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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찾아서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남자에게 권력이란 무엇일까, 아니 권좌에 오르려는 욕심은 어디서부터 나오는 것인지. 이 책은 1996년도 나왔다가 절판된 것을 재판한 것이다.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라 그런지 전개에서 약간 매끄럽지 않은 면도 보이지만 남성들의 약육강식의 세계를 잘표현해 놓은 것 같아 한편으로는 씁쓸하면서 재있게 읽었다. 모두가 오르려는 힘을 가진 최고의 자리, 그곳에 오르면 무엇이 좋을까, 그것도 자그마한 도시에서. 다른 곳과는 구별되듯 항아리처럼 생긴 지형인 그 작은 곳에서 모두의 부러움의 대상인 자리 ’왕’ 이란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어찌보면 참 무모한 것이 ’힘겨루기’ 일 것이다. 그런 것을 싫어해서이기도 하지만 권력을 가졌다고 권좌에 올랐다고 그 힘을 남용하는 이들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인지 그런 자리를 싫어한다. 우린 꼭 남보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그 자리를 잘 지키는 것이 아닌 제멋대로 남용을 하기에 어찌보면 아름다운 자리이기 이전에 피로 얼룩지고 뇌물로 얼룩진 자리가 그런 자리라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꼭 그런 자리에 올라야만 할까.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기 보다는 벼가 익을수록 더욱 고개가 빳빴하게 서는 자리, 그런 자리는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어느 누군가 아랫사람이 또 노리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권력은 그런 것이다. 그 자리에 오르고 나면 세상을 다 가진것처럼 호령하고 싶은 것이다.
이 소설에서처럼 ’마사오’ 란 인물은 그의 다른 이름보다도 ’마사오’라는 이름이 그냥 굳어진 명사처럼 쓰인다. 누구에게나 마사오인 것이다. 그는 부모의 뒷배경이나 그외 다른 배경은 가지지 못했지만 남성이 가져야 하는 ’외적인 힘’ 을 어린시절부터 가지게 된다. 그런 그가 어렵게 지역의 왕의 자리에 앉아서 지역을 통치하듯 하고 호령을 하다가 너무 어이없고 힘없게 죽었다는 부고를 듣게 된다. 삶은 모두가 힘이 그의 것이었지만 죽음은 그에게서 힘을 빼앗아 버렸다. 아니 정상의 자리에서 물러서야 할 순간이 왔을 때, 다른 사람에게 그 자리를 내주어야 했을 때 그는 이빨빠진 호랑이처럼 모든 힘을 잃었다. 힘이란 살아 있는 동안 그가 누릴 수 있던 최고의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젠 누가 그를 기억해줄까.
어린시절 그의 힘이 부럽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던 수컷들, 재천과 원두는 그가 심부름을 시킨 것만으로도 그와 친구가 된 것처럼 전설을 만들어냈다. 그는 그런 인물이었다. 사실이 아니어도 그와 관련된 이야기들은 전설처럼 혹은 신화처럼 소문은 점점 눈덩이처럼 불어나 그를 부풀렸다. 그러지 않아도 나이가 들수록 점점 단단해지는 팔근육만큼이나 그에 대한 소문은 무성했고 지역에서 그를 따라올자가 없었다. 경찰도 누구도 그 앞에서는 맥을 못추었다. 그의 아우라는 대단했듯이 그를 따르고자 했던 이들도 있었다. 그야말로 그의 이름 하나로 지역을 평정하고 수컷들의 위계질서를 확립해주던 이름 마사오, 그런 그가 죽었다. 그렇다면 그 지역에 왕의 자리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마사오의 대를 이어 왕이 될만한 인물이 있을까.
원두가 졸음운전을 하는 버스기사의 곡예운전을 보면서 지난 시절을 추억하는 그 속에 마사오는 그의 왕이기도 했다. 모두의 왕이었고 그이 왕이었던 마사오, 그의 죽음으로 인해 들여다보게 된 지난날과 현실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원두와 재천은 한날 한시에 태어난 쌍둥이 같은 친구였지만 그와 원두는 너무 달랐다. 재천은 경찰인 아버지와는 다르게 늘 자신의 이익에 대하여, 권력을 빼앗기 위한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친구들 또한 그 자리를 원했지만 힘이 없거나 능력이 없으면 자연도태가 되듯 강한 자 앞에서 스러져 버리는 그런 삶을 산다. 강한 자만 살아 남을 수 있는 야생수컷의 세계, 그리고 한사람만 차지할 수 있는 최고의 자리. 그 자리를 향한 피튀기는 싸움을 해도 늘 마사오란 인물이 늘 지키고 앉아 있었는데 어느날 그도 또한 세월과 함께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죽음이 그를 혼자만 비껴갈 수는 없는 것이다. 그 자리를 놓고 이인자들끼리 보이지 않는 싸움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보다 한수위엔 다른 인물이 있다. 대통령이 되고 싶었던 인물, 세계는 남자가 지배하지만 남자를 지배하는 것은 여자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누구일까.
’그러면 그 소문 알아요? 마사오가 자살했다는 거요. 병원 의사 입에서 나온 말인데 맞는가봐요. 마사오가 몇 년을 앓았잖아요. 그때 누굽니까.거 다리에서 사고로 떨어져 죽은, 그 악독한 깡패 놈한테 당해서 폐인이 됐잖아요. 그다음부터는 그 사람이 전혀 힘을 못 썼지요. 그러다가 비관해서 자살을 했다 이거지요.’ 왕이 죽는 순간 그가 가졌던 힘도 죽어야만 했다. 새로운 왕을 위한 왕에 의해 이젠 세상이 돌아가야 했다. 힘이란 그런것이다. 영원한 자리도 영원한 힘도 영원한 사람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늘 그자리는 피튀기는 싸움을 하게 한다. 오직 한자리를 위하여 얼마나 많은 희생이 뒤따르는가. 위만 쳐다보며 자리에 오르려고 한 사람들에겐 친구도 그 누구도 수평의 것이 보이지 않는다. 오직 수직의 그 높이만 보이기에 그것을 깨달았을때는 모든것이 늦는다. 뒤돌아보면 잠깐인것 같은 시간들이 인생을 모두 허비하고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고인물처럼 한 지역에서 서로를 밟고 올라가야만 사는 사람들,하지만 그들보다 더 높은 곳에서 그들을 손아귀에 쥐고 좌지우지 흔들어 놓았던 여자,누가 진정한 왕일까.
’그는 오래전에 내 마음의 지평선 너머로 떠났다.영원한 왕으로서 위엄과 광채에 들러싸여, 그가 떠난 자리는 흉터처럼, 말 발자국처럼 자국만 남아 있다.’ 원두 그는 이제 그 세계에서 떠났지만 아직도 그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그곳에서 맴을 돌고 있다. 마사오가 누렸던 왕의 아우라를 얻기 위하여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한 사람들, ’누구도 나를 보고 웃을 수 없게 하겠어. 나를 존경하게 만들고 내 말에 복종하게 만들고 나를 다시 대통령으로 뽑게 하겠어.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겠어.’ 오랜시간이 흐르고 마사오란 왕도 죽음에 이르러 힘을 잃고 말았듯이 세상은 변했지만 사람의 권력에 대한 욕심이란 변하지 않는 법이다. 예나지금이나 그 한자리를 차지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사건과 사고가 범람을 하는가. 이 소설 또한 그런 의미에서 재판되지 않았을까.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권력에 대한 자리다툼으로 인한 눈살을 찡그리게 하는 일과 사람들, 사람의 욕심이란 죽어야 비로소 욕심도 죽는다.
등잔밑이 어둡듯이 자리에 앉아 있기에 자신의 자리 밑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 자리를 노리는 많은 사람들의 싸움이 보였다면 잠시 앉아 있다 순순히 물러나 다음 사람에게 인계를 하여 무리를 빚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사람이란 자리에 앉으면 더욱 욕심을 부리기 마련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도 있듯이 한번 자리에 눌러 앉게 되면 자신의 힘을 부려보고 싶고 자신의 힘이 어디까지 미치는지 그 범위를 가늠해보고 싶은 것이 인간이다. 그 자리에서 내려 온 자신의 뒷모습을 생각하지 못한다. 마사오, 그는 풍문은 많았지만 그래도 정의를 실천한 왕이었다. 강도를 만났거나 다친사람을 보면 병원에도 데려가고 치료를 받게 해주는 선행을 베풀기도 하여 엄청난 병원빚이 있다. 하지만 그의 아우라만 보았던 이들은 마사오란 인물의 힘을 빌어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싶어한다. 자신의 힘의 위용처럼 번듯한 호텔을 짓고 싶어하기도 한다. 하지만 마사오에겐 번듯한 것이 없었다. 그의 이름 하나만으로도 그게 힘이었고 세계였다. 전망대의 망원경처럼 한쪽에만 설치하여 한쪽만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닌, 망원경만이라도 밝고 어두운 세상 모두를 공평하게 설치해주어야 하듯 힘이란 어쩌면 수직이 아닌 수평이라고 말하고 있기도 하면서 혼자만의 자리가 아닌 함께 누리는 자리여야 함을 말하고 있다. 마사오란 인물이 죽음에 이르고나서야 비로소 그가 재평가되듯 자리에 있을 때 잘해야 하기도 하지만 자리보다는 밑에 있는 것이 더 편안하고 평화이다. 소설을 통해 새삼 현실을 들여다보게 하기도 하고 남성들의 세계를 살짝 엿볼 수도 있었던 작품이며 작가의 다른 소설로 만나고 싶게 만드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