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 - 되돌아보고 나를 찾다
김용택.박완서.이순원 외 지음 / 더숲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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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살면서 뒤돌아보면 후회되거나 반성할 일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있을까. 우린 모두가 크거나 작거나 혹은 계속되는 일이라도 한가지는 가지고 산다.나 또한 지난해 연말에 아버지를 보내 드리며 아버지 살아생전에 너무 못해드리고 안해드린 것들이 많아 후회되어 엄마께는 잘해드려야지 했던 것이 어제일 같은데 전화도 자주 않하고 찾아뵙지도 못하고 살고 있다. 반성은 그때뿐이고 그것을 실천하면서 산다는 것이 힘들다. 날마다 새로운 일과 새로운 것에 적응하며 살다보면 날마다 후회와 반성으로 점철되는 하루가 되다보니 지난 반성거리는 잊기마련이다.

여기 그런 이야기들이 모여 있다. 부모님에 대한 반성이라든가 친구에 대한 반성이라든다 혹은 이웃에 대한 혹은 내 행동에 대한 한가지 문제에 대하여 들려주는 이야기마다 '그래,맞아..' 하고 공감을 한다는것은 누구나 그렇게 살고 있고 고치려고 하지만 고쳐보겠다고 하지만 잠간뿐이라는 것이다. 다른 것에 대한 반성보다 부모님에 대한 반성이 유독 가슴을 울린다. 눈물이 난다. 나 또한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고 나와 비슷한 공감을 자아내어 내가 못한 부분을 후회하듯 울컥했다. 산다는게 어찌보면 다 비슷비슷 한듯 하다.

어찌보면 '반성' 하고 산다는게 참 다행한 일인지도 모른다. 자신이 잘하고 있는지 못하고 있는지도 분간을 못하며 살고 있는것보다는 낫다는 것이다. 잘하고만 사는 줄 알지만 주위의 이야기를 들어보다보면 내가 못하고 사는구나 느낄때가 있고 나이가 들어가다 보면 그땐 정말 잘못했다는 것을 느낄때가 있다. 그런다고 그 모두를 고쳐 앞으로 아무 잘못없이 후회없이 산다는 보장은 없다. 반성문은 반성문일 뿐이다. 어제 잠깐 티비를 보다보니 각서와 반성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오락프로였지만 각서를 쓰라는 그말이 좋다는, 그것은 일이 종결되었다는 말이라는 것에서 웃었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초등시절 선생님들은 반성문을 쓰라는 말을 참 많이 하셨다. 그런데 반성문을 쓰는 사람은 정해져있다. 반성문을 썼다고 하여 그의 행동에 변화가 있는 것도 아니고 고쳐진것도 아니고 늘 단골 반성문 쓰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반성은 반성으로 끝난다는 것일까.그렇게 반성을 한다는 것 자체를 높이 사야 하나.

어머니의 문안전화, 요양원에 계시는 어머니가 아침 정해진 시간에 딸에게 한번씩 전화를 해오다가 안하면 그날은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이틀 전화가 없다. 그렇다면 무슨 일이 생긴 것인데 작가는 전화를 선뜻 먼저 하지 못하고 기다린다. 그러다 받게 된 전화,어머님이 중환자실에 입원하셨다는.. 왜 기다리고만 있었던 것일까. 먼저 어머니의 안부를 물었다면, 자신밖에 없는 혼자인데 왜 망설였을까. 아마도 무서웠을 것이다. 그러면서 보게된 어머니의 통화내역엔 온통 딸의 이름뿐이지만 자신의 핸펀은 그렇지가 않다. 어머니와 나의 핸드폰의 무게가 다른것처럼 느껴진다,다행히 어머님은 차도를 보여 퇴원하시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셨지만 가슴이 먹먹해지던 순간이다. 돌이켜보면 이런 순간들이 있다. 그리고 잘해야지 하면서도 안되는 것이 부모님이고 자식에게 이다. 내 주위에 있기에 더 안되고 맘뿐인것이 피붙이인듯 하다. 나 또한 친정엄마께 전화라도 적적하지 않게 자주 해야지 하던 것이 이젠 수화기도 잘 들지 않는다. 엄마가 잘 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님 집에 안계실거라는 생각으로 그렇게 하루하루 보내다보니 계절이 바뀌고 있다.부모님은 결코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리고 세월을 이기는 장사는 없다. 늘 곁에서 영원할거라 생각하는 부모님은 하루가 다르게 에너지가 빠져나가고 있다. 젊을때하고는 다르게 하루가 정말 빠른 속도로 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하지만 내 일상이 바쁘다고 뒤로 미루어 두게 되는 우선순위가 부모님이다. 아쉽다. 

반성이 부모님께 혹은 자식에게만 있을까 김용택의 '태환이 형,진짜 미안해' 을 읽으니 뭉클하다. 돌보지 못했던 분들이 아쉽게 떠나고 나니 그의 삶의 진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지나고 이제 와서 그의 속살을 들여다보듯 한다고 죽은자가 살아 돌아올리 없고 그저 미안할 따름이다. 자식과 아내와 떨어져 홀로 외롭게 술로 살아간 사람, 그가 큰소리로 외치며 동네를 떠들썩 하게 했는데 그가 없으니 동네가 조용하다. 그의 메아리는 어디선가 울리고 있겠지만 그게 이승이 아니란것이 슬프다. 무언가 소중한 것은 곁에 있을때는 모른다. 그것이 옆에서 사라지고 나면 그때서야 비로소 그 값어치가 보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때늦은 후회만 남는 것이 우리네 인생인듯 하다.잘해주고 싶었지만 잘해주어야 했어지만 그때는 몰랐던 형, 그곳에서나 행복하길 바랄뿐.

남에게 자신의 치부를 내보이는 것 같아 소설을 쓰지 못하는 글쟁이, 그것을 바쁘다는 핑계속에 묻어 놓으며 자꾸만 뒤로 미루고 있다. 그러다 듣게 되는 한마디 '너 왜 책 안내냐?' '잘 써지지 않고...... 마음에 안 드는데 그대로 내면 욕먹을 것 같아서요.' '그럼 욕먹어. 욕먹고 나면 더 잘 쓰게 돼.' 그렇다. 욕을 먹기 싫다고 자신을 핑계속에 묻어두고 포장하고 했지만 그렇게 하면 자신의 발전이란 있을 수 없다. 못은 망치로 자꾸 두둘겨 맞아야 들어가듯 자신의 잘못된 곳을 자꾸 독자에게 지적을 받고 욕을 먹어야 고쳐지고 발전이 있지 쓰지도 않고 출판도 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능력이 어느정도인지 어떤 상태인지 모르니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욕을 먹기 싫어서 망치질 당하기 싫다면 왜 못이고 글쟁이겠는가. 두드려 맞을수록 단단해질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따끔한 충고를 해주면 우린 그런 사람을 몹시 경계하거나 싫어한다. 자신에게 나뿐말을 해준다는 것으로, 하지만 난 다르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그 자신을 제대로 보고 평가를 내린 사람이다. 그런 말은 가슴에 잘 새겨두어야 자신이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나 또한 딸에게 따끔한 충고를 잘한다. 엄마만큼 딸을 잘 아는 사람이 또 있을까,그러면 딸은 늘 하는 말이 '엄마만 내게 그런 말을 해.남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데.엄마도 좋은 말좀 해봐.' 그런데 어쩌랴 딸의 단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이 엄마인데. 딸의 발전을 위해서는 엄마가 나서야지 남이 결코 나서주는 것은 아니다. 친구나 그외 사람들은 적일수도 있다. 적에게 충고를 하는 법은 없다. 길지 않은 삶이지만 돌아보면 정말 반성할 일과 행동이 많다. 그렇다고 그 일들을 모두 고친다고 삶이 더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모두 고칠수도 없지만.. 삶은 인생은 어쩌면 반성과 후회로 그렇게 흘러가는 듯 하다. 그게 삶이고 인생이지 완벽한 사람은 없다. 좀더 예전보다 좋게 고쳐질 수는 있지만.그런 의미로 친정엄마께 전화좀 해야겠다. 잘 계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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