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일곱 개의 고양이 눈
최제훈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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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제훈 작가의 책은 처음이다. 첫 만남이었는데 느낌이 좋다.미스테리와 추리소설을 좋아하는데 그의 소설은 독특하다. 요즘 젊은 작가들중 스토리텔링이 대단한 작가들이 많은데 그중에 한사람 천명관 작가의 <고래>를 생각나게 하는 작품이다. 이야기가 끝이 없을것처럼 이어질것만 같다. 그렇다고 계속 되는 이야기도 아닌 것이 무언가 교집합을 가진 이야기들이 숙주에게서 새로운 것으로 파생되어 새로운 이야기로 재탄생되어 정말 숨은그림찾기나 퍼줄맞추기처럼 독특한 재미를 준다. 어딘가에서 나왔더라 하고 지난 이야기를 곱씹어 보게 하는 재미도 있고 끝이 날것만 같은 아니 처음과 끝이 다시 하나로 연결되어 서로의 이야기들이 하나의 완전한 고리로 연결된 '환' 아니 끝이 없는 '파이' 를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소설중에도 나오는 '단 한편의 완벽한 미스테리 소설'...'단 한편의 완벽한 미스테리소설.....그게 어떤 건데?' '그게 바로...... 그 소설의 핵심 미스터리야.' 라는 말처럼 작가는 '단 한편의 완벽한 미스테리 소설' 을 정말 끝이 없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교묘하게 연결시켜 놓았다. 잠깐 한눈을 팔다보면 삼천포로 빠질듯 위험하기도 하고 더욱 집중해서 읽어야만할 것 같은 적재적소의 '교집합' 들이 이야기마다 숨어 있어 그 또한 찾는 재미가 있다.

여러개의 단편소설들이 하나의 장편소설이 되는 소설들이 꽤 있다.하나의 주제를 향해 나아가는 단편적장편소설도 있는가 하면 이렇게 단편이 연결되어 장편이 되는 소설 한강의 <채식주의자>도 단편이 연결되어 장편이 되었는데 이 소설은 그와는 또 다른 재미를 준다. 무언가 씨실과 날실이 교묘히 배배꼬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문양의 한벌의 멋진 옷이 완성되듯 소설은 계속적으로 숙주의 몸에서 숙주를 갏아먹면서도 새로운 놀라운 개체를 만들어 낸다. 그렇다고 그것이 앞의 이야기를 다시 반복하는 것도 아니면서 새로운 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기를 탄생시키고 그 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기의 발판이 되면서 다른 이야기를 탄생시킨다. 정말 미스터리이다. 그렇다고 결론이 딱불어지게  '이것이다'  하고 제시하는 것이 아닌 독자의 몫으로 남겨 놓았다. 독자가 어떻게 결론을 내리느냐에 따라 이야기는 또 달라질 수 있는 정말 수없이 많은 이야기로 파생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이야기다.

죽음이란 우리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고 우리 또한 그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는 영원한 숙제이다. 그렇지만 어느 예능프로의 말처럼 '나만 아니면 돼' 라고 외치면 그 죽음이란 울타리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지만 연쇄살인범과 평범한 우리의 차이는 생각을 간발의 실천으로 옮기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는 문제처럼 늘상 죽음은 우리 옆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살인범은 아니지만 인터넷 동호회 '실버해머' 에서 살인에 대하여 연쇄살인범보다 더 이론적으로 죽음과 살인에 대하여 능통한 사람들, 그들이 단지 경험하거나 체험하지 못한 것은 실제상황에 접해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 6인을 산장에 모이게 하는 '악마' 라는 사람,갇힌 밀실인 산장에서 벌어지는 그들이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것을 실제상황에서 경험하게 되는데 꿈을 통한 살인 그리고 현실에서 보게 되는 시체를 보게 된다. 그들은 닉네임으로 활동했기에 그들이 오프라인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밝혀지지 <여섯번째의 꿈>에서는 밝혀지지 않는데 <복수의 공식>외 이야기들에서 밝혀진다. 

'그들과 우리를 구분 짓는 양심이라는 게 생각만큼 단단한 벽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방아쇠를 당기는 건 한순간이니까요.' 살인자와 그렇지 않은 평범한 보통의 사람은 정말 양심이라는 그 얇은 벽 하나 차이로 어쩌면 세상은 달라질지 모른다. 정당방위가 되었든 자신이 살기 위하여 저지른 어쩔 수 없는 살인이라 해도. '죽음' 이란 무엇일까. 멀리하려 해도 결코 우리의 삶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물음표에서 계속적으로 만나는 사람들과의 인연속에서 또 다른 물줄기가 파생되듯 또 다른 이야기로 접어 들면서 다른 이의 삶을 통해 다시금 환상처럼 마주하게 되는 죽음의 이면, 그렇다고 그 속에서 누가 범인이고 어떤 사건이 나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연결고리를 통해 많고 많은 사람들이 연결되고 모두의 삶이 한번쯤 교집합이 될 수 있는 그런 상화에서 죽음 또한 떼어 놓을 수 없음을 보여주는 환상적인 미스테리 소설.

'일곱 개의 고양이 눈' 세마리의 고양이가 있다면 당연히 눈이 여섯개가 되어야 할 텐데 <여섯번째의 꿈>처럼 일곱명이 되어야 할텐데 '악마' 라는 주선자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보이지 않는 검은망토의 악마' 가 나타나 살인을 하게 되고 여섯명이면서 일곱명처럼 된 '여섯번째의 꿈' 과 마찬가지로 세마리가 일곱개의 눈이 된것이라 한다면 '비현실성' 혹은 '환상' 이라 말할 수 있으며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여섯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고 아직 닥쳐오지 않는 미래의 '죽음' 을 넣는다면 일곱이 된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해 본다. 소설의 결말이나 평은 각기 다를 수 있고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리 다른 해석을 할 수 있지만 모든 이야기들을 통해 그는 '죽음' 이라는 것에 도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먼 이야기처럼 알고 있지만 실은 늘 우리곁에 달라 붙어 있는 죽음이 어떤 상황을 만나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또 다른 모습으로 보일 수 있는 환상. 

처음엔 밀실추리소설인줄 알고 약간은 허무함을 느꼈지만 두번째 이야기에서 완전히 매료되어 읽게 되었다. '아 이런 작가도 있구나' '이런 미스터리도 있을 수 있구나' '단 한편의 완벽한 미스터리' 를 위해 작가는 얼마나 많은 자유발상을 했을까? 생각의 가지를 계속 쳐나가면서 끝없이 이어지는 이야기들, 그 속엔 우리가 모르지만 의연중에 교집합이 있을 수 있고 모르고 지나지만 타인과도 교집합이 있을 수 있는 삶속에서 죽음 또한 나는 느끼지 못하지만 내가 그에게 영향을 미쳐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는 것. 불교의 인연과 윤회처럼 계속적인 이야기 속에서 인연 또한 무시할 수 없음이, 남에게 빚은 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가져 보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살인이 직접적인 영향의 살인만이 있는 것이 아닌 번역가라면 작품속에서 할 수도 있고 쌍둥이라면 의연중에 동생을 혹은 형을 죽기를 바라는 상대로 생각하고 살수도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 자신의 마음에 달려 있다. 표면화 시키지 않을 뿐이지 늘 죽음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양심의 벽이 무너지는 순간에 살인자가 될 수도 있는 환상적 현실의 이야기들, '모든 건 연결되어 있어.' '내가 환영 속을 헤매고 있는 거라면, 사라져야 할 건 현실이다. 현실이 별건가, 내가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곳일 뿐.' '완성되는 순간 사라지고, 사라지는 순간 다시 시작되는 영원한 이야기, 무한대로 뻗어나가지만 결코 반복되지 않는 파이처럼.' 그리곤 ' 자, 이야기를 계속해봐,잠이 들지 않도록.' 잠이 들면 이야기도 끝이 나고 죽음과 맞닿을듯 하다. 그렇다면 끝이 없는 숙주의 몸에서 새로 탄생한 '맵시벌' 이야기처럼 계속되어야 한다. 손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흡인력과 강한 집중력 그리고 무언가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환상속을 걷는 듯한 돌고 도는 이야기들 속에서 결말없이 파생되는 이야기들 속을 배회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는 소설로 그의 다른 작품을 찾아 읽어보고 싶게 만들며 그를 눈여겨 보게 하는 작품이 되었다. 원주율의 파이처럼 한동안 무언가 알 수 없는 끝없는 이야기속을 배회했지만 답이 없어 허무한 느낌, 하지만 무언가 확실하게 단단히 발목을 잡는 매력덩어리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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