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들의 언덕
채영주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가 채영주, 낯선 이름이다. 작품도 접해보지 못했다. 그럴만도 한것이 그는 2002년에 지병으로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다 한다. 그래서 더 작품이 눈에 띄지 않은 것일까,문학동네 때문에 접하고 알게 된 작가이다. 이 작품은 영광의 고아원을 배경으로 '동우' 라는 소년이 화자가 되어 써 나간 작품이다. '천사보육원' 태어나면서 아니 태어나고 자라던 어느 순간에 부모에게 버림 받거나 버려진 아이들이 모인 곳인데 이름은 '천사보육원' 이다.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그들이 탄생을 선택한 것도 아니고 타의에 의해 세상을 선택하게 된 것인데 세상 빛을 구경하자마자 '천사' 가 되어 버려졌다는 것만으로 얼마나 서러운 이야기인가. 그런데 이곳은 거친 남자애들이 모여 있어 늘 싸움과 사건이 그치지 않는 곳이다.소설은 천사보육원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하나 하나 단편으로 끝나는듯 하면서 함께 연결되는 '연작소설' 이다.소설을 읽는 동안은 마음이 조금 껄끄럽기도 했는데 마지막 책을 덮고 내려 놓는 순간에는 내 몸에 멍에가 벗겨지듯이 가볍게, 그들의 미래가 희망적이라 생각하며 놓을 수 있었다.

우린 태어나는 순간에 부모가 있든 없든 간에 '고아 있 수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는 그런 명제를 깔고 있는 듯 하다.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부모가 있어도 고아나 마찬가지 삶을 살 수도 있다는 것을 비친다.소설의 화자인 동우와 그의 형제들은 어떻게 하여 보육원에 오게 되었는지 부모가 생존해 있는지 없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애매하게 처리해 놓았다. 그들이 과연 '고아' 일까.고아만 이곳 보육원에 오는 것이 아니다. 가정환경이 너무 않좋아서, 혹은 편부나 편모슬하에 극빈자이기에 어쩔 수 없이 이곳에 버려지듯 오게 된 아이들도 있다. 천사보육원에서 처음 시작되는 이야기는 화자의 동생인 '성우' 가 가출을 시도한다. 일명 '천사가출' 이다. 천사가 보육원을 나가면 천사가 될 수 있을까. 그는 단정한 외모새를 위해 옷부터 신발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약간의 여비까지 꼼꼼하게 챙기고 고단수의 작전까지 짜서는 보육원을 탈출하고는 광주대공원으로 향한다. 멋진 계획까지, 그는 지금 있는 곳보다 잘 먹고 잘 입고 할 수 있는 고아원으로 가는 방법이 있다고 하여 시도하려고 탈출을 계획했는데 시도단계에서 붙잡혔다. 그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그가 결국 오게 된 곳은 '천사보육원', '비비람 치는 들판이 싫어서 번개는 자꾸만 아픙로 달리지. 아버지 어머니도 보고 싶고 따듯한 집도 그립고 맛있는 것도 먹고 싶고..... 하지만 언제나 제자리를 맴돌 뿐이야. 번개는 단단한 쇠파이프에 등이 찔린 회전목가거든..... 그래서 내 말은...... 우리도 번개처럼 어디로도 달아날 수 없는 목마라는 거야.' 그래다, 그들의 등에는 그들이 알지 못하는 쇠파이프가 하나씩 등에 박혀 있는 목마라 이곳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회전목마의 목마들처럼 그저 이곳에서 빙글빙글 돌아야 하는 것이 그들이 인생인 것이다. 사실일까.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하나씩 <상처> 를 가지고 있다. 아버지가 너무 많은 씨를 퍼뜨리고 다녀서 버려지게 되기도 하고 5.18에 부모를 잃어서 혹은 그 상처로 인해 이곳에 온 이들도 있다. 그중에 형국은 부모가 모두 죽은 곳에서 발견된 아이다. 부모의 썩은 시체와 함께 살아 있던 아이는 얼마나 큰 상처를 가지고 있을까.그는 지능도 떨어지지만 먹는 것에 집착을 한다. 그런 아이를 감싸던 이모가 있었다. 그에게 되지도 않는 공부도 가르치고 먹을 것도 챙겨주고 그가 아프면 다리가 되기도 했던 이모, 그런 녀석이 미워서 아이들은 그를 계단에서 밀어 다리를 다치게 하기도 하고 그를 골려 먹기도 한다. 그러다 드러나게 된 이모의 상처, 이모는 형국의 상처와 비슷하여 그로 하여금 상처를 씻으려 했는데 잘 되지 않았던 것이다. 어디 그만 상처를 가지고 이곳에 왔을까, 그들은 모두 가슴에 하나씩 보이지 않는 '각인' 처럼 새겨진 상처가 있는 것을.

천사보육원의 모든 것을 총괄하는 총무님은 '열쇠'를 무척이나 중요시 여기고 이곳 식당에서 나오는 밥찌끼를 가져다 염소를 키워 자식을 키우고 염소젓 배달을 하여 지금까지 살아 왔다. 그의 인생에서 염소가 없다면...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의 고물자전거에 염소젓을 담아 배달도 하고 염소들을 한번씩 둘러 보기도 하는 것이 그의 낙이고 보육원의 모든 물자관리 자물쇠를 그가 담당하니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다. 그런데 그의 삶에 큰 갈림길이 생겼다. 원장이 '새끼돼지' 를 한마리 사 놓으라 한 것, 이유인즉슨 식당에서 나오는 밥찌끼로 돼지를 먹인다는 것인데 총무가 제일 반대를 하였지만 원장의 힘으로 돼지가 한마리 들어오게 되었다. 그날부터 총무는 모든 것에 의욕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아이들은 새끼돼지하고도 정이 들었지만 그 돼지를 없애기로 한다. 총무님에게 다시 힘을 넣어 주기 위하여... 아이들의 작전에 의해 돼지는 감쪽같이 없어지고 총무는 다시 보육원에서 열쇠꾸러미를 들고 큰소리를 치며 다닌다. 밥찌끼로 다시 염소를 키울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보육원에서의 한사람 한사람에 대하여 보육원의 역사와 아이들의 성장과 함께 묘사를 세세하게 해 나간다. 그들이 비록 고아이지만 한데 뭉치면 남들보다 형도 많고 동생도 많고 이모들도 많고 총무님도 있고 집사님도 있고 원장님도 있고 그들에게 울타리가 될 수 있는 선배들도 있고 부모가 있는 '고아가 아닌 사람' 들 보다 더 많은 울타리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개개인이 모였지만 그들은 누구도 갈라 놓을 수 없는 '정말 커다란 목마들의 언덕' 이었던 것이다. 집사님을 좋아하는 숙희이모를 위해 갖은 애를 쓰며 둘이 결혼하게도 만들고 늘 수필집을 읽는 식당일을 하는 영진이 엄마를 위해 그들은 하나로 똘똘 뭉쳐 그들이 그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 수 있게도 해 준다. 뭉칠 수 없는 모래알인듯 하지만 그들은 어느 순간 하나가 되어 있다. 그래서 광주로 성가대회에 나가서도 일등을 하게 된다. 뭉치면 큰 힘이 되는 목마들, 드디어 '동우' 에게도 이 곳을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다.

넓은 세상에서 공부 할 수 있도록 먼저 보육원을 나가 자리를 잡고 있는 형들이 그를 거두기로 한 것이다. 피 한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그를 위해 자신의 어려움을 감내하며 그를 보살피는 광준이 형과 연미 누나 덕에 그는 어려움 없이 공부를 하여 서울에 대학을 들어간다. 보육원에서도 꿈을 가지고 있으면 얼마든지 공부를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공부는 도시애들이나 하는 거야' 라고 늘 말하던 아저씨들의 말처럼 도시애들의 소유물로 여겨졌던 공부를 도시애들을 전부 제치고 동우가 일등을 하게 되면서 광준과 연미가 연결이 된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딸은 고아원의 '고' 자도 모르게 키우겠다고 하던 행복할 것만 같던 원희 누나가 제과점을 하던 남편이 남의 모략에 빠져 감옥에 가게 되고 누나가 돈을 벌어야 하는데 딸인 '경은' 이가 걸려서 어쩌지도 못하고 있다가 그곳에 남겨 두고 떠나게 되었을때 그들은 '경은' 이를 키워주겠다고 한다. '천사보육원' 은 원생들에게는 '친정' 이나 '집' 과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버려진,등에 쇠파이프가 하나씩 박힌 목마였지만 그곳에서 힘을 키우고 서로 의지하면서 스스로 '야생마' 로 거듭나 회전목마에서 벗어나 세상을 향해 힘차게 달려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힘은 혼자가 아닌 모두가 발휘할 수도 있고 원하면 혼자서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꼭 '고아' 여서 못할것은 없는 것이다. 어찌보면 '동우' 와 함께 한 소년들의 성장기라 할 수도 있고 그의 성장기라 할 수도 있지만 넓게는 '고아냐 고아가 아니냐' 세상을 살아가는데는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모가 있건 없건 간에 세상은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란 것을 말해주고 있다. 마지막 결말이 해피해서인지 마지막 순간에 가슴이 따듯해지면서 비로소 안심하며 책을 덮었다. 그들의 미래가 밟지 않았다면,영원히 목마로 있었다면 어떠했을까. '자연이란 건 참 이상하지. 저 산은 언제까지고 변함없이 저 모습으로 서 있을 것 같은데 봄이 오면 눈은 사라지고 파릇파릇한 신록이 우거진단 말이야...... 마치 우리한테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은 변해야 한다고 말해주는 것 같거든. 철새들은 날씨를 따라 날아다녀야 하고, 사람들은 꿈을 좇아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