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쑥 너의 기억이
이정하 지음, 김기환.한정선 사진 / 책이있는마을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시인 이정하, 그의 이름만으로도 빨리 구입해서 읽고 싶은 책이었다.그의 시들로 한동안 아픈 가슴을 달래기도 하고 사랑의 목마름에 해갈을 하기도 하던 그런 날들의 기억이 있어 더욱 읽어 보고 싶었던 포토 에세이다. 날이 갑자기 따듯해지고 봄이 온듯한 날이 계속되자 왜 갑자기 그의 책을 꺼내 들게 되었을까. 삼월에 읽으려고 나름 생각을 했는데 더 기다리다간 내가 병이 날듯 하여 불쑥 꺼내 들고 ’오늘은 감성충전이다’ 하며 읽게 된 책은 표지부터 마음을 잡아 끈다.여성시인보다 더 감칠맛 나는 사랑시를 쓰는 감성을 지닌 그의 글과 사진의 만남, 그것도 연애편지를 받듯, 아니 예전 손편지로 쓴 연애편지와 같은 느낌의 글과 사진은 한 장 한 장 넘길때 마다 ’백프로 공감’ 이란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어느날 아침이었지. 새벽에 깨어났는데 그냥 무엇이든 가능할 것 같은 그런 예감이 들었어. 알지 그 느낌? 그때 나는 생각했었지... ’그래 이건 행복의 시작이야.행복은 여기서 시작되는 거야. 그리고 앞으로 더 많은 행복이 내게 오겠지.’ 하지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어. 그런 행복의 시작이 아니었어. 바로 그 순간이 행복 그 자체였던 거야.’ 영화 ’디 아워스’에 나오는 대사라고 한다. 행복은 무엇일까? 문득 이 책을 읽으며 ’아, 이 순간이 참으로 행복이구나.’ 하고 느꼈다. 밖의 날씨는 더없이 따듯하니 좋고 바람은 솔솔 불어 들어오게 적당하게 문을 열어 놓고 좋은 글을 읽고 사진을 보며 맘에 와 닿는 부분은 딸에게 읽어주다 보니 사춘기 딸애가 ’엄마 너무 좋다.’ 녀석이 무엇을 알겠는가, 하지만 녀석도 무언가 느꼈는지 읽어주는 부분이 좋단다. 그러면서 책 앞으로 다가온다. 혼자 읽으려 한 책은 둘이 함께 읽는 것과 같은 효과를 냈다.행복이라는 건 그런 것이다. 바로 그 순간에 느끼는 것이다. 미래에 찾으려고 하지 말고 지금 바로 그 순간 그 자체에 느끼는 것이다.

’당신은 지금 대체 누구를 찾고 있는가.정작 찾아야 할 사람은 자기자신이면서,찾아서 등 두드려 주어야 할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면서 도대체 누구를 찾기 위해 보이지도 않는 곳을 헤매고 있는가.’ 나를 사랑하기란 글의 일부분이다. 타인은 사랑해주기도 하면서 보통은 자기 자신에게 투자도 그렇고 사랑을 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난 요즘은 나 자신에 투자하고 나 자신에 빠져 살아보려 노력하고 있다. 누구의 엄마로 누구의 아내로 내가 없는 그런 삶을 살다보니 ’나 자신’ 을 잃어 버린듯 하여 일부러 실명도 자주 부르고 내가 좋아하는 것만 아니 좋아해서 하고 싶은것만 찾아서 하려고 노력한다. 나 자신을 사랑해줄 사람은 타인도 아니고 남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니다. 나 자신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책구매도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주로 하고 글도 나 위주로 쓴다. 내 감정에 좀더 솔직해지고 싶고 함께 사는 이에게도 자기 자신에게 좀더 솔직해지라고 한다. 가끔 거울을 보다가 멈추어 서서 거울속의 나를 집중해서 보면 내가 아닌 타인이 있는것 같다. 내 얼굴과 내 자신과 좀더 친숙해지고 자신을 남들보다 더 자주 볼 수 있어야 곧 현실의 자신도 더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

’가끔 나는 생각해본다.어쩌면 나는, 떠나보낼 때 너를 가장 사랑한 것이 아니었을까,하고. 이별은 내게 있어 사랑의 절정이었다. 가장 사랑하는 그 순간, 나는 너를 놓았으므로, 내 사랑이 가장 부풀어 오르던 그 순간, 나는 외려 풍선처럼 터져버렸다. 잘 가라, 나는 이제 그만 살게. 손을 흔들어 주진 못했지만 그 순간, 너를 향한 마음이 절정이었음을,절정이 지난 다음엔 모든 게 다 내리막이었다.’ 그의 글을 읽고 있다보니 열정적으로 사랑하던 그 시절도 이별을 맛보던 그 처절한 고통의 시간도 모두 되살아 난다. 나 또한 아픔이 진하게 베일때 글이 술술 잘 써진듯 한데 그런 감성도 이젠 녹슬어버리지 않았나 싶은데 그의 글을 읽고 있다보니 문득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글은 마음의 여백을 가져다 준다. 동양화에 여백이 주는 미가 있듯이 그의 글에도 여백의 미가 숨겨져 있다. 지친 감성을 충전할 수 있는 에너지를 품고 있는 것처럼 글을 읽으며 사진을 보다보니 봄의 수액을 들여 마신듯 파릇파릇 감성이 되살아나는 듯 하다. 

어떻게 보면 그냥 시집보다는 이런 포토에세이가 더 감성적이지 않나 생각이 든다. 시집 또한 읽는 것을 좋아하지만 사진과 함께 시 뿐만이 아니라 에세이도 함께 곁들여서 더욱 감성을 충전할 수 있는 여유를 주는 효과를 가져다주니 언제 이런 책을 하나 내보고 싶기도 하다. ’살다 보면, 살다 보면 살아 있는데도 죽어 있는 때가 있다.’ 정말 공감한다. 무언가 그 날에 한 편의 글을 써야 내가 살아 있었구나 하고 느끼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시간도 모두 지나고 이젠 무엇으로 사는지 모르게 나 자신이 수액을 빨아 들이지 못해 죽은 표피만 만들고 있는듯한 무의미한 그런 날들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었는데 갑자기 글이 쓰고 싶다는 강한 욕구를 가져본다. 글을 쓰고 싶다는 그런 마음을 가지게 했다면 추억을 떠올리게도 한다. 길에 대한 글을 읽으며 나의 어린시절부터 길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다 보니 거기 아버지가 있다. 어린시절 아버지는 나의 등하교를 늘 걱정하시며 자전거 뒤에 막내딸을 태우고 다니시는것을 무척 좋아하시고 늘 그렇게 하셨다. 바람이 불면 분다고 걱정 눈이 오면 눈이 온다고 걱정 비가 오면 비 온다고 또 그렇게 자전거를 끓고 나를 태우러, 혹은 찾으러 오셨는데 시골길을 친구들과 걸으며 길가에 잡초를 가지고 놀면서 그 재미에 논길을 걷고 숲길을 걷던 지난날 추억들을 되짚어 나가다 작년에 보내드린 아버지의 생각이 가슴이 뭉클, 울컥 하기도 했다. 나 또한 어려운 글보다 ’공감’ 할 수 있는 글을 좋아한다. 내가 쉽게 읽고 공감하는 부분이 많은 책을 좋아하고 그런 작가를 좋아하는데 공감하는 부분들이 너무 많다. 한번에 다 읽어버렸지만 가끔씩 불쑥 지난 추억이 되살아나고 누군가에 대한 사랑의 아픔이 진하게 느껴지거나 삶이 혹은 행복이 그리고 내가 지나온 길들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이 밀려 오면 한번씩 들추어 보면 좋을 것 같다. 

’시와 시인’ 이란 글은 정말 공감이다. ’문학은 혼자서 하는 작업이다.’ 둘이 할 수 없고 내 안에 무엇이 있는지 캐내기가 정말 어렵다는 것을 늘 글같지 않은 글을 쓰면서 느낀다. 지금 이 순간도 느끼고 있다. 어렵게 써 낸 시 한편이 너무 쉽게 읽혀지고 너무 쉽게 잊혀져 버릴때 그리고 그것이 세상을 변하게 하는 빛이 되지 못할때 허탈해 하는 부분도 있지만 나 또한 시 한편을 쓸 때 남을 위해서 쓰는것이 아닌 내가 쓰고 싶고 내가 좋아하는 방향으로 쓰는, 자신만족으로 쓰는 글이기에 그것으로 족했다. 글은 이미 쓰고 나면 나의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나의 산고를 거쳐 탄생한 시 한 편이 오래도록 빛을 발하기를 바라진 않아도 그저 탄생했다는 신고식의 그 느낌만이라도 가져야 할텐데 시가 점점 잊혀져 가고 있다. 그만큼 감성이 메말라 가는듯도 하다. 예전에는 외우는 시도 줄줄 나왔는데 지금은 가물가물하다. 그동안 시는 어디에서 잠자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 감성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남에게 보여주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좀더 자신을 진실되게 드러낼 수 있는 그런 살아 있는 글들이 아닌 뭔가 이익과 관련이 있는 자본주의화 되어 가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다. 점점 우리들 마음도 사막화 되어가는 것은 아닌가. 그런 사막에 비를 내리게 하는 단비와 같은 감성의 글들이 담겨 있어 좋다. 오랜 시간 결혼생활로 인해 사랑의 감정을, 이별 그 아픔의 시간을 잊었다면 추억의 책장을 다시 넘겨보듯 한 장 한 장 곱씹어보다보면 그 길모퉁이 내가 있다. 바쁘다는 핑계로 앞만 보며 달려오느라 뒤돌아보지 못한 내 자신이 글 속에 있다. 잠시 마음의 쉼표를 찍듯 여유를 가지며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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