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스완 - Black Swa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자신안에 잠자고 있는 '블랙 스완' 과 싸우다

포스터

감독/ 대런 아로노프스키
출연/ 나탈리 포트만(니나 세이어스), 벵상 카셀(토마스 르로이), 밀라 쿠니스(릴리),위노나 라이더(베스)...

영화가 개봉되기 전부터 정말 보고 싶었던 영화인데 개봉시에 어쩌다보니 못보게 되었다. 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그러다 기회가 되어 보게 된 영화인데 두가지를 생각하게 하였다. 엄마의 자식에 대한 욕심과 자신의 욕심. 대부분 부모들은 자신이 하지 못했거나 이루지 못한 꿈을 자식이 이루도록 작품을 만들어간다. 하지만 부모와 자식간에 뜻이 맞아 잘 되는 경우도 있지만 자식 또한 자신만의 꿈과 생각이 있기에 어느 순간에 '삐그덕' 하고 금이 가고 만다. 어릴 때 부터 아이의 뒤를 쫒아 다니며 일거수일투족 엄마의 그림처럼 움직이는 아이들을 많이 보아 왔고 우리집 아이들 또한 남들이 생각하기엔 그렇게 키워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도 했지만 난 그런 것에 찬성을 하지 않는 편이고 아이들의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지도 또 그런 엄마가 되고 싶지도 않다. 자신의 꿈을 아이에게 종용한다고 해서 자신이 얻는 기대치는 얼마가 된다고 아이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걸 듯 아이의 뒤만 따라 다닌단 말인가. 자신의 삶이 있듯 자식에게도 자식의 삶이 있는 것이다. 서로의 길이 같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니나의 엄마는 유명하고 잘 나가던 발레리라 였지만 니나를 임신함으로 인하여 발레를 포기해야만 했다. 아이로 인해 자신의 꿈이 무너졌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아이는 엄마의 꿈을 향한 대신 이루는 기계처럼 움직여야만 했다. 니나의 모든 것을 체크하고 감시하고 그녀의 모든 것을 룰에 가두려 했던 엄마, 어쩌면 엄마로부터 완벽함에 대한 반발은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겉으로는 무척 순수하고 순진한 백조에 어울리는 니나의 속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라고 있던 '완벽함과 강박관념' 에 대한 '흑조' 가 한마리 기생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엄마의 통제하에 친구도 핸드폰도 만남도 모든 것이 절제되고 감시당하며 자신이 아닌 엄마의 로봇으로 살아야 했던 시간들, 그녀는 그렇게 조금씩 자신안에서 머리를 들고 일어나는 흑조를 보았던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순수한 백조 연기를 하기엔 최고였던 신참내기 발레리라 니나, 하지만 이번 공연은 백조와 흑조를 완벽하게 연기할 수 있는 그런 숨겨진 재능이 있어야 한다. 순수함만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시대는 끝났다. 자신안에 감추어진 사악함과 악랄함을 동시에 연기해 낼 수 있었야 한다. 그런 니나에게 자신의 라이벌쯤으로 생각할 수 있는 상대 릴리가 있다. 그녀는 니나보다는 조금 모자라지만 흑조의 연기를 할 수 있는 부분은 그녀보다는 탁월하다고 생각된다. 그런 반면에 니나 전까지 백조 역을 했던 베스역인 위노나 라이더, 난 그녀 때문에 더 이 영화를 보고 싶었다. 레옹의 마틸다의 연기도 보고 싶었지만 리처드 기억와 <뉴욕의 가을>로 무언가 가슴에 습한 기운을 불어 넣어 주었던 위노나 라이더의 연기 또한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녀의 역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패배자로 모습은 섬짓 하기도 했다. 베스와 릴리를 바탕으로 자신안에 감추어졌던 흑조를 잠깨우는 니나, 자신의 강박관념과 완벽함과 싸우는 장면은 정말 섬짓하면서도 움찔하게 만든다.사람마다 그런 이중성을 가지고 있겠지만 그 이중성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은데 이 영화는 어찌보면 백조와 흑조로 이중성을 잘 표현해 냈다고 볼 수 있으며 백조보다는 사악함이나 악랄함의 흑조가 더 강조 되었기에 그 완벽함과 싸우기 위하여 자신을 버리는 마지막 장면은 허탈함마져 들게 했다.

그렇다면 '완벽함' 이란 무얼까. 엄마의 꿈의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그동안 연습하고 싸워 왔다면 이제부터는 자신안에 간직된 '자신'과 싸워야 한다. 그 싸움에서 진다면 발레리라로의 니나는 없는 것이다.그런데 남보다 더 우월하고 더 뛰어나고 더 완벽하고 싶다. 한 치의 오차도 흐트러짐도 용서할 수 없는 니나, 그런 강박관념 때문에 자꾸만 자신도 알지 못하는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급기야 마지막엔 완벽함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모두에게 보여 주었고 자신 또한 '완벽함' 의 그 끝을 보았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해하고 만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무얼까.백조는 없고 흑조만 남게 되는 것일까.자신의 사악함과 싸워 이겼다고 생각했지만 남겨진 것은 사악함의 승리뿐이다. 정신적 스트레스을 이겨내지 못한 그녀, 100%의 완벽함이란 있을 수 없다. 무언가 부족하기에 인간으로 살지 2% 부족함을 채우려고 자신을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너무 완벽하려고 한다면 자신만 힘든 것이다. 어딘가 빈틈이 보일 때,더 인간답게 보이고 더 친근하게 보이는 것이고 더 가깝게 다가가고 싶은 것이다. 요즘 스타들이 그동안은 '숨기기' 작전을 했다면 요즘은 자신의 사생활,숨겨진 부분들을 들춰내어 모두와 공유하는 것을 더 즐기므로 하여 시청자와 아니 팬들과 더 가까워지고 있다. 작은 빈틈을 보여줌으로 하여 그들도 같은 '인간' 임을 인간적인 면을 어필하면서 더욱 인기도를 높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공연에서 완벽함이란 무엇일까. 관객이 느낄 수 없는 연기자만의 완벽함은 꼭 필요하겠지만 자신의 몸을 해하면서까지,어찌보면 정신병적 증세를 보이면서까지 완벽해지려는 그들은 원하는 것은 아니다. 현시대를 살아가려면 어느 정도 자신안에 내재된 '흑조' 를 잘 다스려야 한다. 그 흑조를 잘 다스리지 못함으로 인해 한순간 바닥으로 굴러 떨어질 수도 있고 자신의 모든 것을 잃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소녀에서 숙녀로 성장한 나탈리의 연기는 소름이 돋는다. 그녀 역시나 완벽함을 보여주듯 발레 또한 멋지게 소화해낸 영화인듯 하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 '마오의 라스트댄서' 를 보아서일까 왠지 비교가 되는 영화,함께 보면 더 좋을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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