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준 산방 일기 - 시인 박남준이 악양 동매마을에서 띄우는 꽃 편지
박남준 지음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를 읽고는 그 속에 나오는 주인공들을 한 명 한 명 알고 싶은 마음에 첫번째로 ’박남준시인’ 을 꼽았다. 그의 시집 <그 아저씨의 간이 휴게실 아래> 를 먼저 읽게 되었는데 시집속에서 놓친 그의 삶의 행간을 들여다보고 싶어 ’산방일기’ 를 읽게 되었다. 모악산 기슭의 음습하고 칙칙한 곳에서 살던 시인을 좀더 나은 곳으로 그의 지인들이 힘을 합쳐 마련한 집이 지리산 악양의 햇볕 잘 들고 하루에도 두번씩이나 빨래가 쪼장쪼장 잘 마루는 곳에 ’심원재’ 라는 곳을 마련하면서 그곳에서 자연과 벗하며 살게 된 시인의일기를 풀어 놓은 것이다.

일기를 책으로 내는 남자, 정말 멋지지 않는가.하지만 시로는 밥을 먹을 수 없어 산문을 낸다고 하면 그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다. 그만큼 우리문학에서 시가 차지하는 공간이 그만큼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라 슬프기만 하다. 그래도 이 책속에는 시와 함께 수필이 들어 있어 그의 시집을 읽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의 詩맛도 함께 느낄 수 있어 좋다. 이미 난 <그 아저씨네 간이 휴게실 아래>로 그의 시의 맛을 느껴 보았기에 또 한번 반복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시가 어떻게 해서 탄생하게 되었는가 하는 행간을 읽는 듯하여 느낌이 새로웠다.

그의 자연과 벗하며 사는 삶은 그야말로 돈과 세상과는 너무도 거리감이 느껴지지만 그 속에서 진정한 인간의 정과 우리가 잊고 있었던 가슴 저 밑바닥의 순수함을 볼 수 있어 너무 따듯하게 읽었다. 방문 위에 새가 집을 짓고 알을 낳아 품고 있어 새의 눈치를 보며 사는 삶이란 어디 감히 도시에서 생각할  수 있기나 한가. 그렇다고 또 새가 화장실 문앞에 새집을 짓고 알을 낳아 놓았다고 하면 뒷일을 제대로 볼 수나 있을까.자연과 벗하며 혼자서 사는 삶이 아닌 함께 어우러져 누리며 사는 삶이 진정한 삶처럼 가슴에 와 박힌다. 욕심을 버려야만 진정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너무도 넘쳐난다. 나물과 집앞 작은 텃밭에서 거든 푸성귀로 차린 밥상이지만 임금님의 수라상 부럽지 않은 건강식이고 모두가 부러워할 웰빙식이다. 혼자 먹어도 자연과 모든 것에 감사를 드리며 먹는 그의 정갈한 밥상이 너무도 부럽기만 하다. 

’혼자서 사나 홀로 살지 않는다. 생명 있는 모든 것들과 더불어 살려고 하지 않는다면 거기 어찌 평화가 깃들 수 있을까. 내 안의 생명과 평화, 분주한 도심에서나 외딴 산속에서 더불어 살려는 내 안으로부터의 첫 걸음이 바로 세상을 바꾸는 작은 시작이며 완성이다.’

자연과 공생을 하며 서로 존종해 주는 삶으로 혼자 살고 있으나 홀로 살지 않는 정말 멋진 남자 그,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지요. 김장김치들 맛있게 담그셨나요. 뒤뜰에 김치독 깨끗이 씻어 묻었습니다. 텅 비어 있습니다. 맛있는 김장김치 나눠 먹읍시다. 빈 김장독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럼 안녕!’ 자동응답기의 그때그때 녹음해둔 재밌는 맨트로 유명한 시인이며 그 녹음말로 인해 김장독을 꽉 채우고도 김치가 익어가면 여행을 떠나고 싶어하는 여유을 가진 남자,혼자 산다고 외로움에 눈물을 흘리는것이 아니라 모든 것들이 그의 벗처럼 그의 삶을 살찌우는 것들로 넘쳐나는 것 같아 부럽기만 하다. 

지리산 자락에 매화가 피었다고 멀리서 매화향을 따라 찾아와 줄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 그 친구들과 함께 매화차 한 잔으로도 배부를 수 있음이 정말 부럽다. 이익을 따지기 보다는 자연을 환경을 생각하고 배부름으로 넘쳐나기 보다는 나누고 더불어 살려는 그의 여유로움은 노래이며 시이며 수필이고 한폭의 동양화와 같은 여백의 미를 가진 삶이다. 정말 그가 동매마을에서 보내는 '꽃편지' 를 받아 읽는 것 같은 여유로움에서 나 또한 마음의 비울 수 있어 좋았다. 자연을 벗하며 사는 그의 삶을 통해 내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게 만드는,좀더 내려 놓고 살아야 함을 느끼게 해주는 산방일기다.산다는 것은 별개 아니다. 좀더 욕심을 내려 놓고 자신을 낮추다 보면 세상이 달리 보이고 평화롭고 행복을 더 찾을 수 있는 것이다. 통장에 '0' 을 하나 늘리는 것보다 내 마음의 욕심을 '0' 에 가깝게 비우는 연습을 해본다면 어떨까.그렇게 한다면 멀리 있다고 느끼는 행복이란 희망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땅 위의 길과 같다. 본래 땅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 되는 것이다.' 루쉰의 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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