날까 떠난 사람도 있겠지만 쓰레기처럼 버려진 사람들이 쓰레기처럼 쏟아져 그곳에 들어와 정착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세상에서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이라고 인간사 모든 일들이 벌어진다. 늘 질펀하게 이어지는 술판과 노름판 그리고 돈벌이 지역에 대한 애착과 없지만 서로 돕고 어우러지며 한데 뭉쳐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떠돌고 있는 원혼들인 김씨네 대가족들,어찌보면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동화같기도 하고 울면서 웃고 있는 그런 얼굴들을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꽃섬을 쓰레기섬을 만든 인간의 이기심에 대한 원죄에 댓가처럼 일어나게 된 큰 화재사고, 잃은 것도 있지만 그 화재로 인하여 섬은 다시 태어날 기회를 얻기도 한다. 삶은 그렇게 이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모든 것들을 누군가는 기억해야 한다. 그곳이 지금은 아름다운 생태공원으로 거듭났다고 해도 아픈 앙금을 가지고 있던 과거가 있다는 것을,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원혼들이 있다는 것을 누군가는 풀어줘야 한다. 그에 대한 진혼곡이다. 감정을 넣지 않기 위함일까 대화가 그냥 평이하게 함께 쓰여 편하게 읽어나가게 한다. 어쩌면 평범해서 더 서럽고 아프다. 빼빼엄마가 읊어대는 말들처럼. 도시로 나가기 위하여 목욕탕에서 빡빡 문질러 닦고나서야 비로소 별명이 아닌 이름을 얻는 영길과 정호,작가의 철저한 계산이리라. 딱부리 땜통 얼마나 구수한 별명들인가.

현실이 아닌 '슈퍼마리오'  게임속과 같은 본드 흡입 후 꾼 꿈에 나타난 김서방네 할아버지, ' 우리 동네는 언제나 너희 곁에 함께 있는 곳이다 너희들이 있어서 우리가 있게 되고 너희가 없어지면 우리도 없어지는 거야.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오리 한 마리, 산과 강에 이르기까지 함께 살고 너와 똑같단다.여기서는 모든 물건이 장애물이고 싸워서 없애야 할 괴물에 둘러쌓인 너 혼자뿐이로구나.' 라는 말처럼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다른 세상일 수 없다. 모두가 사람 사는 곳이고 소중한 것들이다. '옛날 동네...그게 정말 꿈이었을까? 우리가 꿈꾼 거 아냐?' 꿈이 아닌 현실이었고 지금은 모두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하지만 존재했던 '낯익은 세상' 은 이제 '잊혀진 세상' 이 되었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낯익은 세상' 이었지만 뒤돌아보면 '낯 선 세상' 이 된 곳 꽃섬, 작가는 '기억해라' 그리고 '소중히 지켜라' 하고 말하듯 한다. 지난 과거의 아픔도 현재의 모든 것도 다 소중한 것이고 역사이다. 한바탕 작가의 진혼곡이 끝나고 나니 내 마음 속에도 풀 한포기 새롭게 싹이 트는 듯 하다. 노란 달맞이꽃 애처롭게 피어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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