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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저씨네 간이 휴게실 아래 ㅣ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88
박남준 지음 / 실천문학사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박남준 시인의 시집은 처음이다. 하지만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 를 읽고나서인지 그의 이름과 그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낯설지 않다. 그의 전화녹음멘트는 유명하여 다른 책에서도 몇 번 언급이 되었다. 그때마다 그의 시집을 읽어봐야지 했던 것이 이번 시집과 처음만나게 되었다.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 를 읽으며 그가 등장하는 곳곳마다 그의 이야기에 반하게 만들었다고 해야하나, 지리산에서 자연과 벗하며 욕심없이 살면서 버들치를 키우고 있어 '버들치 시인' 으로 알려진 그가 낙오된(?) 동네사람들과 함께 만든 '동네밴드' 에서 그가 여러가지 악기를 가지고 오디션에 참가를 했지만 결국에는 '하모니카' 로 동네밴드에 한자리 차지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등등 너무 웃긴, 살아가는 진솔한 이야기들에 반하고 '지리산 행복학교'에서도 잠깐 언급되었던 이 시집의 주인공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와서 이 시집을 구매하게 되었다.
시집치고는 겉표지가 사뭇 밋밋하다. 옅은 귤색이라고 해야 할까. 무엇을 의미하는 색인지. 유자차 색일까. 하며 시집을 처음 받아들고 한참을 생각해 보았다. 그가 사는 집의 황토빛에 가까운 색일지도 모른다는,자연의 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져보며 '그 아저씨네 간이 휴게실 아래' 를 펼쳐 들었다. '그 아저씨네 간이 휴게실' 은 지난 봄에 지리산을 여행하며 지나치기도 한 곳 같기도 하고 어필 본듯도 하여 아쉬움이 남았다. 알았다면 들러서 잔치국수 한그릇에 지리산의 정기를 받은 알이 통통하게 박힌 칡즙이라도 한 잔 마시고 가는 것인데 하는... 하지만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다음 지리산 여행때는 놓치지 말고 '그 아저씨네 간이 휴게실' 에 들러 꼭 잔치국수를 한그릇 먹고 가리라.
시인은 그곳에서 부부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삶은 한편의 시로 승화시켰다. 아무것도 없이 낡은 트럭 한 대를 개조하여 자리를 잡고 잔치국수도 팔고 어느정도 빚도 갚아 나가다보니 아내가 암이란 큰 병에 걸리고 남편은 지극정성으로 그저 지리산의 정기를 받은 것들을 캐다가 달여 먹였는데 남편의 정성덕분인지 아내가 병이 나았단다. 그렇게 아내는 남편의 간이 휴게실 옆에 '반짝이 옷가게' 를 차리고 새 삶을 열었다. 그 이야기가 시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하동에서 구례 사이 어진 강물 휘도는 길/ 비바람 눈보라 치면 공치는 날이다/ 집도 없고 포장마차도 없는 간이 휴게실이 있지/ 고물 트럭을 개조해 만든/ 재첩 국수와 라면, 맥주와 소주와/ 음료수와 달걀과 커피 등등/ 전망 좋고 목 괜찮아 오가는 사람들 주머니가/ 표 나지 않고 기분 좋게 가벼워지는 동안/ 눈덩이 같던 빚도 갚고 그럭저럭 풀칠도 하는데 빌어먹을/ 그 아저씨의 그 여자는 암에 덜컥 발목을 잡혔다// 소원이 있었댄다 꿈 말이지 웃지 말아요 정말이라고요/ 반짝이는 옷을 입고 밤무대에 서는 가수/ 항암 치료 후유증으로 깊이 모자를 눌러쓴 그여자는/ 아저씨를 졸라 간이 휴게소 아래/ 얼기설기 비닐하우스를 지었다/......'그 아저씨네 간이 휴게실 아래 그 여자의 반짝이는 옷 가게' 라는 시는 정말 더하지도 않고 빼지도 않고 그들의 삶을 전부 담아 놓은 것처럼 아름답기만 하다. 시는 형식이 아니라 '진솔함' 진실을 담아 내는 것이라는 것처럼 담백하면서도 감동을 준다.
이렇듯 그의 시집은 1부와 2부에 실린 시들은 지리산과 섬진강변에 살면서 자연과 벗하고 자연과 동화되어 넉넉하지는 않지만 마음만은 어느 부자 부럽지 않은 넉넉한 그의 삶과 이웃들의 이야기 혹은 동시같은 아름다운 자연이 담겨 있어 읽는 이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 준다. '밤새 더듬더듬 엎드려/ 어쩌면 그렇게도 곱게 썼을까/ 아장아장 걸어 나온/ 아침 아기 이파리/ 우표도 붙이지 않고 나무들이 띄운/ 연둣빛 봄 편지// '봄 편지' 라는 시인데 너무 좋다. 연둣빛 고운 봄이 아장아장 걸어 나온듯 그림처럼 펼쳐진다. 그만큼 그는 지리산 생활에 젖어 들고 있다는 것일테다. 또 한편의 동시같은 아름다운 시를 소개하자면 '언 개울물 풀려 흐르자/ 앞산과 뒷산 우르르 겨우내 묵은 때를 씻겠다고/ 달려와 얼굴 비춰보려는데/ 어랏 혼자 다 차지하고 아예 몸을 담그고 있는/ 저 젓- 쬐그만 녀석/ 퐁당 톡 도토리 한 알// '독탕' 이라는 시인데 동시같으면서도 너무 곱고 순수하고 아름답다.도시에서 세속의 때가 묻었다면 이런 시가 나왔을까.지리산은 시인의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주고 도토리처럼 여물게 했다. 너무 이쁘고 아름답고 순수한 시들이 많다. '.... 어찌하여 향기는 고통 속에서 피어나는가// 차를 덖다가 그랬다/ 한 잎 찻잎이 온전히 솥에 던져져/ 초록의 향기로움 세상에 전하듯이/ 사람의 삶도 상처를 통해서야/ 비로소 깊어지는가/ 남김없이 수분을 빼앗기고 바짝 뼈마디 뒤틀린 것들이/ 찻물에 띄워지며 새록새록거리는 아기 숨소리/..... / '어린 찻잎' 이라는 시인데 어린 찻잎을 덖으며 '어찌하여 향기는 고통 속에서 피어나는가' 시인의 탄식처럼 들린 한마디가 내 가슴을 붙잡는다. 우리는 향기를 고통없이 돈으로 사려고, 아니 손 쉽게 얻거나 드러내려고 하면서 산다. 하지만 어린 찻잎마져 고통을 견디고 난 후에 향기가 더 그윽함을 시인은 맑은 시로 여실히 보여준다.
그뿐만이 아니라 제3부의 시들은 그가 자연가 환경을 지키기 위하여 국토순례를 하면서 오체투지를 하며 지키려 했던 그의 의지가 녹아 있는 '참여시' 들이 또한 발길을 잡는다. 이 이야기 또한 '지리산 행복학교' 에서도 잠깐씩 언급되었지만 그와 다른 스님들과의 오체투지는 유명하다. 그가 그토록 몸으로 지키려했던 자연과 환경, 미물들에 대한 사랑과 작은것에 귀 기울이기 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에 급급한 높은 곳에 앉아 큰소리만 치는 이들에게 그는 피를 토하듯 아름다운 우리 자연에 대하여 줄줄이 풀어낸다. 그가 이 시집 전에는 이와는 조금 다른 시들을 썼다고 하는데 난 이 시집이 참 맘에 든다. 아름다운 지리산과 섬진강과 그 속에서 함께 하는 자연과 사람들이 모두 그의 시의 주인이 되고 우리 국토와 자연이 시인의 눈과 마음에서 새롭게 탄생되어 비록 '밥벌이' 에 큰 득은 되지 못하지만 누군가 지키려는 큰 의지를 표명했다는 것이 참 좋다. 더불어 산다는 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비우고 더불어 사는 것' 이란 것을 보여주는 듯 하여 마음이 넉넉해지는 시집을 언제곤 내 마음이 혼탁해질때 한번씩 꺼내어 읽어보려 한다.