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해가 둘이 될 수는 없다. 어떻게 보면 그 하나를 지키기 위한 정조의 가지치기의 피해자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이 책을 읽기전에 <펄 벅을 좋아하나요?>를 읽었는데 펄은 선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중국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천주교가 늦게 전해지기도 했지만 그 진통이 무척이나 컸던것 같다. 18세기 들어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희생양으로 삼기도 한 천주교, 정조는 천주교와 <정감록>에 의해 흔들리는 나라를 바로 잡기 위하여 강세황의 손자인 '강이천' 이라는 가지를 잘라낸듯 하다. 어찌보면 그들은 새로운 문화를 먼저 받아 들인 선구자들이다. 문학적 감성도 풍부한데다 천주교를 접한 그들이 꿈 꾸는 세상은 그 시대하고는 너무 동떨어진 진보된 세상이 아니었나 한다. 정조는 이 책이 아니아도 많은 책에서 또한 문화 아이콘으로 급부상하여 그의 감추어졌던 단면들이 많이 드러나기도 하고 어찰첩을 통해 그의 죽음과 신하들을 편지로 견재하기도 하고 다독이기도 한 부분들을 보면서 그의 인간적인 면을 보았다고 느꼈는데 이 책은 또다른 그의 모습을 보여준다. 역사는 해석하기 나름인것처럼 어느 방향에서 어느 시선으로 보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해석이 나오고 있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지금까지 알려져 있던 교과서식의 그의 모습이 전부는 아닐수도 있다. 우린 지금가지 교과서적인 지식만 습득하고 있기에 다른 해석이 나오면 움찔하게 되는데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찾아내고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고쳐져야 할 것이다. 12세에 정조 앞에 나아가 글을 지을 정도라면 대단하다고 생각을 한다. 어려서부터 그의 재능은 익히 알려졌고 할아버지 또한 강세황으로 당시에는 시서화에 능한 문인으로 날렸던 집안의 손주였으니 그 또한 그런 내력을 이어받았을 것이다.그런 그가 역적이란 것은 겨우 면했지만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그로 인해 불거진 천주교인인 서학쟁이라 하여 죽음에 이르기까지는 그시대의 군주인 정조와 반대편에 맞서 있었고 자기 자세를 낮출줄 모르는 젊음으로 인해 더욱 자신의 죽음을 앞당기지 않았나싶다. 자신이 가진 재능을 너무 과시했을수도 있는 반면에 천주교와 정감록의 피해자일수도 있다.세상이 정감록으로 시끄럽기에 당연히 군주인 정조는 나라를 지키고 더 굳건히 지키고자 노력했을 것이며 자신의 뜻에 반대하는 싹은 애초에 잘라 버리려 했을 것이다. 그런 군주에게 집안이 좋고 배경이 좋다고 해도 눈에 가시이지 않았을까. 그런면에서 문화의 부흥이니 혁명이라기 보다 저자는 '속박' 이라 했다. 글씨체를 탓하고 읽는 책을 제한 했다면 그것은 '혁명' 아닌 '속박' 이니 박지원처럼 연로한 사람이라면 세월을 받아 들이지만 한참 젊은 피가 들끓고 있는 강이천이나 그외 인물들이라면 반기를 들며 자신들의 뜻을 굽히지 않았을 것이다.그런면에서 부딪히지 않았나 하는데 나 또한 내 글씨체나 내가 읽는 책에 대하여 구속을 받는다면 가만히 있지 못할 것 같다. '강이천이 공초했다. '처음에는 길거리에 퍼져 돌아다니는 말을 듣고서 망령되어 향리의 어리석고 미욱한 무리와 주고받았습니다.' 망령된 말도 주고 받아서는 아니되거늘 그런 말을 그가 나누었다고 고해받치는 것 자체도 잘못된 것 아닌가. 지금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어디 남몰래 CCTV의 구속에서 사는것도 아닌데 자신의 망령된 말때문에 목숨이 왔다갔다 한다면 어디 말을 하고 살겠는가 벙어리로 사는 것이 더 안전하지. 정조는 그런 싹을 애초에 자르려 했다. '정조는 사건의 동기를 살펴보다가 그 이면에 조선 왕조의 주류문화인 성리학에 대한 거부반응이 도사리고 있다고 확신했다.' 유교와 천주교의 마찰과 성리학과 소품의 마찰이라고 한다면 새로운 것을 받아 들이려 했던 그들과 옛것을 지키려 했던 군주와의 마찰이기도 했다.자신의 자리와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더욱 옛것과 성리학과 유교의 바탕으로 나아가야 했는데 강이천이라는 인물은 새로운것과 천주교에 소품을 즐겨한 것이다. 정조의 입맛에는 맞지 않았는데 그의 집안배경 때문에 천주교를 수면 밑으로 가라앉혔다가 점점 거세지는 천주교 때문에 그를 그쪽으로 몰고 갔지만 그는 천주교에서도 배타당하게 되었다니 그의 죽음이 안타깝기만 하다. '정조는 강이천이 중국의 명청대에 유행한 짧은 문투의 새로운 문체(소품)을 숭상한 나머지 왕을 무시하는 중죄를 범하게 되었다고 했다.' 정조는 어찌보면 고집이 센 왕이었는지 모른다. 자신이 정해 놓은 틀 안에 모두를 가두려했다.그런면에서 르네상스라 할 수 없다는 것인데 더 많은 역사적 해석이 따라야 하겠지만 다른 시대보다는 우리가 알기엔 다양한 문화적 면에서 발전했기에 부흥기라고 하겠지만 판단은 각자의 해석에 우리가 알 수 없었던 다른 면을 보여준것 같아 신선했다.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몰랐던 인물인 '강이천' 이라는 인물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보람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해 보니 그 시대에 '문화투쟁' 의 한 면으로 '소품' 에 대하여 억압을 하지 않고 패관소설이나 그외 새로운 것을 들여오는 것에 대하여 좀더 개방적인 태도를 취했더라면 문학이나 그외 여러면에서 어떻게 변했을까.천주교의 탄압없이 종교의 자유를 주었다면 조선의 오백년 역사가 지켜졌을까 하는 의문도 가져본다. 그렇다면 문학적인 면에서는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도 가져보았다. 저마다의 개성이라고 하여 존중해 주었다면 그 많은 인재를 죽음으로 내몰지 않고 그들의 천재성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주었다면 역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그들이 너무 시대를 앞서갔기에 목숨 또한 남보다 먼저 죽음에 이르게 한 '새로움' 이란,그렇다면 우린 얼마나 편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가.'정조는 문체반정의 일환으로 서적 수입의 금지를 명령했다. 그에 따라 명청문집, 패관소설, 잡서,서학서의 수입이 금지되었다. 이러한 조치는 1786년부터 1808년까지 지속되었다. 이는 문화사에 있어 하나의 공백기로 기억될 만한 것이다.' 쇄국이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닐진데 강이천과 그외 인물들은 또한 '새로운 세상을 향한 열망 때문에 벼랑 끝에 섰다.'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과 열정을 자신의 목숨과 바꾸어야 했던 불량선비 강이천, 하지만 군주라고 해도 개인의 열망과 열정을 속박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서구에서 밀려오는 거대한 힘은 굳게 닫힌 문을 열고 말 것이라는 것이다. 꽃도 피워보지 못한 선비 강이천 이라는 인물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면 정조를 다시 보는 시각도 가지게 되었다. 역사란 알면 알수록 참 흥미롭다. 그래서 국사가 선택이아닌 필수가 되어야 한다. 배워도 모르는 부분들이 많은데 선택한다면 얼마나 알겠는가. 선택되어지는 역사가 아닌 필수이면서 좀더 객관적인 역사 보는 눈을 키워야할 듯 하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더 많은 행간을 읽으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